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은 양호하지만 발전가능성이 없다.’
SK케미칼 제약사업부를 바라보는 제약업계의 평가다. 주력 제품의 불확실성과 낮아지는 수익률, 파이프라인 부재 등의 문제가 산적해 있다. 사실상 ‘버린 손가락’이었던 제약사업부. 최창원 SK디스버리 부회장은 활용 용도가 끝난 제약사업부를 매각이라는 형태로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최창원 부회장, ‘제약사업부’가 불만족스러웠던 이유
한때 SK케미칼 대표이사였던 최 부회장은 백신전문기업이던 동신제약 인수 후 백신사업에 적극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최 부회장의 눈에는 제약 사업이 이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이 유럽, 미국보다 강점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 강조했던 천연물 신약은 임상을 통과하지 못해 오랫동안 정체기에 머물러 있었다. 의약분업에 선제적으로 대응, 병원 영업에 올인했던 마케팅 전략 또한 후발 주자의 추격으로 그 빛을 잃어갔다. 고객 만족 서비스를 빙자한 비용 증가도 최 부회장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결국 SK케미칼은 2015년 제약사업의 혁신을 추진하기로 결정, 매출 성장이 지속되는 기업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내실 있는 회사를 목표로 삼아 수익구조 개선을 추진했다. 캐시플로우(Cash flow) 중심의 매니지먼트 강화, 오퍼레이션 엑설런스(Operation excellence) 추구, R&D의 선택과 집중 등이다.
R&D의 선택과 집중은 SK바이오사이언스의 태동과 제약사업부의 미래를 바꾼 결정이었다. 프리미엄 백신 개발에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하는 과정 속에서 신약개발 기술과 인력의 스핀오프가 이뤄지면서 제약산업부의 인력은 자연스레 유출이 심화됐다. 2017년 말 94명이었던 생명과학연구소 인원은 1년 뒤 20명으로 급감했다. 줄어든 인력은 SK바이오사이언스로 합류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고객이 불편을 감수하는 전략도 세웠다. 시장 재고를 고려하지 않은 매출 발생, 품절 방지를 빙자한 과잉생산 후 폐기 등을 금지하고 수익 위주로 제품 공급을 조절해 나갔다. 지방사무소도 대폭 축소했으며, 현장 출·퇴근제 도입과 인센티브 확대 등을 내세웠다. SK케미칼은 이러한 제약사업부 혁신을 통해 반품과 재고회전일을 대폭 감소시켜 회사 전반의 손익구조를 개선했다.
조인스와 기넥신의 불투명한 미래
SK케미칼의 제약사업 혁신 조치는 ‘주력 제품 상시 품절’로 이어졌다. 재고를 줄이니 약을 찾은 사람들이 제때 약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SK케미칼 의약품 중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하는 생약복합 관절염치료제 ‘조인스’의 경우 공급이 불안정하다. 약국에서 온라인으로 의약품을 주문하는 사이트에서 조인스는 항상 품절로 표시된다. 서울 시내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한 약사는 “정상적인 루트로는 조인스를 구할 수 없고, 도매상 등에게 부탁해서 겨우 한두 박스씩 받는다”고 말했다.
조인스의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조인스의 원료는 위령선, 과루근, 하고초 등의 약초다. 화학원료 한두개만 수입해서 만드는 화학의약품보다 원료 수급이 까다롭다. 또한 채집된 원료를 엑기스 형태로 만드는 ‘원료의약품 제조 공정’은 해외에서 이뤄진다. 조인스의 제조 일정이 원료 수급 환경 변화에 민감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조인스는 올해에도 원료 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산이 중단된 바 있다. 당시 SK케미칼 측은 “상반기 조인스 생산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는 원료수급처인 중국의 현지 사정으로 인해 원료 조달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약초, 즉 한약재 원료라는 점에서 조인스가 가진 시장의 위치가 달라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조인스 등의 천연물의약품이 한약성분을 본따 개발한 점을 지적, 한약제제 분업을 주장하고 있다. 약사와 한약사 등 직능단체간 대립이 격화된 상태여서 아직까지 분업 논의는 지지부진하지만, 분업이 이뤄지게 되면 조인스의 매출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혈액순환개선제 ‘기넥신’ 또한 미래가 불투명한 제품이다. 기넥신과 같은 제품군인 은행엽엑스 제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진행하는 ‘약제 급여 적정성 재평가’ 대상에 올라 매출 감소 위기에 처했다. 당시 보험 약가 인하 등이 예상됐으나 재평가 사유가 주사제에만 국한돼 기넥신에프정 40mg과 80mg의 급여는 유지했다. 향후 급여가 유지된 기넥신 제품군까지 재평가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진행하는 임상재평가도 SK케미칼 제약사업부에게 불리한 요소다. 이미 지난 6월 SK케미칼은 임상재평가 여파로 스트렙토키나아제 성분 의약품인 ‘바리다제’를 생산 중단했다. 식약처에 근거 확보를 위해 1년간 처분을 유예하긴 했지만, 임상 결과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의 임상재평가는 바리다제뿐만 아니라 기넥신과 조인스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 두 제품군이 허가된 시점이 20년이 지났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신약의 출현, 새로운 검사법의 등장 등으로 현재 수준의 평가 잣대가 기넥신과 조인스를 어떻게 분류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조인스 개발에 관여했던 제약업계 관계자는 “조인스가 위약 대조 형태로 임상을 다시 한다면 과연 현재의 식약처 기준 안에서 유효성을 입증할 수 있을지 확답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래 성장 동력 부재…동기 부여 없는 직원들
SK케미칼 제약사업부는 20년이 넘은 제품의 위기가 닥쳐오면 스스로 타개할 방법이 없다. 이러한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후속 파이프라인이 준비되어야 하는데 최 부회장은 이러한 동력을 백신 사업 육성에 모조리 쏟아부었다.
기존에 제약사업부에서 개발하던 인력들도 점차 백신사업 아이템에 투입됐으며, 이후 SK바이오사이언스로 분사해 떨어져 나갔다. 남은 20명의 제약사업부 연구 인력으로는 개발의 연속성을 지키기에도 버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60명 남짓한 인원으로 다시 늘어난 제약사업부 연구 인력이 있지만, 대부분의 파이프라인은 비임상 개발 단계다.
제약사업부는 결국 점차 넓어지는 제품 매출 공백을 도입 상품으로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2019년 매출액 비중의 15%를 차지했던 상품 매출은 올해 들어 28%까지 치솟았다. 자사 제품의 경쟁력이 낮아지는 문제를 남의 제품을 도입해 파는 형태로 막고 있다.
후속 신제품이 없다는 점은 일선 영업직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SK케미칼 제약사업부의 영업 스타일은 적극적인 모습과 거리가 멀다. 일각에서는 SK케미칼 영업사원들을 최소한의 일만 하고 워라벨을 지키는 공무원으로 치부한다. 한 제약사 지방영업담당은 “현장에 모습도 거의 보이질 않고, 새로운 약도 없다 보니 방문 영업도 형식적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SK케미칼 제약사업부의 가치는 충청북도 청주에 위치한 제약 공장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2006년 글로벌 제약사인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사들인 청주 공장은 준공된지 40년이 지났지만, 앞으로 100년 후까지도 운영 가능한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제약사 공장장은 “위치 장소 확장성, 장비 국산·외산여부, 제조제형 유틸리티 구성, 건축구조물 층수 부속시설 여부, 환경법 화관법등 적용 강화 여부, 의식주 해결 방안, 미래 발전성, 주위 공단 협력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청주 공장을 이 내용들을 모두 충족한다”면서 “향후 100년 후까지도 운영 가능한 공장”이라고 평했다.
안치영 기자 acy@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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