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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금융 불신'의 시대, 보험사가 살길

Numbers_ 2024. 2. 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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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금융 불신'의 시대, 보험사가 살길

보험에 대한 신뢰는 합리적 가정을 통해 구현된다상생금융 보다 원칙에 충실한 게임의 룰 만들어야요즘처럼 금융이 불신과 조롱 받았던 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2019년 금융위원회가 조사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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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에 대한 신뢰는 합리적 가정을 통해 구현된다

상생금융 보다 원칙에 충실한 게임의 룰 만들어야


요즘처럼 금융이 불신과 조롱 받았던 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2019년 금융위원회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금융회사 윤리의식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74%에 달한다. 부정적 의견이 팽배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금융인들 스스로 되돌아보는 일이 먼저일 것 같다. 상품 판매 후 고객에게 신경 쓰지 않고, 사고나 피해 발생시 책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영진이 소비자 보호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부정적 평가를 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금융위원회 조사 후 5년이 지난 지금도 연일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는 금융회사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은 더 커졌 있을 것 같다.

금융업 중에서도 보험은 항상 민원이 가장 많기로 유명하다. 사고보험금 지급을 꼼꼼하게 따지고 가입자의 돈을 더 잘 관리하려는 과정에서 특히 민원이 많이 발생한다. 2022년 금융감독원 금융분쟁 조정 처리현황을 보면 전체 34,686건 중 보험부문이 87%로 압도적으로 많다. 펀드 ELS 대출 등 최근 금융권의 수많은 이슈를 달고 다니는 상품을 취급하는 금융투자와 은행의 분쟁조정 처리는 각각 9%, 4%로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다. 보험에 대한 불신을 제공하는 것이 보험사만은 아니다. 보험사기가 해가 갈수록 도를 넘고 있다. 경기가 나빠질 수록 보험사기는 더 늘어난다. 2022년 중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1조 818억원으로 5년 전 보다 35.5% 증가하고 건수도 10만2669건으로 30% 늘었다.

보험시장에 대한 불신과 시장왜곡 현상은 보험계약의 낮은 유지율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기준 생명보험 유지율을 국가별로 보면 13회차 유지율은 한국 84.8% 미국 91.9% 일본 95.3% 싱가폴 99.3%로 한국이 가장 낮다. 25회차 유지율은 한국 61.4% 미국 84.9% 일본 88.2% 싱가폴 96.1%로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의 생명보험 유지율 하락폭이 급격하게 올라간다. 그만큼 생명보험 시장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처럼 보험을 둘러싼 전반적인 환경이 불신을 키워 모두를 루저(loser)로 만드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나쁘게 확산되고 있다. 2023년 대부분의 보험사들 경영실적이 경이적이지만 시장과 감독당국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보험업 밸류 체인의 전반부인 상품설계와 판매단계에서부터 사고보상과 사후관리 단계인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매 단계마다 불신을 야기하는 요인들은 많다. 사고보상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영역을 논외로 하면 상품설계와 판매단계부터 보험사 스스로 신뢰를 잃지 않도록 원칙에 충실한 관리시스템 구축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보험계약을 통해 보험사가 지게 되는 리스크는 매우 장기간에 걸쳐 나타난다. 리스크를 자기책임으로 안고 가는 투자상품과 달리 보험은 미래의 불확실한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약관에 명시된 보상책임을 보험사가 이행해야 한다. 보험사가 망하지 않는 것이 고객신뢰 확보의 핵심이다. 이런 이유로 보험계약의 미래 편익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보험사가 설정한 여러 경제적가정이나 계리적가정의 합리성과 적확성을 따지는 이유이다. 가정이 조금만 변해도 장기 현금흐름이 크게 바뀌고 상품 출시 여부 등 중요한 경영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생명보험사들의 단기납종신보험이나 손해보험사들의 무(저)해지보험들 역시 보험계약 유지율 가정을 어떻게 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보험사 경영성과의 신뢰성은 가정관리의 합리성과 적정성을 통해 확보된다.

생보사의 주력인 종신보험은 보험료 납입기간이 긴 장기보험이라 납입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해지 하는 경우가 많다. 2023년 6월말 종신보험의 유지율은 13회차 82.2% 25회차 59.8% 37회차 46.6% 61회차 33.6% 수준이다. 종신보험 가입 후 2년 정도 지나면 가입자 10명 중 6명 정도 남고 5년이 지나 계속 유지하는 비중은 3~4명 수준이라는 뜻이다. 종신보험은 보험료를 완납한 이후에는 해지환급율이 높지 않고 사망보험금 규모가 크기 때문에 계약을 계속 유지할 니즈가 커진다.

반면 최근 유행하는 단기납종신보험은 납입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완납 후 해지환급율이 높기 때문에 납입기간 중의 유지율은 높지만 보험료 완납 후에는 오히려 해지가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기존 종신보험의 경험유지율을 단기납종신보험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보수적인 경영을 견지하는 보험사들은 단기납종신보험의 완납후 해지율 증가폭을 완납시점 해지율 베이스로 20% 이상 높게 쇼크(Shock)를 적용하여 매우 보수적으로 경영관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보험사들은 기존 종신보험 해지율을 그대로 적용하며 해지환급율을 높게 설정해 공격적인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장기보험시장에서 손해보험사들의 주력 상품인 무해지보험 역시 유지율 가정에 대한 차이에 따라 손익전망과 경영전략이 갈린다. 무해지보험은 같은 조건의 위험을 저렴한 보험료로 보장해주는 대신 해지환급금은 거의 돌려주지 않는 보험상품이다. 가격을 낮춰 많은 신계약을 끌어들일 수 있어서 설계사 소득 획득과 보험사 신계약 성장에 당장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보험료 납입기간 중에 해지율이 예상보다 많지 않고 만기까지 계약 유지율이 높아질 수록 보험사는 지급보험금 부담이 커진다. 보험사들이 기존의 장기보험상품 경험해지율을 무해지보험의 손익분석 가정에 그대로 적용해 무리한 손익추정으로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 보험사 미래이익 재원)을 과대 계상하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커진다.

단기납종신보험은 10년 후 생보사들을 대량해지 리스크에 노출시키고 무해지보험은 보험료 납입 종료 후 보험금 지급증가로 손보사들이 어려움에 봉착할 위험을 키운다는 걱정이지만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리스크의 정확한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단기업적에 매몰된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지고 새로운 회계제도(IFRS17) 이행기의 혼란과 맞물리면서 인과관계 규명이 어려워 보험경영 전반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험을 불신하게 만드는 요인은 또 있다. 과도한 판매수수료와 시책비 등 불합리한 판매 인센티브시스템이 보험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불건전 영업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항상 지적된다. 판매인들의 교섭력이 우월한 상황에서 보험사가 단기 매출을 늘리기 위해 수수료와 시책비를 정해진 예정사업비보다 초과해 과다 집행, 회사의 장기 수익기반을 약화시키고 판매시장의 혼탁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현재 수수료와 시책비는 계약체결 시점에 선지급하는 시스템이 일반화되어 있다. 선지급한 수수료는 일정기간(보통 18개월) 계약유지를 못하면 환수된다. 이러한 수수료 선지급 시스템이 환수기간이 지난 보험계약을 해지하여 새로운 상품으로 가입시키는 소위 ‘승환계약’을 유발하여 고객가치와 보험사 수익기반을 훼손하는 불건전 영업환경을 유지시키는 요인이 된다. 모집수수료와 해약환급금으로 되돌려 받는 금액의 합계가 납입보험료 보다 많으면 차익거래(Arbitrage)가 일어난다. 판매인들이 언제든지 부당한 승환계약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포화상태인 보험시장에서 승환계약을 통해 끊임 없이 신계약을 만들어내야 설계사 소득이 발생하고 경쟁구도를 흔들어 보험사들은 양적 성장과 시장확대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더구나 IFRS17에서 사업비 회계처리가 보험 잔여만기까지 분할하여 이연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중도해지가 일어나기 전까지 손익평가는 나쁘지 않을 수 있어 실질적 역마진을 감수한 신계약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 승환계약은 고객들의 보험 리모델링 차원의 긍정적 효과 보다 중도해지에 따른 고객가치 파괴와 보험사 재무 안정성 훼손으로 인한 보험업 전반의 불신을 더 키우는 부정적 영향을 가져온다. 현행 선취수수료 제도운영을 후취수수료제도로 바꾸고 시책비도 수수료에 포함시키는 등 판매인센티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보험업의 불신을 줄이고 건전한 보험영업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보험사 내부적 이슈가 ‘보험 들면 손해다 보험 해약하면 더 손해다 보험금 청구하다 화병으로 죽는다’ 등 보험에 대한 일반인의 부정적 인식을 더 고착화시키는 것 같아 안타깝다. 좋지 못한 편견과 선입견이 지속되면 보험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보험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며 결과적으로 보험금융 서비스가 절실히 필요한 소비자들의 후생도 훼손시킨다.

유지율을 포함한 보험사 가정관리의 합리성을 높이고 수수료체계 등 판매 인센티브 시스템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는 보험의 신뢰 회복은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 보험시장은 자동차와 일반보험을 제외하면 34개의 생손보 보험사들이 같은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이다. 설계사 등 판매조직의 교섭력이 우위의 상황에서 판매수수료 운영체계를 바꾸는 일은 어느 한 회사가 주도해서는 당연히 성공할 수 없다. 행정력과 감독권을 가진 금융당국이 보험상품 제조 및 판매시장의 규칙을 재설정하고 건전한 판매시장 질서를 유지하려는 주체로 적극 나서야 성공할 수 있다.

‘상생금융’을 통한 고리 뜯기 보다 게임의 룰을 합리적으로 다시 만드는 것이 보험산업의 건강한 시장질서 유지와 신뢰회복에 도움이 될 것 같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