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한화생명의 자회사형 GA에 거는 기대

Numbers 2023. 9. 25. 21:37

요즘 보험업계가 여러 큰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단연 회사 가치측정 기준이 되는 IFRS17 회계제도 도입과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논란들이다. 각 이해관계자들 처지에 따라 다양한 측면에서 이견과 이해조정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에 못지 않게 큰 파급력으로 장기적 영향이 예상되는 변화는 보험판매조직 재구축관련 이슈들이다. 과거 실패한 모델로 평가되던 “자회사형 GA(General Agency)” 모델이 진화하면서 보험업 제판 분리를 넘어 금융업 전체 제판 분리의 페이스메이커 역할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관심거리이다.

2004년 9월 푸르덴셜생명이 자회사형 GA(‘지브롤터마케팅’)를 설립한 이후 다수 보험사들이 당면한 경영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추진했지만 초기 투자비용과 설계사 조직구축 난항, 전속채널 조직과의 이해상충 등으로 손실이 누적되면서 매각하거나 본사 조직에 흡수되는 등 사실상 대부분 철수했다. 그런데 실패했던 자회사형 GA 모델이 운영 형태를 달리하여 다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상품제조와 자산운용은 본사, 그리고 영업은 판매자회사로 분리하여 전문성과 조직운용 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속사 상품만 팔아야 하는 제약으로 전속설계사 영업력 위축과 소득감소, 조직 이탈이 더 큰 현실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이처럼 본사 전속판매조직을 전격적으로 분리하여 별도 회사로 운영하는 실질적인 제조와 판매의 분리는 2021년 한화생명이 ‘한화금융서비스’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어서 미래에셋생명, KB라이프, 흥국생명 등 다수의 생명보험사를 중심으로 자사 전속채널을 떼어내 자회사형 GA 자회사 운영을 이미 시행하거나 검토 중인 회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상반기 신계약매출에서 한화생명이 영원한 1등 삼성생명을 추월하는 등 판매채널 전략 변화가 실제 영업실적으로 가시화될 조짐을 보이자 강력한 전속채널 경쟁력으로 버티던 삼성생명도 GA 전략에 상당한 변화를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직 지속 가능성에 대한 평가는 좀 이르지만 전속채널을 자회사형 GA로 따로 떼어낸 ‘한화금융서비스’와 ‘미래에셋금융서비스’의 올해 분기실적이 단기에 흑자 전화되고, 사업비율 등 모회사 경영효율과 실적도 개선되고 있어 더욱 관심이 커지는 것 같다. 당분간 보험 판매시장은 ‘전속’, ‘자회사형 GA’, ‘일반GA’ 간 채널 경쟁력 확보를 위한 치열한 주도권 경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보험사 ‘전속채널’은 GA 시장의 성장과 반비례하여 지속적으로 위축되어 왔다. 현재 GA 소속 설계사가 17.3만명(2023년 9월)으로 보험사 전속설계사(16.2만명 )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전속설계사가 8만명 이상 감소했는데 당분간 이런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신규계약도 생명보험시장에서 전속 비중이 69.8%(2006년)에서 28.9%(2021년)로 약 40% 이상 하락하는 동안 GA 비중은 반대로 9.5%에서 34.3%로 크게 성장하며 전속채널을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GA 영향력이 커지면서 에이플러스에셋(2021년)과 인카금융서비스(2022년) 등 몇몇 대형 GA들이 IPO를 통해 제도권 자본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며 투자자들 관심도 커지고 있으며, 중소형 GA들의 합종연횡과 대형화, 보험사 GA 지분투자와 M&A, 일반투자자 자본유치 등 GA 업계 지배구조 변화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급속한 GA 시장의 성장은 경쟁관계에 있는 보험사 전속판매채널 운영체계를 근본적으로 고민하게 만들고, 과거 실패한 모델인 '자회사형 GA'를 다시 고쳐서 들고나오게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자회사형 GA는 과거 모델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우선 본진인 전속채널을 통째로 떼어 옮기고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과거 저효율 조직 정리 등 본사 효율과 비용관리 차원에서 주로 접근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두번째는 대규모 리쿠르트와 M&A 등 투하되는 자본이 과거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는 것이다. 단기간에 시장을 주도하며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손익구조 개선을 도모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세번째는 지향하는 비전이 단순히 자사 상품을 좀 더 많이 파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자체적인 수익모델을 만들어서 IPO를 추진하고, 장차 우리나라 금융업 전체 판매망 변화까지 염두에 두고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6년 한화생명금융서비스 기업공개 목표가 성공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이다.

물론 당분간 모회사 상품을 더 많이 팔도록 수수료 운용 등 다양한 유인책을 쓰면서 단기적 충격을 관리하겠지만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는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GA 역할은 시장에서 좋은 상품을 소싱하여 필요한 고객에게 잘 연결하는 것이다. 잘 팔려면 고객 사정에 꼭 맞는 ‘싸고 좋은 상품’을 찾아야 한다. 팔면서 챙겨 받는 ‘수수료’가 GA 수익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싸고 좋은 상품’과 ‘높은 판매수수료’가 GA를 움직이는 동인인 셈이다. 자회사형 GA가 모회사 브랜드 파워를 앞세우고 든든한 자본력 덕분에 수수료를 좀 넉넉히 챙겨 받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할 수 있다. 지금은 수수료가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시기이고 앞으로도 판매조직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으로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싸고 좋은 상품’은 좀 다른 문제이다. 무작정 ‘높은 판매수수료’ 지급만으로는 고객 설득과 원수보험사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상품 제조능력이 장기적으로 ‘자회사형 GA’ 판매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GA 장점이 회사를 가리지 않고 시장에서 ‘가장 싸고 좋은 상품을 소싱’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회사형 GA’ 재출현은 원수보험사에 구속된 ‘전속’의 한계(조직육성과 신계약창출 애로) 극복을 위한 고육지책이다. 특히 일반 GA들과 경쟁하며 지속적인 성장과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에 고객에게 편안하게 제안할 수 있는 좋은 상품을 만들어주는 보험사를 찾을 수 밖에 없다. 모회사 상품이라 해도 고객이 외면하는 상품을 판매수수료 많이 준다고 밀어내기 식으로 팔면 반드시 탈이 생긴다. 상품제조사 수익이 망가지거나 고객가치 훼손과 불완전판매, 보험업 전반에 대한 불신 등 수많은 부작용들이 넘치도록 목격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까지는GA 채널 성장이 손보사보다 생보사에 더 큰 타격을 입힌 것으로 보인다. 2023년 6월말 현재 생명보험 전속설계사(58,997명)가 10년전 보다 8만7422명 감소했는데, 손해보험 전속설계사는(10만3305명) 오히려 7405명 증가했다. 대면영업 보험에서 매출은 조직수에 비례한다. 구조적으로 상품가격 경쟁력이 손해보험에 밀리는 생명보험사들이 먼저 판매망 변화에 나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경쟁력 있는 상품을 제공할 수만 있다면 ‘전속채널’ 유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생명보험사들은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손해보험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경험위험율을 활용하여 생명보험보다 저렴한 상품을 공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상해보험의 담보 가지수가 상상 이상으로 많고 고객의 처지도 다양하기 때문에 소위 ‘정보의 비대칭성’이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영역이다. 당연히 소비자들이 객관적으로 상품을 비교하기 어렵고 설계사 의도에 끌려 다닐 가능성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손해보험사들이 판매채널 변화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은 생명보험사 중심으로 판매망 변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손해보험사들도 이미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다. 높은 보험 침투율과 인구학적 변화로 보험산업 성장이 지체되는 불리한 거시적 환경 속에서 소비자 편익과 정보 투명성 강화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비교설명 의무와 고객 설득을 위해 GA 영업현장에서는 이미 꼭 필요한 ‘위험’과 ‘보험상품’을 매칭하여 손생보 가리지 않고 모든 보험사 상품을 아우르는 ‘최적 포트폴리오 조합’을 고객에게 제안해 왔으며 이는 시스템적으로 더 고도화되고 고객 이해도를 직관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특히,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의 비교추천 서비스가 가세되면 이러한 추세는 훨씬 더 빨라지고 심화될 것이다.

금융상품 판매채널 변화 요구는 보험에 국한된 이슈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 은행의 방카슈랑스 규제완화, 자본시장의 펀드수퍼마켓 및 통합자문플랫폼 추진 등 금융권 전반에 판매망 관련한 여러 논의가 진행 중이다. 외환위기 직후(1998년 12월) 은행에 펀드판매가 허용되고, 이어서 '방슈랑스랑스' 제도가 도입(2003년 8월)되면서 금융상품 제판 분리가 금융업권 외부로 확대되었지만 강력한 전업주의 금융정책의 벽을 크게 허물지는 못했다.

금융위기 직전 59.7%(2007년)까지 증가했던 은행의 공모펀드 판매비중이 최근 라임, 옵티머스 등 불안전 판매 이슈와 직원 불법행위 등 다수의 금융불신 분위기 확산과 함께 투자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이 급속히 약화되면서 최근 28.8%(2023년 7월말) 까지 추락했다. 지난 20년간 공모펀드시장이 81.7조원(2003년말)에서 218.4조원(2023년 7월말)으로 2.7배 성장하는 동안 은행원 판매비중은 20년 전 수준(2003년말 21.1%)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은행 플랫폼과 은행원을 끼고 자산관리를 해오던 고객들의 마음이 변해서 떠나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방카슈랑스 역시 전형적으로 규제당국과 공급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제도이다. 고객가치와 편의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규제를 풀고 선택폭을 넓혀주는 것이 맞는 방향일 것이다. 은행 종속과 보험 전문성 부족, 설계사 소득 감소 등 여러 제기되는 문제들은 제도적 장치와 현실적 대안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지 20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덮어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최근 금융당국이 핀테크 플랫폼에 대해 금융상품 비교추천서비스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얼마나 시간이 걸려야 당초 그리던 그림이 완성될지는 모르지만 금융소비자들의 가치 파괴가 아니라 그들의 가치를 늘리고 지키는 방향으로 시장과 제도가 바뀌어야 모두가 즐거운 상황이 될 것이다. 제도시행 초기 시장조성과 제도안착을 명분으로 공급자와 판매자 중심으로 추진되는 경향 때문에 고객가치 보호는 차순위로 밀리게 경향이 많았는데 미흡했던 제도적 보완이 아직도 진행중이고 관련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보험침투율(명목GDP대비 수입보험료 비율)이 11.5%(2022년)로 글로벌 국가 중 매우 높을 뿐 만 아니라 가구와 개인의 보험가입율(가구 98.2%, 개인 95.1%, 2019년 조사)이 거의 100%에 근접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사들의 판매채널 변화 노력은 통상의 성장전략 차원을 넘어 생존이 걸린 절박함의 발로인 것이다. 지금 진행중인 생명보험업계의 제판 분리 전략이 성공하여 보험업권을 넘어서 우리나라 전체 금융산업 판매망을 변화시키고 효율적인 금융산업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기제로 작동되길 기대해 본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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