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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횡령·배임 혐의]④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헐값 매각 ...법원 "계열사 희생, 사익 추구"

Numbers 2024. 2. 19. 18:29

자본시장 사건파일

 

(사진=박선우 기자. 게티이미지뱅크·뉴스1·아시아나IDT홈페이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특정경제범죄법 위반(횡령)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배경 중에는 '기내식 공급권 저가 양도'가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독점 공급권'을 관련 업체에 저가로 넘기고, 그 대가로 금호기업(현 금호고속)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업체가 사들이도록 거래했다는 내용이다.

그로 인해 아시아나항공은 재산상 손해를 입고, 금호기업을 지배하는 특수관계인인 박 전 회장이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의 쟁점이었던 '기내식 공급권 저가 양도'의 구체적인 내용과 이에 대한 1심 재판부의 결론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기내식 독점 공급권' 넘기고 금호기업에 투자받을 계획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박삼구 전 회장과 그룹 전략경영실 임원 등 피고인들은 지난 2015년 해외 기내식 업체를 대상으로 '금호기업에 2000억원을 투자해주면 30년간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독점 공급권을 주겠다'는 취지의 제안을 했다. 이들은 그렇게 투자 받은 자금을 '금호그룹 재건 계획'에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사진=이 사건 1심 판결문 일부)


당시 박 전 회장 측과 업체들이 협상하는 과정에서 기내식 공급계약의 경제적 가치는 약 4060억원에서 약 6320억원까지 평가됐다.

박 전 회장 측은 한 업체와의 협상 과정에서 "6320억원짜리 기내식 합작법인의 주식 51%를 단 2500억원에 살 수 있는 기회"라는 등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업체 일부는 '아시아나항공이 아닌 금호기업에 투자하는 구조는 배임 등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며 거절했다. 오히려 '아시아나항공에 투자하겠다'며 역제안을 한 업체도 있었으나 박 전 회장 측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박 전 회장 측은 지난 2003년부터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을 독점 공급해오던 LSG스카이쉐프코리아(LSGK) 측에도 계약 연장 조건으로 금호기업에 대한 투자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임원 A씨는 지난 2015년 LSGK 대표이사에게 '아시아나항공이 기내식 사업부문을 즉시 인수하거나 혹은 2018년 계약이 만료할 때 다시 회수할 의사가 있다', '박 전 회장이 금호산업 인수를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파이낸싱을 모색하고 있다'는 등의 의사를 전달했다.

이후 양측은 관련 대화를 이어갔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2016년 11월 LSGK 측에 '기내식 공급계약 기간이 2018년 이후로는 계속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통보하고, LSGK와의 협상 등을 모두 거절했다.


최소 순이익보장·이면약정...아시아나항공에 불리한 조건


지난 2016년 박 전 회장 등 피고인들은 중국하이난항공그룹(HNA)과 투자 협상 끝에 기내식 공급계약을 맺었다.

이와 관련해 박 전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독점 공급권을 게이트고메코리아(GGK)에 1333억원에 넘긴 혐의를 받는다. GGK는 아시아나항공과 HNA 계열사인 게이트고메스위스(GGS)가 4대 6 비율로 설립한 합작회사다.

(사진=이 사건 1심 판결문 일부)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양측은 'HNA그룹의 자회사나 그 계열회사가 2017년 2월 6일까지 금호기업이 발행하는 BW 인수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경우 아시아나항공, GGS, GGK는 기내식 공급계약 등을 해지할 권리를 갖는다'는 취지의 이면약정도 맺었다.

이어 지난 2017년 3월, 게이트그룹파이낸셜서비스(GGFS)가 1600억원 상당의 금호기업 BW를 최장 20년 만기의 무이자로 인수했다. 

더불어 이들은 게이트그룹에 최소 순이익을 보장해주는 약정을 계약에 넣었다. 아시아나항공에 불리한 조건이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박 전 회장 등 피고인들은 계약 교섭 당시부터 본 계약 체결 시점에 이르기까지 최소한의 순이익 보장을 전제로 한 게이트그룹의 투자금 회수에 관한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봤다.

(사진=이 사건 1심 판결문 일부)


결론적으로 '기내식 독점 공급권' 계약으로 이익을 얻은 쪽은 박 전 회장 측이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BW를 발행해 조달한 대금을) 실질적으로 금호산업, 금호터미널 인수 등으로 발생한 채무 변제 또는 차후 금호그룹 계열사 등의 인수에 사용했다"며 "박 전 회장이 금호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게 하여 박 전 회장을 중심으로 경제력 집중이 유지·심화되게 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박 전 회장의 금호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한 것 이외에는 금호그룹 전체적으로도 어떠한 이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아시아나항공의 피해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아시아나항공은 이 사건 기내식 공급계약 무렵 재정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며 "아시아나항공이 해당 계약과 연계된 자금 유치 사실을 인지했다면 당연히 자금이 아시아나항공에 들어오리라고 기대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전 회장 등이 의식적으로 BW 계약 체결에 관한 정보를 아시아나항공 실무진에게 공유하지 않고, 금호기업에 대한 투자유치를 이끌어내는 방안만 모색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아시아나항공은 기내식 공급계약 체결과 결부해 얻을 수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BW 인수금액 상당의 금융이익 또는 그것이 없었을 경우 기내식 합작회사 지분 상당 이익을 상실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재판부 "계열사 자금을 개인 소유인 것처럼 사용...금호그룹 위기 야기"


지난 2022년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조용래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법상 횡령·배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회장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임직원 3명에게는 징역 3년~5년의 실형을, 금호산업(현 금호건설)에는 벌금 2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금호그룹 각 계열회사 또는 금호그룹의 이익 여하와 관계없이 오직 박 전 회장과 그 가족의 금호그룹에 대한 지배권 회복만을 목적으로 계열회사의 자금을 마치 총수 개인의 소유인 것처럼 임의로 사용했다"며 "전체 기업집단을 사유화하고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삼았다"고 했다.

(사진=이 사건 1심 판결문 일부)



또한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한 금호그룹은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으로부터 대규모 공적 자금을 지원받는 등 대부분 국민 전체의 희생을 바탕으로 그 경영이 일부 정상화됐다"며 "정작 공적 자금 지원의 원인이 된 유동성 위기 내지 부실화를 촉발한 피고인들은 금호그룹의 지배권을 회복할 수 있는 자력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외부 차입, 계열회사로부터의 자금 지원, 기내식 공급계약과 연계된 투자 유치 등을 통해 재차 금호그룹 전체의 위기를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그 외에도 피고인들의 범행으로 인해 △금호그룹 계열사가 입은 대부분의 피해가 회복되지 않은 점 △기업 이미지가 심각하게 실추된 점 △국민 경제에 초래된 악영향 등은 양형에 불리한 점이었다.

특히 박 전 회장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은 이 사건 일련의 범행이 금호그룹을 위한 것이었다는 취지로 강변하나 그 행위의 본질은 일부 계열회사들의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피고인 개인의 금호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겠다는 사익 추구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은 1967년 1월경 금호타이어 상무이사로 입사한 이래 일생을 통틀어 금호그룹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며 "금호그룹이 피고인의 지지를 바탕으로 그룹 차원에서 문화·예술계 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해온 점 등은 유리한 정상"이라고 덧붙였다.

1심 판결 이후 피고인 측과 검찰 쌍방은 항소했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박선우 기자 closely@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