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반포 한강공원에서 열린 카카오뱅크 출범식에 참석했었다. "레거시 뱅크(Legacy Bank)들의 모든 업무처리 과정을 수도 없이 분석하여 철저히 고객관점에서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재구성했습니다" 라는 멘트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기존 은행들도 각자 처지에서 고객을 생각하며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과연 어떤 차이를 보여줄 지 무척 궁금했다. 서비스가 오픈 되자 기존은행들이 주지 못한 신선하고 편리한 서비스에 사람들이 환호하며 출범 단 2년 만에 1000 만명의 열혈 고객층 확보에 성공했다.
디지털 전략의 핵심이 ‘인감도장’을 정교한 ‘디지털화면’으로 구현하는 ‘기술’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도장’ 자체를 대체하는 ‘프로세스 혁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쌓인 ‘레거시(Legacy)’를 기존 은행들이 한꺼번에 없애는 일은 만만치 않다. 인터넷 은행들이 이러한 기존 은행들의 Legacy 지우는 일을 자극하고 변화를 앞당기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확실하다.
2022년 8월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상장한 카카오뱅크는 단숨에 국내 금융업 대장주로 등극하며 플랫폼기업의 가치평가는 PBR(Price to Book Value Ratio)이 아니라 PDR(Price to Dream Ratio)이어야 한다는 말을 유행시켰다. 카카오 플랫폼 지원과 사용자 편의성, 높은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2023년 6월말 현재 카카오뱅크 자산은 5년만에 423% 성장한 50.5조원을 기록하고 있다. 자산규모가 지방은행 중 부산은행(76.8조), 대구은행(68.7조) 다음으로 크고, 가계대출은 가장 많은 대구은행(18.3조)을 훌쩍 넘긴 33.4조원 규모이다.
그동안 성장을 제약하던 부족한 자본도 대폭 확충했으니 자산규모 측면에서 지방은행 압도는 시간 문제인 것 같다(BIS자기자본비율 32.06%, CET-1 비율 30.09%, 2023년 6월말). 현재 카카오뱅크를 필두로 케이뱅크, 토스뱅크의 약진이 우리나라 은행시장에서 충분한 ‘메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데 이견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메기가 더 성장하여 바다 질서를 재편하고 물길을 바꾸는 ‘고래’가 될 수 있을 지는 아직 불확실한 것 같다.
세계 최초 인터넷은행은 1995년 7월 미국에서 출범한 SFNB(Security First Network Bank)이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은행이다. 출범 초기 높은 예금금리로 단기간에 많은 예금을 끌어 모으고 경이적 DAU(Daily Active User) 증대로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조달금리 부담과 홍보 마케팅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출범 3년여만인 1998년 9월 자진 폐업했다. 1997년 8월 시작한 Net Bank 역시 높은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모기지대출(Mortgage)에 집중했지만 경기침체에 따른 자산부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2007년 9월 무너졌다.
이처럼 앞서갔던 수많은 글로벌 인터넷은행들 중에는 살아남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진 경우도 많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인터넷뱅크들은 아직 잘 나가고 있다. 2023년 10월 현재(TAB insights, Global Top100 Digital Bank) 카카오뱅크는 글로벌 디지털 전문은행 순위 4위에 랭크 되었다. 전년대비 4계단 오른 것이다. 케이뱅크 역시 3계단 오른 10위, 토스뱅크는 무려 46계단 상승한 13위로 모두 전년 대비 약진하고 있다.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은행을 지금 평가하기는 좀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규제와 경쟁, 그리고 비지니스 모델’이라는 세가지 관점에서 짚어 볼 부분은 있다고 본다.
첫째는 인터넷은행 라이선스를 받을 때 이미 씌워진 ‘은행’이라는 모자와 자산운용 제약 등 ‘규제의 틀’을 성장단계에 맞춰서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지 가늠해보는 것이다. 현재 주어진 규제환경은 태생적으로 기존 은행시장의 ‘메기’ 역할로 한계 지워진 측면이 강하다.
두번째는 소위 ‘Legacy Bank’와 경쟁 관점에서 명확히 대비되는 차별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지 살펴보는 것이다. 기존 은행들도 광대한 고객기반과 막강한 자본력으로 인터넷은행과의 기술력, 고객 편의성 차이 극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세번째는 단순한 상품 제조자(Originator)로서 자기 유통채널을 폐쇄적으로 활용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다른 회사 상품도 비대면 중개하는 ‘오픈 금융플랫폼’으로 확장 가능성을 평가해보는 것이다. 은행의 상품 제조자 역할은 막대한 자본이 전제되지 않으면 지속 성장이 불가능하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가 자본부족으로 대출성장을 통제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상품 제조자가 지는 리스크와 과중한 자본 부담 없이 ‘플랫폼’ 중개만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시장 투자자들은 이 세가지 모두 카카오뱅크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을 전망하고 상장 초기에 높은 값을 매겨 주었다고 생각한다.
자본규제 유예 연장이나 중저신용자대출을 포함한 자산운용 제약 등 인터넷은행을 둘러싼 현행 규제환경이 당분간 우호적으로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모든 산업군이 데이타 경제로 급속하게 옮겨가는 중에 있다. 은행도 뱅킹서비스의 핵심적인 Vehicle이 모바일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고객이 은행 오프라인 창구를 직접 찾아오지 않아도 큰 불편이 없이 생활할 수 있다.
사람들의 소득과 소비 생활 패턴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적기에 끌리는 거래 조건을 제안하는 오퍼링 시스템은 이제 인터넷은행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경쟁의 관점에서 세상의 모든 은행들이 비슷한 문제해결을 위해 몰두하고 있다. 결국은 장기적으로 자본이 든든하고 지구력 있는 캐시카우(Cash Cow)를 확보한 은행이 유리할 것이다. 그렇다고 쿠팡이 유통업에서 보여준 것처럼 자본력만으로 금융시장 질서를 재편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미국시장 상장을 통해 더 많은 자본을 확보했더라도 카카오뱅크의 전략적 지향점이 지금과 다르지 않다면 게임의 양상이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2023년 6월말 현재 카카오뱅크 자산운용은 유가증권 24.6%, 원화대출 67.1%로 시중은행 대비 유가증권 비중이 높다. 가계대출이 98.4%(케이뱅크 96%, 토스뱅크 82%), 그 중 주택담보대출이 51.2%(케이뱅크 29.1%)이다. 초기 90% 이상이던 순수신용대출 비중은 점점 낮아져서 44.8%(케이뱅크 76.6%, 토스뱅크 95.3%) 수준이다. 대부분의 자금을 원화예수금(85.5%)으로 조달하고 있다. 특히, 2% 대 고금리상품 영향으로 요구불예금 (57.4%) 비중이 월등히 높다.
시장금리 상승 영향으로 2023년 6월말 카카오뱅크 예대금리차(3.07%)가 전년동기대비 0.46%포인트 확대되고, 순이자마진(NIM, 2.43%)은 0.17%포인트 개선되었다. 예금금리 상승(1.33% 포인트)을 상쇄하는 대출금리 개선(1.79% 포인트)으로 NIM이 확대된 것이다. 요약하면, 상대적 고금리 요구불 중심의 예수금을 조달하여 유동성 관리용 유가증권 비중을 높게 가져가고, 중저신용대출 의무비율을 지키면서 마진은 높지 않지만 안정적인 주택담보대출로 돈을 벌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시장 투자자들이 카카오뱅크 가치를 Legacy Bank 보다 10배가 넘게 평가하는 것이 주택담보대출 중심으로 빠른 자산성장을 이루었기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PER 43배, KB금융 PER 5배). 상당히 비싼 비용으로 끌어 모은 고객을 대상으로 마진이 높지 않은 주택담보대출 위주로 자산을 쌓는 전략이 차별적 평가 요소는 아니다. 2022년 카카오뱅크는 자기자본 5.6조원(2022년말)으로 ROE 4.69%를 시현했다. 자기자본이 5.8배 더 많은 KB국민은행(32.6조원) ROE는 8.93%이다.
카카오뱅크 CIR(39.8%, KB국민은행 45.6% )이 훨씬 낮음에도 불구하고 자본효율성은 거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23년 상반기 카카오뱅크 순수수료 손익은 25억 마이너스 상태이다. 오픈 금융플랫폼의 장점을 활용하여 다양한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안정적인 수수료 비니지스 비중이 확대되어야 의미 있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카카오뱅크 상장 초기 최고 43.7조원(2021년 8월19일)에 달하던 시가총액이 11조원(2023년 10월) 대로 75% 하락했다. 그래도 요즘 금융계의 스타로 가장 각광 받고 있는 메리츠금융지주 시가총액(11조)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이 아닌데 높게 가치를 평가받았다면 시간이 가면서 원래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안전한 주택담보대출로 성장하고 고금리 신용대출 리스크 관리를 열심히 하면 마진은 어느 정도 수준 이내로 정해져 있으니 돈은 적당히 벌 수 있을 것이다. 예금대출 비지니스에서 기존 Legacy Bank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다.
대면영업 금지 덕분에 고정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가격경쟁에서 인터넷은행들이 유리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자산 증가는 당연히 요구자본이 늘어나고 몸이 무거워지면 자본 효율도 떨어진다. 건전성 부담 이슈는 덤으로 자연스럽게 따라 온다. 결국 또 하나의 Legacy Bank가 추가로 탄생하는 정도에 그칠 수 있다.
2023년 2분기 실적발표를 보면 그동안 강점을 보여온 30대 이하 고객 뿐만 아니라 40대 이상에서도 시장침투율(40~64%)이 전년동기대비 10% 이상 상승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모습이다. 비싸게 모은 고객들에게 Legacy Bank들이 쉽게 쫓아오지 못할 확실한 차별적 가치를 제공하고,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 그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줘야 한다.
퇴출된 글로벌 인터텟은행 약점 중의 하나가 높은 조달금리와 낮은 대출금리로 지속가능성 확보에 실패한 것이다. 기존 Legacy 은행들이 놓치고 있는 고객 섹터를 발굴하여 자기 고객화하고, 새로운 시장과 차별화된 경쟁수단 개발 기회를 살리지 못했던 것이다. 단순한 가격경쟁과 기술적인 서비스 스킬 개선에 의존한 기존시장 점유율 뺏기 경쟁 만으로는 지속가능 성장이 어려울 수 있다. 시스템과 서비스 개선에 투여할 자원은 기존은행들이 훨씬 더 많다. 물론 Legacy 은행들의 업무추진 방식이 무겁고 효율이 떨어지는 측면은 분명이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시장을 넘겨줄 정도로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넷은행의 강점이 초기투자비용은 들지만 구축한 거대 플랫폼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더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카카오뱅크 CIR(영업이익경비율)이 2023년 6월말 39.8%로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 확보를 위한 수수료 감면과 지급수수료 증가로 플랫폼 수수료는 정체하고 주택담보대출만 증가하는 모습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오픈 플랫폼 사업자로서 인테넷은행이 수수료 이익이 없거나 줄고 있는 것은 수익모델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경쟁력 있는 가격정책으로 유인한 고객을 대상으로 안정적인 주택담보대출로 돈을 벌겠다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Legacy Bank가 받는 가치평가의 범주를 카카오뱅크가 크게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카카오뱅크가 작은 웅덩이의 메기 역할을 뛰어 넘어 거대한 바다의 고래가 되는 꿈이 실현되길 기대한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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