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KISCO홀딩스 '리레이팅'과 거버넌스의 중요성

Numbers 2023. 10. 5. 17:32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주식은 대부분 저평가 돼 있습니다” 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로부터 최근 들은 말이다. 저평가됐으니 투자 기회가 있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 투자자로부터 외면당하는 주식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정 종목이 저평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낮은 주주환원율, 불합리한 자본 배치 등이 자주 거론되지만 실상 그것들은 거버넌스의 결과물이다. 경영자와 이사회가 주주환원과 자본 배치에 신경 써왔다면 투자자도 그에 응답했을 것이다. 주식 투자에서 거버넌스가 중요하다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책 <현금의 재발견(원제 The Outsiders)>을 쓴 윌리엄 손다이크는 기업의 다섯 가지 자본 배치 전략을 설명한다. △사업 투자 △타 사업 인수 △부채 상환 △배당금 지급 △자사주 매입·소각 등이 해당한다.

저자는 자본 배치가 경영자의 주된 역할이라 강조한다. 상황에 따라 자본을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 보유 자본으로 그 이상의 이익을 낼 수 있고 그를 통해 기업 성장과 주주가치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둘 가운데 주주가치 증대를 확인할 수 있는 단적인 지표가 바로 ‘주가’다. 그런 면에서 거버넌스는 주가를 좌우하는 핵심이 된다.

책에는 자본 배치에 능했던 경영자 8명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치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 같은 익숙한 인물도 있지만 나머지는 우리가 잘 모를 법한 이름이다. 그런데 ‘버핏 테스트(CEO가 재임 기간 수익 1달러당 얼마만큼의 가치를 창출했는지를 따지는 테스트)'에서 정작 버핏은 중간 수준이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버핏보다도 탁월한 경영자들이 더 많았던 셈이다.

버핏 테스트에서 워런 버핏은 2.3배로 중간 수준에 있다. (출처=윌리엄 손다이크 '현금의 재발견' P292)


자본 배치와 주가, 거버넌스를 언급한 건 최근 한 기업의 행보 때문이다. 한국철강, 환영철강 등을 계열회사로 둔 KISCO홀딩스 이야기다.

이곳은 9월 25일 공시를 통해 300억원 규모 자기주식취득 신탁계약 체결을 발표한다. 공시 당일 KISCO홀딩스 시가총액(3226억원)의 약 10분의 1 수준이다. 이 같은 KISCO홀딩스의 자사주 취득은 자본 배치, 특히 저가 매입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난 25일 KISCO홀딩스는 300억원 규모 자기주식취득 신탁계약 체결 공시를 냈다.(출처=KISCO홀딩스 공시 갈무리)


KISCO홀딩스는 연결 기준 순이익이 지난해 1239억원에 달했다. 최근 4분기 기준으로 합산하면 1495억원이다. 그런데 시가총액은 오랫동안 3000억원 아래에 머물고 있다. 더구나 순자본은 올해 상반기 기준 1조5524억원에 달한다. 주가순이익비율(PER) 2.5배, 주가순자산비율(PBR) 0.24배는 전통적 가치 관점에서 저평가됐다고 볼 법하다.

통상 자본 배치를 잘못하는 기업은 주식 시장에서 외면당한다. 다만 주주가치 개선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면 주주행동주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KISCO홀딩스가 그렇다. 2010년대 이래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적극적인 주주 환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0년 중 KISCO홀딩스 주가가 2만원대로 오른 건 2021년과 2023년 두 차례였다. KISCO홀딩스가 자사주 매입을 공시하고 단행한 시점과 맞물린다. 자사주 매입 때마다 회사 주가가 리레이팅(재평가)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만약 회사의 자사주 매입이 기업의 중장기 성장, 주주가치 증대와 실질적으로 맞물린다면 리레이팅 수준도 더 커질 것이다.

KISCO홀딩스 주가가 2만원을 돌파한 시기는 회사의 자사주 매입 시기와 맞물린다. (출처=네이버페이증권 갈무리)


KISCO홀딩스 사례를 들긴 했지만 비단 이 회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이름으로 저평가된 주식이 너무 많다. 기업 소유에 대한 오너 경영인들의 잘못된 인식과 가업 승계 문화는 이런 저평가를 용인하고 있다.

이건 역설적으로 주주가치 관점에서 한국 상장사들의 ‘업사이드’가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업 경영인들 사이 ‘자본 배치를 잘 해야 한다’는 거버넌스 문화가 퍼진다면 기업 가치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고 투자 유치도 수월해질 수 있다. 좋은 거버넌스가 자본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일호 기자 atom@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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