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삼성화재가 삼성생명 시가총액을 추월하는 날

Numbers 2023. 10. 10. 13:39

 

자식 보다 더 오래 사는 부모가 다수 생겨나고, 사후 유가족 걱정(종신보험)보다 본인의 남은 여생 동안 병원비와 간병비 준비(질병보험)가 더 큰 고민으로 다가오는 것이 현실이다. 규제 때문에 ‘종신보험(사망담보)’은 생명보험사 단독 사업영역이지만 ‘제3보험(질병담보)’은 손해보험사와 생명보험사 모두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이다. 지금은 이 ‘질병담보’ 영역이 우리나라 보험산업에서 상대적으로 더 먹거리가 많은 곳이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비슷한 환경속에서 같은 고객을 두고 경쟁해 온 두 진영의 성적표를 보면 손해보험사들이 생명보험사보다 더 약진을 했다.

2022년말 현재 운용자산은 생보 736.5조원, 손보 293.6조원으로 각각 80%, 150% 성장했다. 같은 기간 연간수입보험료는 생보 132.7조, 손보 120.1조원, 각각 67%, 137%로 손해보험 성장율이 훨씬 더 높았다. 손해보험사들 주력 성장부문이 생명보험사와 경쟁하는 소위 ‘제3보험’ 영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한정된 시장을 손해보험사들이 그만큼 더 많이 가져갔다는 의미이다. 최근 들어서도 생명보험사 주력인 종신보험시장 회복이 불투명한 반면, 운전자, 태아, 암, 심혈관, 간병비 등 질병보험 영역에서 상품력과 판매 경쟁력이 앞서는 손해보험사들 약진이 지속되고 있다. 더구나 IFRS17 회계에서 미래 수익 재원인 CSM 확보에도 제3보험영역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손해보험사의 입지는 앞으로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를 대표하는 삼성그룹 두 보험사들도 업권간의 기울어진 운동장 영향을 비껴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2013년 이후 10년간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녹녹치 않은 여건에서도 운용자산 44.7%, 69.2% 수입보험료 46.7%, 76.4%로 각각 나름 성장을 했다. 하지만 모두 시장 성장율을 밑도는 수준의 성적표다. 그 와중에도 업권간 추세가 그대로 반영되어 삼성화재가 삼성생명 보다 25%포인트 ~ 30%포인트 정도 성장률이 더 높았다.

2023년 상반기에도 주요 경영지표 대부분에서 삼성화재가 삼성생명을 앞지르고 있다. 2023년 6월말까지 시현된 영업이익(1조 5800억원 vs 1조 2001억)은 물론이고 미래 수익 원천인 CSM(13조원 vs 12조원)도 삼성화재가 앞선다. 배당수익률(5.3% vs 4.27%), PER(8.65배 vs 7.97 배), 외국인 지분율(53.27% vs 17.03%) 등 주요 시장 투자지표도 삼성화재가 앞서고 있어, 보험업 업종대표주가 이미 바뀐 느낌이다.

다만 삼성생명은 시가총액(14조원)이 아직 1.7조원 정도 삼성화재를 앞서고 있는 것에 위안을 삼는 정도이다. 그렇지만 상장 초기 삼성생명 시가총액(2010년 5월 12일 22.8조원)이 10조원 이상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그동안 보험업에 대한 시장 투자자들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 보험사의 시가총액이 언제 뒤집힐 지 관심거리이다.

과연 삼성그룹 두 보험사의 시가총액 순위는 뒤바뀔 수 있는 걸까?

보험사 시가총액은 단순히 보험업 환경과 개별 기업들의 경영성과 만으로 결정되지는 않을 것 같다.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대외 환경 변화가 우선 중요한 결정 요소로 작용한다.

2022년 국회에서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현재 논의 중이다. 물론 통과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현행 보험업법에서 보험사가 계열사 채권이나 주식을 보유할 경우 총자산 3%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투자자산 듀레이션이 긴 보험사 자산운영의 편중리스크 관리가 주요 목적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법에는 총자산과 보유주식 평가방법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보험업감독규정(별표11)에서 총자산과 자기자본은 직전 분기 재무상태표(대부분 시가기준), 보유주식은 취득원가 기준으로 처리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분모’와 ‘분자’의 측정 잣대가 서로 다른 이상한 모양인 것이다. IFRS17 도입으로 부채도 시가평가를 하는 상황이라 더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만일 보험업법 개정이 현실화되면 삼성그룹 지배구조 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된다. 당장 2023년 6월말 기준 삼성생명(300.6조원)과 삼성화재(81.5조원)는 총자산 3%를 넘는 삼성전자 지분 32.6조원(생명 28.6조원, 화재 4조원)을 덜어내야 한다. 2023년 6월 현재 삼성전자 시가총액(430조원)의 7.6%에 상당하는 규모이다.

현재 이들 보험사의 삼성전자 보유지분은 10.23% (생명 8.74%, 화재 1.49%, 시가 42조원)이다. 법령이 개정된다면 최대 보유 가능 삼성전자 지분이 2.65%(생명 2.09%, 화재 0.56%, 시가 11.4조원)로 낮아지게 된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당장 법 개정과 시행은 이해관계자들과 시장을 설득하기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주주나 시장관리자인 당국 입장 뿐 아니라 삼성전자, 삼성화재, 삼성생명 등 관계회사 직접 투자자와 보험 가입자 이해득실 등 고려할 부분이 너무 많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배당과 자본관리 정책도 시가총액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이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수익 전망과 배당 가능성 등을 기대하고 주식을 매입한 투자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룹의 지배구조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이 회사들의 배당과 자본관리 정책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면 이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은 상당히 억울할 것 같다.

현재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화재 지분은 14.99% 이다. 만일 삼성화재가 주가관리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게 되면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율(의결권 기준)이 15%를 초과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보험업법 제109조를 위반하게 된다. 따라서 삼성화재의 주주환원 정책은 자사주 매입이나 소각 보다는 배당정책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동안 삼성그룹 보험사들은 보험영업이익 뿐만 아니라 계열사 배당과 처분이익이 주요 배당재원으로 활용되어 왔다. 삼성화재 운용자산 77조원의 8%에 상당하는 약 6조원 이상의 계열사 주식을 처분하고 채권 등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면 K-ICS 자본비율이나 ROE 개선과 함께 배당가능재원 확보에도 유리하다. 삼성생명도 같은 입장이다. 물론 삼성그룹 지배구조 영향권에서 벗어나야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삼성생명은 2023년 상반기 해약환급금준비금(배당재원 산출시 제외)을 거의 쌓지 않았다. 최근 금리상승을 감안할 경우 비교적 금리부담이 높은 부채를 많이 보유중일 것으로 추론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지배기업소유지분 평가액(41.7조원)도 많고 배당여력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배당재원산출 차감항목을 일부러 줄일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현재 삼성생명의 배당가능재원은 상반기 추산으로 대략 14.3조원 수준으로 배당여력은 충분하다.

삼성화재는 해약환급금준비금을 5586억원 쌓고도 배당여력이 9.5조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배당여력을 그만큼 비축하고 있어서 필요시 자사주 매입이나 소각(자사주 10.21% 보유중)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자사주 매입 후 배당율을 높이면 일반주주 뿐만 아니라 지분율 높은 대주주가 더 큰 수혜를 본다. 특히 성장 정체기에 접어든 한국 보험업에서 자본관리정책은 중요한 주주가치 관리 수단이다.

최근 메리츠금융지주가 계열사의 100% 완전 자회사 편입을 통해 비은행 금융지주사 전환에 성공하며 금융업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메리츠금융지주 사례에서 보듯 개별기업의 본질가치 못지 않게 지배구조와 자본운용 효율성은 아주 중요한 투자판단 포인트이다.

회사 재무적 실적 뿐만 아니라 자본관리를 포함한 다양한 경영관리 정책이 시가총액에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해소되지 않는 한 삼성화재는 삼성생명의 시가총액을 쉽게 넘어서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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