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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흉?...'상속세'는 죄가 없다

Numbers_ 2024. 1. 2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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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흉?...'상속세'는 죄가 없다

상속세, 코리아 디스카운트 주장은 무리한화처럼 RSU 도입 등 장기적 준비 중요상속세가 기업 지배구조를 왜곡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치르게 하는 원흉으로 지목되어 연일 성토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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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코리아 디스카운트 주장은 무리
발렌베리 가문 지배구조가 하나의 대안

 


상속세가 기업 지배구조를 왜곡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치르게 하는 원흉으로 지목되어 연일 성토 대상이 되고 있다. 5년동안 12조원을 분납하기로 한 삼성 오너일가가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쏟아낸 대량 매물로 삼성전자 주가가 해외 반도체 경쟁사들 주가 상승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2월 5일로 다가온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과정의 ‘경영승계 불법 의혹’에 대한 이재용 회장 1심 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세간의 관심이 더 집중되는 것 같다. 상속세가 지배구조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삼성그룹에 국한된 일만도 아니다. 교보생명, 현대차, LG, SK, 넥슨 뿐만 아니라 최근 한미약품에 이르기까지 상속세가 재벌 대기업 승계구도와 지배구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상속세가 이들 대기업 오너들의 지배력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상속세 제도를 아예 없애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상속세가 지배구조 이슈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지는 의문이다. 개별 가문의 이익과 사회공동체의 가치가 조화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이다.

스웨덴의 높은 상속세는 제약회사 아스트라를 파산시켜 영국의 제네카와 합병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글로벌 기업지배구조의 모범으로 자주 인용되는 발렌베리그룹(Wallenberg)의 사례를 낳기도 했다. 1856년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은행을 설립하며 시작된 발렌베리그룹은 ‘존재하나 드러내지 않는다’는 가훈으로 ‘소유는 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경영원칙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글로벌기업 운영을 통해 스웨덴 GDP 약 30% 정도를 생산하고 주식시장의 50%에 달하는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스웨덴의 ‘국민기업’이다. 공익재단 설립을 통해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고 기업 지배구조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발렌베리그룹은 상속세로 파산해 영국 제네카에 합병되어 탄생한 아스트라제네카(코로나백신 생산 제약사)를 비롯해 세계적인 베어링회사 SKF, 유럽 최대 제지업체인 스토라엔소, SAS 항공사 등 수많은 글로벌기업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최근 정치권까지 가세해 상속세가 한국 주식시장의 디스카운트 주요인이라는 주장까지 덧붙여지며 연일 언론에 노출되고 있다. 상속시점에 주가 상승이 상속세 부담을 늘려 배당 등 주주가치 환원과 기업 본업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실증적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연성 만으로 상속세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자본시장연구원 연구결과(2023년 2월)에 의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주가순자산비율(PBR, Price to Book-value Ratio) 기준 상위 선진국에 비해 40~50% 수준으로, 분석대상 45개국 중 41위로 거의 맨 밑바닥이다. 주요 원인으로 미흡한 주주환원, 저조한 수익성과 성장성, 취약한 지배구조와 회계 불투명성 등을 꼽았다. 상속세 보다는 기업 본연의 내부적 경영 이슈가 더 큰 요인이라는 시각이다.

기업 경영 효율성이 낮고 지배주주의 사적이익 추구 가능성이 높은데도 무능한 지배주주를 교체하기 어려운 한국적 기업지배구조로 인해 외부 비지배주주 이익과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현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야기한다는 판단이 더 합리적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을 자랑하는 일본(55%)의 니케이 지수가 지난 10년간 145% 이상 상승하는 동안 한국 코스피는 28% 상승에 그쳤다. 같은 기간 나스닥 상승률이 284% 이상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미국의 상속세율도 최고 40%로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한국 주식시장 저평가 요인을 높은 상속세 탓만으로만 돌리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불로소득이든 근로소득이든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어야 한다는데 모두 동의한다. 경제주체들이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사회공동체가 기여한 노력에 상응하는 댓가로 거둬가는 것이 세금이다. 상속을 받는 입장에서 상속세는 근로소득이 아닌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이다. 상속 자산의 축적에 직접 기여 정도가 크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상속을 주는 피상속인 입장에서는 자신의 DNA가 후대로 잘 이어지길 갈구하는 인간의 생물학적인 원초적 욕망이 자신의 자녀에게 좀 더 나은 환경과 여건을 물려주려는 행위로 표출되면서 사회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규율과 충돌하기도 한다. 개별 가문의 이익과 사회적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상속세 논란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직간접적인 사회 도움으로 형성된 부가 가족공동체 뿐만 아니라 사회전체로 환원되도록 해야 한다는 시각이 다른 어느 세금보다 더 깊게 깔려 있는 것이 상속세이다. 그 만큼 감시하는 눈이 많고 선의로 이루어진 행위나 제도운영 마저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경향이 있다. 빌게이츠 워런버핏 조지소로스 등 세계적인 부자들 뿐만 아니라 삼성 현대 LG 등 전통 재벌그룹과 박현주 김범수 김봉진 등 최근 자수성가한 기업가들이 운영하는 공익재단이 그들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평가절하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결국 재단운영의 투명성과 합리성이 관건일 것이다. 발렌베리 가문이 그룹의 지배구조를 잘 유지하며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스웨덴의 노·사·정이 사회적 대타협으로 이끌어낸 ‘살트셰바덴협약’(Saltsjöbadsavtalet Agreementt)이 있어 가능했다는 평가이다. 발렌베리그룹 오너들은 상속세나 증여세 없이 보유주식을 공익재단에 출연하고 ‘차등의결권’을 보장 받기 위한 조건으로 고용 유지와 노동자 대표의 이사회 참여를 허용하고 공익재단은 배당수익의 80%를 과학기술분야 등 공익적 목적으로 기부하고 운영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기업의 지배구조 안정화는 매우 중요하다. 기업 스스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시장의 기대와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훼손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

변화되는 경제환경과 사회적 가치규범에 맞추어 상속세 뿐만 아니라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합리화시키는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사회공동체의 지속가능성 제고라는 사회적 가치와 개별 가문의 이해가 조화되고 경제주체들이 나눌 수 있는 파이가 커지는 쪽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제도 개선이 되어야 한다. 상속세가 대기업 재벌그룹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나쁜 일인가?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