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김재철의 꿈, 김홍국의 꿈

Numbers 2023. 10. 10. 08:40


‘불가식즉길 이섭대천’(不家食則吉 利涉大川), “집에서 밥을 먹지 않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 큰 강을 헤쳐나가는 모험을 감행하면 이로운 일이 많을 것이다”는 뜻입니다. ‘주역’ 64괘중 26번째인 ‘산천대축(山天大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누군가 점을 쳐서 산천대축의 괘를 뽑았다면 그는 이미 내부에 많은 것을 쌓았기 때문에 자신의 한 몸을 위해 일하고 밥 먹을 게 아니라 천하의 어려움을 구제하기 위해 모험을 감행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더욱이 그런 도전을 하면 결과도 아주 좋다는 게 산천대축의 괘가 알려주는 가르침입니다.

국내 최대 해운회사 HMM(옛 현대상선) 인수전에 뛰어든 동원그룹의 창업주 김재철 명예회장이 “HMM 인수는 내 마지막 꿈을 이루는 것이며 바다에서 한평생 일군 회사인 동원이 누구보다 HMM을 잘 운영할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번 인수전을 주도하는 김재철 회장의 차남인 김남정 부회장은 “인수 후 HMM을 어떻게 성장시켜 글로벌 선사들과 경쟁할 지가 중요하다”며 사업 효율화와 선박의 친환경화를 통해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회장’이라는 직함보다 ‘파운더’(Founder, 창업주)라는 말에 애착을 갖는 하림의 김홍국 회장도 이번 HMM 인수전에 뛰어든 이후 외견상 잠행하고 있지만 의지가 대단합니다.

김홍국 회장은 고등학교 때 양계업으로 사업을 시작해 사료 축산 식품제조 유통 등으로 확장했고, 지난 2015년에는 벌크선 주력 선사인 팬오션을 인수함으로써 마침내 자산규모 17조원의 재계서열 31위로 올라섰습니다.

하림 김홍국 회장은 당시 팬오션 인수에 1조원 이상 투자해 ‘승자의 저주’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사기도 했으나 코로나 기간 중 엄청난 실적 상승을 견인함으로써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김홍국 회장은 이번에 컨테이너선 주력의 HMM을 인수함으로써 ‘한국의 카길’을 완성하겠다는 꿈을 꿉니다.

동원의 김재철 회장도, 하림의 김홍국 회장도 모두 ‘산천대축’의 괘를 뽑은 것으로 판단한 듯합니다. 창업주로서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안주하지 않고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을 인수함으로써 마지막 꿈을 완성하겠다는 각오입니다.

주역 34번째 괘는 ‘뢰천대장(雷天大壯)’입니다. 이 괘가 가르치는 교훈은 힘의 과시는 곧 파멸이라는 것입니다. 뢰천대장의 괘는 발에 왕성한 기운이 도는 것인데, 문제는 강한 기운만 믿고 진격하다 아주 불행한 일을 당하고 맙니다. 주역에서는 들이받기를 좋아하는 강성한 숫양이 날카로운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 울타리를 들이박아 뿔이 걸려 낭패를 당하는 모습에 비유합니다. 주역은 따라서 주제 넘는 욕망에 끌려다니지 말고 멈추고 절제하라고 경고합니다.

MBK IMM 한앤컴퍼니 스틱 스카이레이크 등 국내 주요 사모펀드는 그들이 투자한 기업들을 합치면 재벌그룹 못지않게 성장했지만 금기시하는 업종이 있습니다. 바로 해운업과 항공업입니다. 업황의 부침이 아주 심하고 경영에 영향을 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이 너무 많아 해운·항공업에는 투자를 자제합니다.

하림 동원 LX그룹 등이 HMM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시장에서는 우려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최소 6조~8조원 정도로 예상되는 HMM의 몸값을 부담하기에는 자산규모나 자금력이 너무 취약합니다. 이들이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은 많아야 2조원 수준에 그칩니다. 결국 재무적 투자자(FI)를 통해 부족한 자금을 메꿔야 하는데 부침이 심한 해운업이 장기 불황에 빠졌을 때가 걱정입니다. 과거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인수했다 쓰러진 금호아시아나그룹처럼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량회사인 HMM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 14조원을 활용하면 동원이나 하림 등이 외부자금으로 무리하게 인수하더라도 배당이나 차입매수(LBO) 등으로 차입금을 빠른 시일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HMM의 거액 현금성 자산은 장기 불황에 대비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재원으로 이용해야지 인수자가 마음대로 쓰게 해서는 안됩니다.

관계자들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과거 SK하이닉스 매각 때처럼 이번 입찰이 결국은 무산되고 현대차나 포스코 등 자금력이 튼튼한 기업 중에서 새로 주인을 찾을 것이라는 관측이 시장에서 계속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사정을 배경으로 합니다.

국내 최대 해운사 HMM 인수전에 뛰어든 창업주 김재철 회장과 김홍국 회장이 뽑은 괘는 산천대축일까요 아니면 뢰천대장일까요.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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