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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신세계가 사모펀드를 이길수 있을까

Numbers_ 2024. 5. 1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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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신세계가 사모펀드를 이길수 있을까

풋옵션 계약 위험성 너무 가볍게 판단한 게 문제물러난 전문경영인 잘못보다 주인 책임이 더 커행동경제학의 선구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베르스키의 ‘가치함수(Value Function)’는 ‘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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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옵션 계약 위험성 너무 가볍게 판단한 게 문제
물러난 전문경영인 잘못보다 주인 책임이 더 커

 

행동경제학의 선구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베르스키의 ‘가치함수(Value Function)’는 ‘손실의 고통이 이익의 기쁨보다 2배 이상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존에 최적화된 의사결정을 하도록 인간의 뇌가 우리 행동을 조종한다는 뇌과학자들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최근 신세계그룹이 외국계 사모펀드와 주식 풋옵션 계약을 두고 다투고 있다. 사모펀드들이 사용하는 풋옵션은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할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마련해둔 안전장치다. 위험회피적 인간 심리가 반영된 자연스러운 금융거래 행위다. 파생거래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위험을 서로 다르게 평가하고 인식하는 접점에서 이뤄지는 제로섬 게임이다. 목표달성에 실패하면 파생거래 파트너 어느 한쪽은 책임을 져야 한다. 풋옵션 부담을 선택한 위험 선호자는 목표미달의 모든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국내 산업계에서 개별 기업의 지배구조 이슈가 생길 때마다 등장해 게임체인저 역할을 하는 사모펀드의 투자계약에 파생거래가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난 2019년 신세계그룹은 외국계 사모펀드 블루런벤처스(BRV),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AEP)와 신주인수계약서를 체결하며 2회에 걸쳐 1조원의 투자를 받고 SSG닷컴 지분을 각각 15%씩 넘기기로 합의했다. 2022년 3000억원을 2차로 출자하며 투자자의 의무를 다했지만 기업공개(IPO) 일정이 미뤄지며 사모펀드의 자금회수가 불투명해졌다. 주주 간 계약으로 일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신세계그룹이 사모펀드 지분을 모두 재매입하기로 약속한 풋옵션이 이슈가 됐다. 풋옵션 트리거 조항은 2023년 말 GMV(Gross Merchandise Volume, 이커머스 플랫폼 성장성 측정 지표인 ‘총거래액’) 규모가 5조1600억원에 미달하거나 복수 투자은행(IB)으로부터 IPO 가능 의견서를 받지 못하면 발효되는 조건이다. 풋옵션 트리거가 발효되면 2024년 5월1일부터 2027년 4월30일 중 사모펀드 지분 전량을 대주주에 매도청구(풋옵션)할 수 있고 대금을 못 받으면 대주주의 SSG닷컴 지분까지 전부를 매도청구(드래그얼롱)할 수 있다는 계약이다. 2019년 이커머스 열풍이 불던 투자시점과 달리 SSG닷컴의 IPO가 여의치 않고 최근 국내 사업환경이 무한경쟁으로 내몰리며 생존이 불투명해지자 사모펀드들이 자금회수에 나서면서 갈등이 표면화됐다는 분석이다. 신세계그룹으로서는 아주 난감한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프라인 마트 영업 부진과 계열사 경영부실로 어려운 상황에서 1조원대 풋옵션 논란에 자칫 잘못 대응하면 그룹이 아주 어려운 지경에 몰릴 가능성이 커진다.

 

신세계그룹은 2021년 이미 GMV 목표를 달성했고 2022년 4월 IPO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며 상장을 추진하는 등 풋옵션 소멸 조건을 충족했다는 입장이다. 2023년 신세계 이마트 사업보고서에 ‘주주 간 계약에 따른 SSG닷컴의 GMV 요건이 충족돼 파생상품부채가 소멸되어 환입했다’고 이미 공시했다. 하지만 사모펀드들은 GMV를 산출할 때 상품권 중복(상품권 판매와 상품권 사용) 계산으로 매출이 부풀려졌고, IPO 실패로 풋옵션 행사 트리거가 발생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GMV는 이커머스 플랫폼 매출 성장을 측정하는 ‘관행적’ 지표로 업계에서 사용하지만 명확한 ‘회계적’ 개념은 아니다. 그럼에도 상품권 매출을 이중으로 계산하는 것은 곤란하며 IPO 의견서 역시 IB 업계 마케팅 차원의 구속력 없는 정보라는 것이 사모펀드의 주장인 것 같다. 주주 간 계약서에 명문화된 개념정의가 없다면 풋옵션 효력 발생은 양측의 협상과정을 더 지켜봐야 드러날 것 같다.

 

경기침체가 길어지는 가운데 지난해부터 알리, 테무 등 중국계 이커머스 기업들이 대대적인 저가 공세로 국내 시장에 가세하면서 쿠팡 하나 상대하기도 버거운 국내 유통업계들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의 최강자 이마트 역시 창사 이래 31년 만에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불황기 생존전략으로 비용관리에 몰두하고 있다. 신세계이마트그룹은 그동안 오프라인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온오프라인으로 다각화하는 옴니채널(omni-channel) 전략을 추진해왔다. 4조원 이상의 투자금을 쏟아붓고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 건물까지 매각하며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찾기 위해 대규모 인수전 참여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수 이후 시너지 효과는 나지 않고 인수기업의 경영실적도 저조해 그룹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정용진 회장이 그동안 추진해온 인수합병(M&A)을 통한 성장전략이 당초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1조원의 풋옵션을 받기에는 신세계그룹의 자금 여력도 넉넉지 않다. 2023년 말 영업보고서 기준으로 이마트는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한 현금성자산이 6400억원 남짓한데, 단기차입금만 3조1300억원 수준이다. 올해 3월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마트 장기신용등급을 AA-/Stable로 한 등급 낮췄다. 신세계 역시 현금성자산은 9700억원인데 단기차입금은 2조1900억원이다. 두 그룹 모두 당장 올해 자체 자금관리도 빠듯한 상황이다. 2023년 이마트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당기순이익 -1874억원으로 적자를 봤다. 2024년 1분기 매출도 전 분기 대비 7.8% 감소하며 악전고투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이마트 주가는 63% 하락하고 신세계 주가 역시 45% 떨어졌다.

 

사모펀드와의 분쟁의 씨앗은 국내 유통업계의 실적부진과 사업경쟁구조 변화에 신세계그룹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하지만 최고경영진이 투자를 유치할 때 맺은 풋옵션 계약의 위험성을 너무 가볍게 판단한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신세계그룹은 2024년 정기인사를 2023년 9월에 이례적으로 조기 단행하면서 그룹의 이커머스 전략을 총괄하던 대표를 포함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의 40%를 교체하는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회사 실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관련된 계열사 CEO들은 대부분 물러났지만 그동안 그룹의 경영을 실질적으로 총괄해온 정 부회장은 회장으로 승진했다. 신상필벌을 강조하는 신세계그룹 인사철학도 오너에게는 예외다. 신세계뿐 아니라 국내 어느 재벌그룹 대주주도 회사가 망해 퇴출된 적은 있지만 경영 실패로 물러난 경우는 없다.

 

우리에게 '넛지'로 잘 알려진 리처드 탈러(Misbehaving, 2015)는 기업경영에서 대리인들이 불합리한 선택을 할 때 실제로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대리인이 아니라 주인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자기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존재라는 명제를 전제로 정통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며 ‘멍청한 학장(Dumb Principal)’론을 주장했다. 대리인들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대주주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신세계그룹에도 이 이론은 적용될 수 있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