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porate Action/소송

[박삼구 횡령·배임 혐의]③ "전략경영실 요청, 거부 어려웠다"...1306억원 빌려준 진짜 이유

Numbers 2024. 2. 15. 14:14

▼기사원문 보러가기

 

금호기업(현 금호고속)은 지난 2016년부터 이듬해까지 금호그룹 9개 계열사에서 1306억원을 빌렸다. 당시 금호기업은 제1금융권 등 일반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이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계열사들은 거액을 금호기업에 선뜻 빌려줬다.

 

이러한 거래가 가능했던 이유는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 그룹 전략경영실의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 전 회장의 횡령 혐의 등을 판단한 1심 재판부는 해당 거래로 인해 발생한 부당한 이익은 금호기업의 특수관계인인 박 전 회장과 그의 가족이 얻었다고 봤다.

 

구체적인 거래 내용과 이에 대한 재판부 판단을 살펴봤다.

 

계열사에 '자금 대여' 지시...금호기업에 유리한 금리 적용

 

(사진=이 사건 1심 판결문 일부)
 

판결문에 따르면, 금호기업 및 금호홀딩스(이하 금호기업)는 외부기관이 평가한 신용등급에 비춰볼 때 신용대출이 어려웠다. 

 

금호기업이 갖고 있던 금호산업(현 금호건설) 주식은 지난 2015년 12월 NH투자증권 담보대출(3300억원) 등의 담보로 이미 사용됐고, 금호그룹 전체적으로도 워크아웃 당시 채권단을 구성했던 금융기관에서 추가로 대출받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에 박 전 회장 등은 전략경영실 직원 등을 통해 금호그룹 소속 계열사인 금호산업, 아시아나에어포트 등으로 하여금 금호기업에 자금을 대여하도록 했다. 

 

금리는 1.8%~4.5%였는데, 금호기업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금호기업이 외부기관에서 대출받은 사례와 비교해보면 그랬다.

 

△NH투자증권은 지난 2015년 12월 금호기업에 3300억원을 대출하면서 금호산업 주식의 담보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출 금리를 연 5.5%로 결정했다. △대신증권은 지난 2016년 4월 금호기업에 800억원을 대출하면서 금호고속 주식을 담보로 제공받고 대출 금리를 연 5.0%로 결정했다.

 

전략경영실서 금액·기간 등 대여 조건 정해

 

(사진=이 사건 1심 판결문 일부)
 

재판부는 이 사건 자금 거래는 사실상 전략경영실 지시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계열사들이 자율적으로 자금 거래 여부나 대여금의 규모, 금리 등을 결정했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래 당시 아시아나에어포트 재무관리팀 소속이었던 한 직원은 '처음에 전략경영실에서 자금대여에 관한 연락을 줬을 때 금리는 3% 정도, 계약서의 대여 기간은 1년으로 알려줬기 때문에 그 이후 거래할 때에도 별도로 금리나 대여기간을 그 상황에 따라 조정한 적은 없다'고 진술했다. 또한 전략경영실 요청으로 해당 거래 내용을 공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진=이 사건 1심 판결문 일부)
 

아시아나IDT도 비슷했다. 당시 기획재무팀이었던 직원은 '전략경영실 직원이 별도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자금을 대여해 달라고 하면서 기간과 금리를 알려줬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계열사의 직원은 '2016년 12월 7일경부터 같은 달 16일경까지 금호홀딩스에 총 5회에 걸쳐 각각 6억원씩 자금을 대여하고 금전소비대차 계약서도 각 대여 시마다 별도로 작성한 것도 그룹에서 요청한 것을 그대로 이행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거래 이후 계열사가 운영자금이 부족해 도리어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아시아나IDT가 지난 2016년 8월 17일 금호홀딩스에 약 49억원을 대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영자금 부족으로 시중은행에서 같은 날 1억 9000만원, 18일 1억 1000만원 등을 빌렸다는 내용이었다. 

 

적지 않은 금액을 거래했지만 담보가 없는 경우 등도 있었다. 당시 에어서울 소속이던 한 직원은 '(전략경영실에서) 담보물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당시 계열사들은 전략경영실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나IDT 관계자는 '아시아나IDT가 추가 법인세까지 납부하면서 금호기업(금호홀딩스)에 자금을 대여하는 것이 아시아나IDT에 손해가 되는 거래인 것은 맞다'면서도 '금호그룹 전략경영실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는 입장이었고 전략경영실은 회장의 직속 부서이기 때문에 향후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서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사진=이 사건 1심 판결문 일부)
 

에어서울 관계자도 '일반적으로 전략경영실이 보통 그룹의 기조실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서 계열사들이 그쪽의 통제를 받다보니 관행적으로 일종의 상하관계가 형성돼 있어서 제안을 거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술했다.

 

계열사 협력업체 통해 '우회 대여'

 

(사진=이 사건 1심 판결문 일부)
 

이른바 '우회 대여'도 있었다. 계열사가 협력업체에 자금을 대여하면 협력업체가 이를 받아 금호기업에 대여하는 식이었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금호산업(현 금호건설) 측의 자금대여 요청에 협조한 것이어서 금호기업과 연락하거나 만날 필요가 없었다'며 '대여조건도 금호산업이 알아서 결정해 준 사항'이라고 했다.

 

다른 협력업체 관계자도 '공문, 품의서, 검토문서를 작성한 사실은 없고 대여금리나 만기 등 대여조건도 금호산업이 전해줬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금호산업은 자신의 자금을 협력업체에 제공하면서 대여 액수, 금리, 만기 등을 정해 금호기업에 대여하게 하여 우회적인 방법으로 금호기업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박 전 회장,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한다는 사실 인식"

 

재판부는 박 전 회장과 A씨, 금호건설에 위와 같은 거래에 대한 법적 책임(공정거래법 위반)을 물었다.

 

(사진=이 사건 1심 판결문 일부)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이 사건 각 자금거래의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각 계열사로부터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에 거액의 자금을 지원받는 등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이 사건 각 자금거래를 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며 "각 자금거래를 지시하고 관여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박 전 회장이 사장단 회의를 통해 경영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리며 금호그룹 계열사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점 △그의 직속 조직인 전략경영실에서 각 계열사의 예금·적금 현황, 투자 내역 등에 대한 보고를 받아 이를 파악하고 자금의 운영·관리업무를 담당해 왔던 점 등이 판단 근거였다.

 

 
 

재판부는 A씨가 각 계열사의 자금 지원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인식하면서 전략경영실을 통해 관련 업무 사항을 지시·감독한 것으로 파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박 전 회장과 A씨는 각 계열사로 하여금 금호기업 및 금호홀딩스에 개별정상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대여하게 하여 정상적인 거래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를 하게 했다"며 "이 사건 각 자금 거래를 통해 특수관계인 박 전 회장 및 그 가족에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를 했다"고 했다.

 

이어 "협력업체를 이용한 우회 대여를 통해 적극적으로 위 행위에 가담하기까지 한 피고인 금호건설은 해당 업무에 관해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했다"고 지적했다.

 

 박선우 기자 closely@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