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나는 아내와 이마트에 계속 가고 싶다

Numbers 2023. 10. 4. 12:38

휴일이면 아내와 집 근처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자주 찾는다. 넓고 시원한 매장, 다양하고 기발한 새로운 상품들, 생각지도 못한 밀키트 식료품들… 시식과 구경하는 재미는 시골 전통시장에서 느끼는 맛 이상으로 쏠쏠하다. 어차피 필요한 물건을 사야 하고 무엇보다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값비싼 백화점이 아니어서 내심 다행이라 여기며 귀찮을 때도 있지만 가급적 동행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마트는 2011년 신세계의 대형마트 사업부문을 인적 분할하여 출발한 대한민국 대표 생필품 거래소이다. 2023년 6월말 현재 전국 154개 대형마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먹거리 장 보러 간다’는 뜻이 ‘이마트 간다’ 로 통용되는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자랑하는 한국 유통업계의 강자이다. 그런데, 최근 단행된 이마트 신세계 경영진 인사를 보며 장차 아내와 주말 데이트 장소가 바뀔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2023년 상반기 (연결기준) 이마트 매출은 14.4조원, 영업이익 -394억원, 당기순이익 -1005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별도재무제표 기준으로도 매출 7.4조원 영업이익 385억원, 당기순이익 169억원으로 아직 흑자 유지는 하고 있지만 시계열 추세를 보면 상당히 걱정스러운 모습이다. 분사 이후 감소세이기는 하지만 최소 4600억원 이상을 고수하던 영업이익이 2019년 1500억원 대 수준으로 주저 앉은 하락세가 멈추질 않고 급기야 적자 전환한 것이다.

지난 7년간 이마트 본업에서 창출되는 영업활동 순현금흐름도 매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별도기준으로 2016년 7309억원에서 2022년 3766억원으로 50% 가까이 반 토막이 났다. 또한, 과거 7%(2013년) 대 이상을 보이던 영업이율이 10년 만인 2023년 상반기 급기야 0.5% 대로 추락했다. 단기간에 자본투자가 늘면서 금융비용이 증가하고, 보유 부동산을 매각하여 리스로 돌리면서 리스부채 상환 부담 등 투자활동 현금흐름도 부정적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먹는 장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이마트 분할 상장 초기 매년 영업이익 7000 ~ 8000억 이상을 보이며 시장 투자자들의 각광을 받아온 회사가 점점 시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더욱 우울한 것은 그동안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해온 이마트의 자체 매출과 영업이익률 하락이 지속되면서 그룹 전체실적을 더 이상 견인하지 못할 지경이라는 투자자들 진단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쿠팡 효과’로 불리는 e커머스 시장변화 대응과정에서 2019년 이후 다수의 회사들을 인수했다. 최근 5년간 약 5조원 이상의 자금을 쏟아 부은 신성장동력 확보전략이 아직 뚜렷한 성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투자한 회사들 중 스타벅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회사들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짐 콜린스(Jim Collins)는 잘 나가던 회사가 어려워져 가는 ‘징조’를 5단계(자만 – 욕심 – 부정 – 구원 – 소멸)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How The Mighty Fall). 이 프레임을 모든 기업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 내가 속한 회사는 어떤 단계에 있을까 자문해 보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회사들이 당면한 문제 해결 실마리를 찾고 대응해 가는 과정에서 참고할 부분이 제법 많다고 생각한다. 모든 병의 초기 진단은 어렵지만 치료는 비교적 쉽다. 반면, 병이 깊어지면 진단은 쉬어도 치료가 훨씬 어렵다. 사람도 기업도 가장 잘 나갈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초기 진단이 어렵다는 의미일 것이다.

앞선 경영자들이 이룩한 성공과 자산을 발판으로 더 큰 성취를 만들어가는 경영자도 있다. 반면, 자신이 만든 성공이 아닌 것을 자기 능력으로 착각하고 자만하여 쇠락해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 나타나는 ‘자만’을 1단계 징조로 제시한다. 동일한 대형 할인마트 사업모델을 운영하며 잘 나가던 ‘에임스(Ames Department Store)’와 ‘월마트(WallMart)’의 명운을 가른 것은 경이적 성공 뒤에 오는 이 ‘자만’을 관리하는 최고경영자의 내공이라고 정리한다. 샘 월튼(Sam Walton, 월마트 창업자)의 기본에 충실한 겸양과 배움의 자세가 각인된 조직 DNA가 승리한 것이라는 결론이다. 월마트의 뼛속에 심어진 DNA ‘서민도 부자가 구입하는 것과 같은 물건을 살 수 있게 한다’는 미션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월마트를 이끄는 도그 맥밀런(Doug McMillon)은 물류창고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24년만에 CEO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다른 사람의 경험과 지혜를 통해 배우고 새로운 시각을 갖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창업자 샘 월튼의 ‘배움과 겸손’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월마트의 미션 실현 방법을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하여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방식’을 고객 입장에서 구현하기 위해 ‘밸류 체인과 프로세스’를 스마트하게 변화시켜가고 있다. 아마존 돌풍 영향으로 2015년 35년만에 처음으로 겪은 매출감소 위기를 극복한 동력은 월마트의 창업 핵심가치를 잊지 않은 결과로 평가된다.

‘자만’을 성공의 작은 부작용 정도로 적당히 포장하여 넘길 일은 아니라고 본다. 자만은 앞에서 이룩한 성공과 찬사에 대한 부담을 벗어나려는 섣부른 욕심을 낳는 불행의 씨앗이 된다. 무리한 성장 추구, 비용 통제 어려움, 조직관리 비효율 등 쇠락 징후 2단계로 나아가는데 자만이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다. ‘핵심가치’를 벗어나거나 ‘경제논리’ 보다 다른 동기로 대규모 기업인수를 하는 등 자기 통제와 규율 없이 ‘원칙 없는 욕심 내기’에 몰두 한다는 것이다. 변화 거부와 현실 안주로 망하기도 하지만 과도한 욕심으로 스스로 화를 자초한 기업들이 더 많은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쇠락의 3단계에 이르면 경기 싸이클 등 일시적 요인으로 치부하며 직면한 위험과 위기를 외면하고 외부 탓으로 돌리는 ‘자기 부정’ 징후들이 나타난다. 실증적 데이타 없이 무리한 목표를 세우고 확실치 않은 정보를 근거로 큰 위험을 지는 투자를 과감히 지르게 된다. 4단계의 징후는 여러 재무지표 악화가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지경이 되면서 나타난다. 기업진단 전문가들의 컨설팅 조언을 찾고 드라마틱한 반전을 이끌어 줄 외부 ‘구원투수’를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경영세계에서 ‘결정적 한방’은 없다. 요행일 뿐이다. 그리고 반전의 기회를 만들지 못하면 자본시장 리더 보드(Leader Board)에서 사라지고 사람들 시야에서 영원히 보이지 않는 5단계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각 위기 단계에 처한 모든 기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벼랑 끝으로 치닫는 열차를 되돌려 세우며 기사회생한 기업(제록스, IBM, 디즈니, 보잉, 뉴코, 노드스트롬 등)도 많다. 재기에 성공한 기업 대부분은 정확한 현실 인식과 처음 업을 시작한 목적을 잊지 않는 것에서 출발했다. 중요한 것은 재기에 꼭 필요한 피같이 소중한 자원이 다 녹아 내릴 때까지 가지 않는 것이다. 우리 서민대중들은 이마트가 추구하는 핵심가치를 ‘양질의 상품을 가장 싸고, 가장 편리하게 사람들에게 제공해 주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역대급으로 둔화되고 있는 GDP 경제성장율은 이마트를 포함한 내수 기반 기업들을 더욱 어려운 국면으로 몰고갈 것이다. 그동안 차입하기 좋았던 장기 저금리 시대를 마감하고 앞으로 상당기간 고금리 추세도 이어질 전망이다. 금융부채를 키워온 회사들은 고통스러운 이 기간을 잘 견디고 버텨내야 한다. 소위 ‘쿠팡 효과’로 일컬어지는 e커머스 시장 경쟁은 더욱 격화되고, 든든한 자금 줄 역할을 했던 부동산도 당분간 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이마트의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당면한 여러 이슈들을 잘 해결하고 재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나는 아내와 이마트에 계속 가고 싶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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