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메모리반도체 확장 전략에 힘입어 극심한 다운턴(하강국면)으로부터 조기에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같은 고부가가치 AI D램 판매 비중의 급증세는 적자를 털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SK하이닉스는 2024년에도 AI 메모리반도체를 정조준한다. 실적의 버팀목이 된 HBM은 고객 기반을 엔비디아 위주에서 클라우드운용사(CSP)와 AI 반도체 기업으로 다변화한다. 제품 종류 역시 HBM과 고용량 DDR5에 이어 고성능 서버용 모듈과 온디바이스 AI를 겨냥한 모바일용 모듈까지 확장한다.
SK하이닉스는 25일 실적발표회를 열고 2023년 4분기 경영실적이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매출 11조3055억원, 영업이익 346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HBM과 DDR5 등 AI 서버용 반도체 출하 확대와 함께 중국 스마트폰 고객의 주문이 늘면서 1년 전보다 47% 늘었다. 매출 확대와 함께 수익형 향상에 집중한 결과 영업이익은 1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2023년 3분기까지 이어져온 누적 영업적자 규모를 줄이며 2023년 연간으로는 영업손실 7조7303억원을 기록했다. 2022년 영업이익 6조8094억원 대비 적자 전환했다. 2023년 연간 매출은 32조7657억원으로 2022년과 견줘 27% 줄었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D램에 집중된 AI 반도체 수요를 제대로 누렸다. 삼성전자나 마이크론 등 경쟁사보다 앞서 HBM3(4세대)를 미국 엔비디아에 독점으로 공급하며 시장 선두 주자로 거듭났다. 2023년 연간 기준으로 회사의 DDR5와 HBM3 매출은 전년 대비 각각 4배, 5배 증가했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4분기부터 실적발표 자료에 회사를 이끌어갈 AI 메모리반도체 제품을 안내하는 페이지를 포함했다. 차세대 제품인 HBM3E(5세대)를 중심으로 기술 주도권을 강조했던 직전 분기와 다르게 이미 시장에 출시한 DDR5를 비롯해 올해 양산 예정인 HBM3E, 내년 이후 선보일 HBM4와 고성능 서버 모듈 MCRDIMM, 모바일용 모듈 LPCAMM2 등을 소개했다.
SK하이닉스는 HBM3E를 2024년 상반기 중 공급할 예정이다. 엔비디아가 2024년 2분기 양산을 시작하는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인 'GH200'에 SK하이닉스의 HBM3E가 탑재된다. HBM4는 아직 개발 단계로 구체적인 성능과 출시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개발부터 양산까지 약 2년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2026년 출시가 유력하다.
SK하이닉스는 서버용 DDR5와 저전력(LP)DDR5T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DDR5는 128기가바이트(GB)와 256GB로 고용량 제품군을 제공하며, LPDDR5T는 16GB부터 24GB까지 고용량 솔루션을 확대했다. 고용량 DDR5는 HBM과 함께 최신 AI 서버를 중심으로 탑재가 확대되는 추세다. SK하이닉스는 HBM3와 128GB 이상 고용량 DDR5 시장에서 경쟁사를 압도하는 점유율을 확보했다.
MCRDIMM은 D램 여러 개를 묶은 모듈에 속도를 높이는 정보처리 동작 단위인 '랭크' 2개를 동시에 작동하도록 구현한 반도체다. 랭크 2개가 동시에 움직이면서 중앙처리장치(CPU)로 한 번에 넘어가는 정보량이 대폭 늘어나는 원리다. 이어 LPCAMM2는 LPDDR5X를 모듈로 구현한 제품으로 저전력 특성에 더해 고성능을 갖춘 점이 특징이다. 초기에는 노트북 등 소비자용 제품에 탑재되다가 점차 저전력이 중요한 서버와 데이터센터 등으로 적용 분야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2024년부터 엔비디아 중심인 HBM 고객사를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향후 AI 반도체 시장의 큰 비중을 차지할 CSP와 AI 반도체 등 잠재 고객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실리콘관통전극(TSV) 생산능력은 2024년 전년 대비 두 배까지 확장하기로 했다. 김규현 D램마케팅 담당은 "2024년 HBM 시장은 여전히 대형 고객 수요 기반 성장이 유지되면서 AI 주도권을 잡기 위한 빅테크의 경쟁, CSP 자체 프로젝트 등 채용이 확대되며 고객 다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반도체 중심으로의 도약이 메모리반도체 산업이 갖고 있는 극심한 변동성을 완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범용성이 높은 메모리반도체는 그동안 수요와 공급의 변동에 따라 호황과 불황을 오갔지만 고객과 가격, 물량을 확정해 공급하는 AI 메모리반도체는 수주형 산업 특성으로 공급업체가 수요의 가시성을 확보하기가 유리하다. 김우현 재무 담당은 "AI 메모리반도체가 향후 산업의 예측력을 높이고 사이클(주기)의 진폭을 줄일 것으로 기대한다"며 "메모리반도체 변화에 맞춰 기존 방식을 넘어 각 고객에게 특화된 최적의 솔루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HBM3E 생산에 나서면서 HBM 공급과잉 우려가 커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의 중장기 성장 전망이 밝은 데다 공급량을 단기간에 대폭 확대하기 어려운 특성상 공급과잉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설명한다. HBM은 동일 용량의 D램과 견줘 반도체원판(웨이퍼)의 다이 크기가 두 배가량 크다. 생산능력을 갖춰도 생산할 수 있는 물량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또 TSV 등 특수 공정이 필요해 생산성도 낮다.
SK하이닉스는 HBM 수요 성장세는 중장기적으로 연평균 약 60% 이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AI 서비스의 확장이나 새로운 응용처의 성장 등이 더해지면 추가적인 확대도 가능할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고객사와 협상을 기반으로 가격을 확정하는 HBM의 특성상, 물동량의 변화로 인한 갑작스러운 가격 하락 가능성도 작다고 보고 있다. 김규현 담당은 "HBM은 연구개발과 생산능력 투자, 라이프사이클, 일반 D램 가격 등을 고려해 최소 연간 기준으로 가격을 협상한다"며 "이러한 결정 방식으로 가격이 안정성이 일반 제품보다 높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새롭게 선보일 HBM3E는 최근 일반 D램 가격의 전반적인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높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진솔 기자 jinsol@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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