중국발 초저가 이커머스 '알리익스프레스(알리)'가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 쿠팡을 위협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알리의 막대한 물동량이 '택배업계 1위' CJ대한통운의 실적까지 좌우하는 모양새다. 고물가 기조와 경기 침체, 쿠팡의 택배업 진출로 허덕이던 CJ대한통운은 알리 물동량 대부분을 처리하며 지난해 하반기 실적에서 깜짝 반전을 이뤄냈다. 다만 쿠팡처럼 알리가 국내 시장에 직접 진출할 가능성도 점쳐지는 탓에 알리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CJ대한통운에게는 알리와 함께하는 미래가 언제까지나 장밋빛은 아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CJ대한통운의 택배 부문 영업이익은 약 2330억원으로 전년(1802억원) 대비 29.3%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판가 정상화를 통해 2~3%에 그쳤던 영업이익률을 6%대로 끌어올렸고 택배 물동량의 하락폭도 완화한 덕분이다.
CJ대한통운의 택배 사업 호실적을 이끈 장본인은 알리다. 알리가 CJ대한통운에게 맡긴 택배 물량은 2023년 1분기 346만박스(개) → 2분기 531만개 → 3분기 904만개로 매 분기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해 4분기 알리의 물동량은 1200만개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알리의 물동량은 올해 5000만개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연간 15억개의 물량을 소화하는 CJ대한통운 택배사업에 약 3.3%에 해당하는 수치다.
쿠팡 때문에 위기에 직면한 CJ대한통운은 알리 덕분에 활기를 되찾았다. 2021년 17억 5600만개에 달했던 CJ대한통운의 택배 물동량은 이듬해 고금리와 경기 침체로 1억개(2022년 16억 4800만개) 이상 감소했다. 쿠팡이 2021년 물류 자회사 'CLS'를 설립하고 택배업에 진출하며 택배업체에 위탁하던 물량을 자체 소화한 것도 문제였다.
택배 사업은 고정비가 매년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기에 '물동량'과 'ASP(평균판매단가)'가 실적을 가른다. CJ대한통운은 2022년부터 판가를 인상하는 '디마케팅'에 나섰지만 급격히 떨어지는 물동량에 실적 감소를 막지 못했다. 지난 2022년 CJ대한통운 택배 사업의 영업이익이 1802억원으로 전년 대비 9.08% 감소한 이유다.
알리는 쓰러져가는 CJ대한통운의 손을 잡았다. 2018년부터 한국 시장에 진출한 알리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2022년 11월 한국 전용 고객센터를 오픈한 데 이어 2023년 3월 1000억원을 투자해 마케팅과 물류 서비스를 강화했다. 특히 '업계 1위' CJ대한통운의 택배망을 이용해 2주 가량 걸렸던 해외 직구의 배송 기간을 3~5일로 크게 줄였다. 그 결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알리익스프레스의 앱 월간 순사용자(MAU)는 지난해 1월 227만명에서 12월 496만명으로 급격히 뛰었다.
알리는 머지않아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쿠팡과 직접적인 경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현재 알리에게 '짝퉁'만 판다는 손가락질을 하지만, 사실 알리가 판매하는 가품들은 저렴한 공산품이 대부분이어서 진품 여부가 판매 실적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서 "알리는 극단적인 가격 경쟁력과 짧은 배송 서비스까지 갖추고 있어 국내 저가 공산품 시장에서 쿠팡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알리는 이 기세를 밀고나가 국내 물류센터 건립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알리 효과'를 보고 있는 CJ대한통운에게 알리의 한국 시장 보폭 확대는 제2의 쿠팡과도 같은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알리가 단순 물류센터 부지를 확보하는 것을 넘어 자체 배송망까지 갖추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쿠팡의 전례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면서 "지금처럼 알리 물량이 급속도로 증가한다면 알리가 '바잉 파워'를 바탕으로 협상 과정에서의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알리가 국내에서 어떤식으로 사업을 이어갈지 알 수 없지만, CJ대한통운도 적절한 대응책을 세워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주 기자 sjlee@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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