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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횡령·배임 혐의]① "금호그룹 재건하겠다"...박 전 회장의 계획은 어떻게 횡령 사건이 됐나?

Numbers 2024. 2. 1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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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횡령·배임 혐의]① "금호그룹 재건하겠다"...박 전 회장의 계획은 어떻게 횡령 사건이 됐

자본시장 사건파일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2022년 8월 서울중앙지법에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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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사건파일

 

(사진=박선우 기자. 게티이미지뱅크·뉴스1·아시아나IDT홈페이지·이 사건 1심 판결문 일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2022년 8월 서울중앙지법에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와 함께 재판에 넘겨진 임원 3명도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현재 이 사건은 박 전 회장 측과 검찰의 쌍방 항소로 서울고법 재판부에서 심리 중이다. 공판기일은 오는 3월 28일로 예정돼 있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은 금호그룹의 지배권을 되찾는 '그룹 재건 계획'(Governance Plan)을 실행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계열사 자금을 횡령하고, 이를 개인 회사에 부당 지원한 혐의 등을 받는다.

이 계획은 어떻게 진행된 걸까. 1심 판결문을 토대로 알아봤다.


박삼구 전 회장, 금호산업 주식 인수 추진

 

박삼구 전 회장은 지난 2006년 대우건설을, 2008년에는 대한통운을 사들이며 그룹의 몸집을 불렸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며 그룹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결국 지난 2010년부터 금호산업,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Workout·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을 거치는 등 채권단의 관리를 받게 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등은 아시아나항공을 포함한 금호그룹에 지난 2009년 말 기준 약 2조 8631억원, 2015년 말 기준 약 2조 5371억원의 국가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

(사진=이 사건 1심 판결문 일부)


지난 2015년 박 전 회장은 금호그룹을 재건하기 위해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였던 금호산업(현 금호건설) 주식 인수를 추진한다. 당시 한국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금호산업 주식에 대한 매각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박 전 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한 것이다.

우선매수청구권은 자산을 팔 때 그 자산을 제3자가 우선적으로 살 수 있게 하는 권리다. 앞서 지난 2014년 박 전 회장과 그의 아들은 채권단으로부터 향후 금호산업 주식을 매각할 때 개인 명의로 해당 주식 50% 및 1주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았다. 

 


지난 2015년 11월 박 전 회장은 채권단으로부터 금호산업 주식 46.5%를 약 6728억원에 인수하는 내용의 '자금조달 계획'을 승인받았다. 박 전 회장은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한 특수목적법인 '금호기업'(현 금호고속)을 통해 NH투자증권에서 3300억원을, 나머지 자금은 외부투자자로부터 조달하기로 했다. '주식 인수와 관련해 계열사 자금을 활용할 수 없다'는 채권단의 뜻이 반영된 계획이었다.

 

계열사 자금, 주식 인수에 사용

 

실상은 달랐다. 판결문에 따르면, 당초 NH투자증권에서는 박 전 회장 등이 요청한 대출 금액이 너무 커 처음부터 단독대출이 불가했다. 다른 은행이나 보험사들과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법도 검토했지만, 기존 워크아웃 전력 등으로 인해 참여 업체가 없어 대출이 쉽지 않았다.

이에 박 전 회장은 그룹 전략경영실 임원인 A씨에게 금호그룹 계열사 자금으로 주식 매수 대금 3300억원을 충당하는 방안을 추진하도록 했다. 다음과 같은 방식이었다.

 

(사진=이 사건 1심 판결문 일부)


①금호기업은 NH투자증권에서 3300억원을 빌리는 약정을 체결했다. 최종상환일은 인출일로부터 18개월째 되는 날로, 이자율은 연 5.5%의 고정금리였다. 금호기업이 앞으로 취득할 금호산업 주식 전체에 대해 NH투자증권을 위한 제1순위 근질권을 설정했다.

②NH투자증권은 위 대출 채권을 '웰인베스트먼트'로 넘겼다. 웰인베스트먼트는 박 전 회장 등이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과거 그룹에서 근무했던 B씨에게 요청해 설립한 회사다. 

이후 ③웰인베스트먼트는 해당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를 발행했다. 그런데 ④이 ABCP를 사들인 곳이 금호터미널·에어부산·아시아나IDT 등 금호그룹 계열사였다. 

금호그룹 계열사들은 이 사건의 내막을 모른 채 전략경영실 지시로 ABCP를 인수했다. 당시 계열사에서 ABCP 인수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들은 '계열사 자금이 금호산업 인수 자금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점을 전혀 몰랐고, 전략경영실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말해주지 않았다', '전략경영실의 요청은 사실상 지시에 가까웠기 때문에 따르지 않기가 어려웠다', '계약서상으로는 기업어음을 인수하기로 했으나 실제로 기업어음 실물을 받지 않았다'는 등의 진술을 했다. 

그렇게 계열사 자금 3300억원이 웰인베스트먼트를 거쳐 NH투자증권 명의의 계좌로 흘러 들어갔다. 최종적으로 해당 자금은 지난 2015년 12월 금호기업 대출금으로 사용됐다.

채권단이었던 한국산업은행 관계자는 검찰 수사에서 "박 전 회장이 금호산업 계열회사 자금을 이용해 금호산업 인수 자금으로 사용한 사실을 알았다면 산업은행에서는 절대 매각을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1심 재판부 "박 전 회장 사적인 목적으로 계열사 자금 횡령"

 

(사진=이 사건 1심 판결문 일부)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사적인 목적으로 계열사 자금을 횡령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박 전 회장의 금호산업 주식 인수를 통한 전체 금호그룹에 대한 지배권 회복이라는 사적인 목적 하에 ABCP 인수대금 명목으로 이 사건 각 피해자 회사들로부터 NH투자증권의 금호기업에 대한 대출금 재원을 조달해 해당 금원을 횡령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이어 "이 사건 각 피해자 회사들은 피고인들의 지시를 받은 전략경영실의 요청에 따라 ABCP 인수행위가 계열회사 간 거래라는 사정을 인식하지 못했다"며 "ABCP 인수자금의 실질적인 투자처 내지 수익성, ABCP 인수에 따른 담보의 형태와 규모, 구체적인 원금 회수 방안 등에 대한 별도의 검토 없이 각 ABCP를 인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금호기업이 NH투자증권 대출 채무를 갚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지난 2016년 7월 금호기업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으로 조달한 금액 일부를 NH투자증권에 상환했다. 이후 해당 자금은 아시아나IDT 등에 대한 ABCP 인수자금 원금 상환의 재원이 됐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금호기업은 별다른 재원이나 사업체를 갖고 있지 않은 SPC(특수목적법인)"라며 "피고인들이 위 BW 발행 시점에 이미 (그룹 계열사인) 금호터미널과의 합병을 예정하고 있었던 이상 피고인들로서는 금호터미널의 재원 또는 다른 계열회사의 자금으로 BW 대금 상환을 예정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들의) 변제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계열사 일부는 금호기업에 자금을 대여하는 거래를 했고, 그 외 계열회사들도 금호기업에 자금을 대여했다가 변제받기를 반복하는 거래를 했다"며 "이를 두고 피고인들의 계산으로 NH투자증권에 대한 대출채무를 변제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한번은 금호기업(금호터미널과 합병으로 당시 금호홀딩스)이 NH투자증권에 채무를 갚기 위해 C사에서 500억원을 대출받은 적이 있었다. 이후 C사는 해당 대출채권 등을 기초자산으로 기명식 무보증 사모사채를 발행했다. 인수자에는 아시아나IDT 등 금호그룹 계열사가 포함돼 있었다.

(사진=이 사건 1심 판결문 일부)


이에 대해 재판부는 "(NH투자증권 대출) 변제 재원은 금호홀딩스의 자산 출원 없이 아시아나IDT 등의 사모사채 인수금액을 주된 재원으로 한 것에 불과하다"며 "아시아나IDT는 해당 인수 금액에서 원금 140억원을 변제받았는 바, 결과적으로 자신의 돈으로 자신의 채권 일부를 변제받은 셈"이라고 판시했다.

박선우 기자 closely@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