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여전히 저평가된 금융지주, 금융회사 시가총액은 누가 결정하나?

Numbers 2023. 9. 18. 14:32

출처=KB금융 홈페이지.

 

허정수 전 KB금융지주 CFO

기업의 시장가치(시가총액)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 회사에서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고, 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시장 참여자들의 생각이 숫자로 나타난 결과이다. 돈을 벌어서 이해관계자들과 나누는 그 회사만의 고유한 시스템을 다수의 집단지성이 종합적으로 평가한 성적표인 것이다. 그래서 시장은 똑똑하고 정확하다고 한다. 단기 이벤트와 쏠림으로 본괘도를 벗어나기도 하지만 시장가치는 장차 기업이 만들어내는 재무적 가치를 중심으로 수렴해간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금융사들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회사가 일궈온 재무적 가치를 지나치게 낮게 보는 것 같다. 그만큼 투자자들이 한국 금융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본다는 의미일 것이다.

글로벌 금융사 시총 순위 20위(2023년 7월 30일 기준, 미스터 캡)로 랭크 되고 있는 KB금융 시가총액이 2023년 9월 15일 현재 23.1조원으로 2위 신한지주와 3.5조원 정도 차이가 벌어져 있다. 2021년 1월 초 1.4조원, 2023년 1월초 2조원에서 차이를 점점 더 확대하고 있다. 시장 투자자들은 KB금융이 그룹의 비즈니스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한 경제적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것과 함께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 거버넌스 안정성 등에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수년에 걸쳐 KB금융은 손해보험, 증권, 생명보험 등 국내 취약한 섹터를 보강하며 그룹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어느 정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3년 상반기 영업이익에서 은행(59.6%)과 카드(6.2%) 비중이 낮아지고, 보험 (20.6%), 증권(10.9%) 등 부채 및 수수료 베이스 비즈니스 비중이 높아져 수익구조가 보다 안정된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는 모습이다. 신한지주도 오렌지라이프 인수 이후 보험비중(12.1%)은 높아지고, 은행비중(63.8%)이 낮아지고는 있지만 은행과 카드 등 레버리지를 수반하는 자산베이스 비즈니스 비중이 77.2%로 아직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또 한가지 주목할 부분은 최근 들어 다양하게 노출되고 있는 운영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양사에 대한 시장평가가 엇갈리는 듯한 모습이다. 불완전판매 등 펀드 이슈에서 희비가 엇갈린 가운데 디테일한 내부 프로세스에 대한 시시비비는 있겠지만 시장과 고객들은 냉정하게 자기 중심적으로 평가하여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의 생명은 신뢰이다. 실물과는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는 금융상품을 살 때 잘 알지도 못하고 믿지 못하면 거래가 성사되기 어렵다. 고객들이 금융사와 판매인들을 믿기 때문에 돈을 내고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금융 비즈니스는 ‘한 사람이 일하고 세 사람은 감시’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내부통제와 리스크관리가 중요하고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이다.

아울러 거버넌스로 통칭되는 지배구조관리시스템이 얼마나 잘 작동되는 지도 역시 매우 중요한 투자판단 고려사항이다. 주주의견을 대리하는 이사회가 회사의 미래를 위해 고민하여 내린 결정에 대해 시장은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최근 진행된 최고경영자 승계프로그램에 대한 비교평가도 냉정한 시장 투자자들의 눈이 놓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내재적 가치와 비교한 시장평가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KB금융이 상장된 2008년 10월 시가총액 16.7조원으로 출발하여 2018년 1월 28.7조원을 정점으로 아직 전고점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신한지주 역시 2001년 9월 3.3조원으로 시작하여 2017년 8월 26.2조원의 최고치 이하에서 맴돌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금융사들이 지난 수년동안 PBR 1을 한참 밑도는 장부가치의 30~40% 정도 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금융사 중에서 시가총액이 장부가치를 웃도는 회사는 메리츠금융지주(2.05배), 카카오뱅크(2.17배), DB손해보험(1.05배) 정도가 눈에 뛴다.

어떤 비즈니스 섹터에서 시가총액 1위 자리에 오른 기업이 누리는 프리미엄은 생각보다 크다. 소위, 업종 대표주로 대접 받으며 큰 자금을 굴리는 기관투자들 뿐만 아니라 소액투자자들에 이르기까지 그 회사의 지속가능 성장에 대한 믿음이 투자시장 전반으로 확산되어 더 싸게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으며 영업추진에도 많은 이점이 생기게 된다. 또한 업계 리더라는 자부심과 더불어 경제적 보상도 기대할 수 있어서 종업원들과 경영진에게도 좋은 일인 것이다. 그런데도 국내 금융업 섹터 시가총액 수위에 있는 회사들 대부분이 시장에서 제값을 못 받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경영상의 잘못된 판단과 거버넌스 이슈 등 기업 내부역량이 부족해서 일 수도 있다. 또한, 금융산업 성장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주지는 못하고 배당규제나 은행주 보유 제한 등 규제 영향도 무시 못할 것이다. 그동안 금융사들 나름대로 꾸준히 돈을 벌며 흡족하지는 않지만 배당율도 지속적으로 높이고 건전성도 잘 관리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결과적으로 시장의 기대를 충족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2023년 상반기 4대 금융지주들의 당기순이익이 9조 3434억원으로 각 사 창사 이래 최대규모라 하여 주가수준도 상당폭 회복되고 있지만, 이익의 질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익증가 절반 이상이 전년동기 대비 금리변동폭 확대에 따른 유가증권관련 이익과 규제 변화로 인한 보험손익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다. 예측 가능성이 낮으면 경영관리와 투자판단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시장 투자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경영진들의 차별화된 전략과 경영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정체된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진출과 규제완화 분위기를 활용한 비금융분야 확장 등 다각적인 성장전략을 고민하고,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안정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어 전달하는 것은 당연히 금융사 경영진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아울러 시장 질서를 유지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제도와 규제의 틀을 짜고 물꼬를 내주는 일은 당국이 해야 할 일들이다. 최근 보험회계 이행과정에서 보여준 논란처럼 규제로 인한 불확실성은 시장의 신뢰를 잃는 중요한 요인이다. 시장의 신뢰를 잃고 투자에 혼선을 주는 일은 한국 금융회사의 제값 받기 노력에 역행하는 것이다.

시장가치를 올리려면 더 많은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게 만들어야 한다. 투자자들의 최대 관심은 회사의 지속가능성과 투자한 돈에 대한 보상 기대일 것이다. 국내 주요 금융그룹들이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의지를 가지고 실행하는 것은 시장가치를 높이기 위한 중요한 노력의 일환이다. 보통주자기자본비율(CET-1비율 12%~13%)과 배당성향(30% 내외)의 목표치 제시, 분기배당 실시,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 시장친화적 조치를 앞서서 추진하는 금융사들이 더 큰 관심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동안 공공성을 강조하며 배당자제와 충당금 확충을 요구하던 금융감독당국 수장이 최근 해외 IR과정에서 주주친화적 발언을 쏟아내자 시장이 크게 반응하고 있다. 규제 불확실성과 정보 비대칭성 해소, 정책 일관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원론적 멘트에 그치지 않고 투자자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주주친화정책을 펴기 위해서 금융당국이 배당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구체적인 발언이 전해지면서 금융주에 대한 분위기도 바뀌는 모습이다. 한국에서는 금융회사 자체 노력만으로 회사 제값 받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 금융사들에 대한 평가가 박해지면 그만큼 전반적인 신용도가 저하되고 자금조달 등 치러야 할 비용이 커진다. 이 비용은 개별 금융회사들 혼자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가 결국 나눠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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