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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삼성 앞에 놓인 2가지 시나리오

Numbers 2024. 1. 30.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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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삼성 앞에 놓인 2가지 시나리오

삼성전자 더 이상 초격차·초일류 기업 아냐이재용회장도 평범한 기업인, 이제 그를 놔줘야지난 2023년은 86년 삼성그룹 역사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경쟁자들이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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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더 이상 초격차·초일류 기업 아냐
이재용회장도 평범한 기업인, 이제 그를 놔줘야

 

지난 2023년은 86년 삼성그룹 역사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경쟁자들이 따라 올 수 없는 ‘초격차’ 기술을 기반으로 글로벌 ‘초일류’ 기업을 자부해왔던 삼성전자가 평범한 보통 기업, 특별할 게 없는 기업임이 입증됐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7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15조원의 현대차와 11조원의 기아차에 크게 뒤졌습니다. 삼성전자가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입니다. 연간도 아니고 분기마다 10조원 이상 영업이익을 냈던 삼성전자가 극도의 실적 부진을 보인 것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 침체에 따른 것입니다.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는 올해는 영업이익이 35조원까지 늘어나 다시 1등 자리를 탈환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문제는 영업이익이 아닙니다. 삼성전자가 이제 더 이상 초격차 초일류의 글로벌 최고 기업이 아니라는 사실이 곳곳에서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매출이 399억달러를 기록해 미국 인텔의 487억달러에 뒤져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주목받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는 만년 2위 SK하이닉스에 1위 자리를 뺐겼습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서 2등 자리까지 미국 마이크론에 추월당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삼성전자는 매출 비중이 70%가 넘는 메모리 부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파운드리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대만의 TSMC와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합니다. 

반도체와 함께 양대 축인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삼성전자는 지난해 출하량에서 13년 동안 지켰던 1위 자리를 애플에 내줬습니다. 삼성은 프리미엄폰 시장에서는 애플에 밀리고 중저가폰 시장에서는 중국의 샤오미나 오포 등에 시장을 잠식당합니다. 삼성전자는 주력인 반도체와 스마트폰이 부진한 가운데 딱히 미래를 걸만한 새로운 성장동력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삼성그룹은 주력 중의 주력인 삼성전자를 빼고 보면 이른바 ‘후자들’ 가운데는 더 내세울 게 없습니다. 굳이 평가하자면 지난해 업계 최초로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정도가 되겠지만 아직은 미미합니다. 전자와 함께 그룹의 양대 축인 금융부문은 생명 화재 증권 카드 등 주요 계열사가 동종업계 상위권을 유지하지만 ‘초격차’가 아닌 ‘원 오브 뎀(one of them)’ 수준입니다. 오히려 미래에셋이나 메리츠금융그룹에 비해 혁신성이나 미래 성장성에서 뒤집니다.

삼성그룹이 ‘초격차와 초일류’의 기업에서 ‘보통 기업’으로 추락한 것은 이건희 회장 유고 사태에서 시작됐습니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은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졌고 6년 넘는 투병 끝에 2020년 10월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대한민국 기업사에서는 처음으로 삼성전자를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만든 고 이건희 회장은 평범한 기업인이 아닙니다. 비범한 재능, 개척자 정신, 생에 대한 뜨거운 열망, 강력한 리더십과 카리스마 등을 두루 갖춘 영웅입니다. 앞으로 경영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삼성맨들은 고 이건희 회장이 더 그리울 것입니다.

이에 비해 후계자인 이재용 회장은 스마트하고 반듯하지만 평범한 기업인입니다. 안타깝지만 삼성맨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대를 이어 영웅적 기업인이 등장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업 역사상 전례도 없습니다. 게다가 이재용 회장은 총수 자리를 이어받자마자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지금까지 9년째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재용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600일 가까이 옥살이를 했고,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사건’으로 1심에서 5년의 징역형을 구형받아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사법 리스크가 종결되려면 2~3년은 더 걸릴 것입니다. 갑자기 글로벌 기업 총수 자리에 올라 자기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든 상황에서 2년 가까운 옥살이와 100여 번의 재판까지 받았으니 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입니다.

삼성전자가 평범한 기업으로 추락한 것은 이건희 회장의 급작스런 타개나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 때문만이 아닙니다. 결정적인 게 또 있습니다. ‘오너 리스크’가 현실이 되는 상황에서도 삼성전자의 실적이 너무 좋아 삼성 수뇌부조차 착시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삼성전자는 국정농단 사태와 이재용 회장 구속, 삼성물산 합병 사건 속에서도 2017년 54조원, 2018년 59조원, 2021년 52조원, 2022년 43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을 냈습니다. 위대한 기업의 몰락은 자만에서 시작됩니다. 코로나 사태로, 반도체 특수로 이익이 급증한 것인데 자기 실력으로 착각하고 나태해졌습니다. 초일류에서 몰락한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최고가 됐을 때 쇠퇴의 길로 들어선다는 평범한 진리를 삼성 수뇌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제 삼성 앞에는 2가지 시나리오가 놓여 있습니다. 노키아나 소니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 없는 기업으로 주저앉든지, 아니면 몇 년간 주저앉았다가 다시 초일류 기업으로 올라서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전자(前者)의 가능성을 더 높게 봅니다. 그나마 소니와 노키아는 최근 들어 예전처럼 초일류 기업까지는 아니지만 부활하고 있습니다. 삼성의 전·현직 수뇌부들이 “세상의 모든 영화는 헛되고 헛되도다”며 탄식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삼성이 더 이상 초일류 기업이 아니라면 우리 사회도 이제 삼성을 그만 놔줘야 합니다. 더 이상 ‘삼성공화국’은 없습니다. 다음 주 선고를 앞둔 삼성물산 합병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이 그냥 평범한 기업이었다면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재용 회장이 옥살이를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삼성물산 합병 재판도 그저 평범하고 자기 한 몸, 자기 회사 추스르기도 힘든 보통 기업인 이재용에 대한 선고가 되길 바랍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