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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정도 걷는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Numbers_ 2024. 4. 1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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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정도 걷는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정의선회장 어려워도 탈법않는 정공법 택해정몽구 명예회장이 시간 벌어준 게 ‘결정적’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재계 총수 가운데 경영 성과도 좋고 개인적으로 소송이나 분쟁, 재판 등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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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회장 어려워도 탈법않는 정공법 택해
정몽구 명예회장이 시간 벌어준 게 ‘결정적’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재계 총수 가운데 경영 성과도 좋고 개인적으로 소송이나 분쟁, 재판 등 머리 아픈 일도 없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드문 기업인입니다. 그런 정의선 회장에게도 난제가 있습니다. 바로 상속, 총수로서의 그룹 지배력 강화, 그룹 지배구조 개편입니다.

삼성 이재용 회장, SK 최태원 회장, LG 구광모 회장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대가를 치르기도 했지만 선대 회장으로부터 재산 상속도 받았고, 삼성물산 ㈜SK ㈜LG를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했으며, 총수로서 지배력도 갖췄습니다. 이에 비해 현대차 정의선 회장은 2018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해 경영 전면에 나서 7년째 그룹을 이끌고 있지만 진전된 게 없습니다. 자본시장에서는 정의선 회장이 워낙 효자라 상속과 지배구조 개편 등에 대해서는 말도 못꺼내게 한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면 현대차그룹도, 정의선 회장도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1938년생으로 올해 86세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8년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면서 신규로는 순환출자를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규제 대상은 아니지만 30대 그룹 가운데 순환출자 구조를 갖는 유일한 기업집단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지배구조 개선을 촉구한다는 점도 부담입니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과 총수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2018년 모비스와 글로비스를 분할해 합병하고, 최대주주 일가가 보유중인 글로비스 지분을 전량 기아차에 매각하며, 이 자금으로 최대주주 일가가 계열사 보유 모비스 주식 전량을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했습니다. 이 방안은 헤지펀드의 공격에다 참여연대 등의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2022년 정의선 회장이 11.7%의 지분을 갖는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추진도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확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실패로 끝났습니다. 

모비스와 글로비스의 분할·합병도,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도 당시 상황이 어려워져 중간에 포기한 것이긴 하지만 현대차그룹 특유의 과감한 추진력을 감안하면 다소 의외입니다. 시장에서는 이에 대해 정의선 회장이 적어도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 문제에 관한 한 무리하지 않고 정도를 걷겠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타산지석으로 삼았는지 모르지만 정의선 회장은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과정에서 사회적 비난을 받거나 법을 위반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총수인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핵심사업을 팔거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일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글로비스는 시가총액이 6조원을 넘고 정의선 회장 지분이 20%나 돼 지분을 판다면 1조원 이상 마련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글로비스에 관심이 많은 사모펀드가 한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자동차 물류가 그룹의 핵심사업이라는 점에서 지분을 외부에 매각하지 않겠다는 것이 정의선 회장의 판단이라고 합니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자산은 상장사 지분 기준 현대차 5.4% 2조7000억원, 모비스 7.2% 1조5000억원, 현대제철 11.8% 4000억원에다 비상장인 현대엔지니어링 4.7% 1000억원 등 총 5조원 가까이 됩니다. 모든 기업이 그렇지만 상속이 이루어지면 50%에 이르는 상속세 부담에다 가족간 균등 배분으로 총수의 지배력은 크게 떨어집니다. 

현대차그룹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정의선 회장과 정성이 정명이 정윤이 등 3명의 자매가 4분의 1씩 나눠 갖게 될 것입니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유지가 밖으로 드러난 건 없지만 LG가문의 상속 분쟁에서 확인됐듯이 정의선 회장한테 몰아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껏해야 삼성처럼 법에 따라 유산을 균등분할 하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회사(모비스)의 지분을 총수한테 몰아주는 정도가 될 것입니다. 결국 정의선 회장은 자신의 그룹 지배력은 별도로 강화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의선 회장이 2018년부터 그룹을 끌어온 이래 탁월한 성과를 보여줌으로써 그룹 내부는 물론 대외적으로도 총수로서의 입지가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중견기업이라면 몰라도 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의 총수는 단순히 지분만 갖고 그룹을 끌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총수인 정의선 회장이 어떻게 현대차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게 될 모비스 지분을 최소 20% 정도 확보하는가입니다. 모비스 시가총액은 다행히 현대차 및 기아차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22조원입니다. 현재 정의선 회장의 모비스 지분은 0.32%에 불과합니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모비스 지분 7.2%를 정의선 회장한테 전액 물려준다고 하면 그만큼 추가 지분매입 부담은 줄어듭니다. 종합하면 정의선 회장이 정몽구 명예회장의 모비스 지분 7.2%를 포함해 20% 정도의 모비스 지분을 확보하고 상속세 부담까지 고려하면 4조원 정도는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현재 정의선 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 및 자산가치는 최근 주가가 많이 올라 글로비스(20%) 현대차(2.7%) 기아(1.8%) 현대오토에버(7.3%) 현대엔지니어링(11.7%) 등 대략 4조원 가까이 됩니다. 이 지분을 다 매각해서 모비스 지분을 살 수는 없지만 이들 지분을 활용하면 파이낸싱이 가능하기에 편법을 쓰지 않고도 상속, 지배력 강화, 지배구조 개편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자금 동원 측면에서 정 회장은 그동안 받은 배당금도 있지만 20%의 지분을 갖는 미국의 로봇 전문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도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지난해 말 기업가치가 1조8000억원에 이르고 향후 나스닥 상장시 10조원까지 갈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삼성 SK LG는 물론 롯데 한진 두산 효성 등 그동안 국내 주요 그룹들은 예외 없이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과정에서 큰 대가를 치렀습니다. 가족 간 갈등과 법적 분쟁은 물론 옥살이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공법을 택해 어렵더라도 사회적으로 비난받거나 법을 위반하지 않고 정도를 걷겠다는 현대차그룹의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은 주목받기에 충분합니다. 어쩌면 정몽구 명예회장이 오래 자리를 지키고 시간을 벌어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수유지혜 불여승세(雖有智惠 不如乘勢), 수유자기 불여대시(雖有鎡基 不如待時), ‘맹자’에 나오는 말인데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시류를 타는 것만 못하고, 아무리 좋은 농기구가 있어도 때를 기다리는 것만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뛰어나고 총명해도 객관적 형세가 불리하고 시절 운이 따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정의선 회장은 무리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7년을 기다렸습니다. 앞으로 1~2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지만 실행의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