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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임종룡 회장의 ‘적소이고대’(積小以高大)

Numbers_ 2024. 5. 1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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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임종룡 회장의 ‘적소이고대’(積小以高大)

금융은 슬로우(Slow) 비즈니스…하루아침에 안돼증권·보험사 인수해도 제몫 하려면 5~10년 걸려사모펀드 포함 과점주주들 CEO 믿고 기다려줘야 국내 대표 금융그룹의 시가총액을 비교해 보면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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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슬로우(Slow) 비즈니스…하루아침에 안돼
증권·보험사 인수해도 제몫 하려면 5~10년 걸려
사모펀드 포함 과점주주들 CEO 믿고 기다려줘야 


국내 대표 금융그룹의 시가총액을 비교해 보면 금융업이 얼마나 슬로우(slow) 비즈니스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매년 5월 말 주가 기준으로 2013년부터 올해까지 비교해 보면 2013년부터 2020년까지 8년간 신한금융이 1위이고 다음이 KB금융-하나금융-우리금융-기업은행 순입니다. 

시총 순위가 바뀌는 건 21년부터입니다. KB금융이 1위로 올라섭니다. 23년이 되면 또 변화가 생깁니다. 메리츠금융이 부상합니다. 올들어서는 기업은행과 우리금융이 엎치락뒤치락하지만 5월 현재 시총 순위는 KB-신한-하나-메리츠-기업은행-우리금융 순입니다.

금융업은 뛰어난 CEO가 등장해 혁신적으로 경영을 한다고 하루아침에 성과를 거두는 업이 아닙니다. KB금융 윤종규 전 회장의 사례처럼 금융은 최소 5~10년 공을 들여야 성과가 나옵니다.

금융위원장과 NH농협금융 회장 등 민관을 두루 거치면서 위기 때마다 능력을 발휘해 ‘해결사’로 불리는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취임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과거 NH농협금융 회장 시절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해 하루아침에 NH농협금융을 주요 금융그룹 반열에 올려놓았듯이 임종룡 회장은 증권사와 보험사 M&A를 통해 우리금융이 KB·신한금융과 경쟁하는 체제로 만들겠다는 각오입니다. 또 옛 상업·한일은행의 전통을 이어받아 ‘기업금융의 강자’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입니다. ‘해결사’ 임종룡 회장은 임기 중에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우리금융은 자회사인 우리종금과 펀드 판매 중심의 포스증권을 합병, 자회사로 편입하기로 해 10년만에 증권업에 재진출했습니다. 임종룡 회장이 직접 나서 SK증권, 다올투자증권 등 중소형사부터 대형사에 이르기까지 인수를 타진했지만 마땅치 않자 우리종금과 포스증권 합병으로 선회했습니다. 

우리종금과 포스증권이 합병하면 자기자본 1조2000억원으로 증권업계 18위가 됩니다. 임종룡 회장은 앞으로 인재들을 모으고 증권 자회사의 자기자본을 4조원 이상으로 늘려 초대형 IB 업무를 하는 5대 증권사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입니다.

국내 증권사는 자기자본이 클수록 사업영역이 다양화되기 때문에 무엇보다 자기자본 규모가 중요합니다. 지난해 말 현재 자기자본 기준 국내 1위 증권사는 미래에셋으로 9조원이 넘고 5위는 KB증권(6조1572억원)입니다.

우리금융은 출자 여력이 넉넉하기 때문에 증권 자회사의 자기자본을 6조원 이상으로 늘리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인력과 채널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인데 하루 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금융지주 계열사 중 유일하게 5대 증권사에 진입한 KB증권만 해도 2008년 한누리증권 인수 후에는 존재감이 없다가 2016년 현대증권 인수를 통해 발판을 마련했고, 그 후 5년 이상의 노력 끝에 메이저가 됐습니다. 우리금융이 우리종금과 포스증권을 합병해 증권사로 출범시켜도 KB증권 수준으로 올라서려면 최소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그것도 중견 증권사 이상을 추가로 M&A 해야 가능한데 현재는 매물이 없습니다. 

임종룡 회장은 최근 보험업에 대한 진출 의지도 분명히 했습니다. 우리금융은 매물로 나온 롯데손해보험 인수를 검토 중입니다. 롯데손보 지분 77%를 갖는 JKL파트너스는 2조원 이상의 몸값을 원하고 있어 오버페이할 생각이 없다는 우리금융이 롯데손보를 인수할 지 미지수지만 인수한다 해도 롯데손보의 업계 내 위상을 감안하면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롯데손보는 지난해 매각을 앞두고 실적을 끌어올려 3000억원의 순익을 냈지만 삼성화재, DB손보, 현대해상, KB손보, 메리츠화재에 이어 한화손보와 경쟁하는 6~7위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삼성화재부터 메리츠까지 ‘5강 체제’가 너무 탄탄합니다.

우리금융은 롯데손보를 인수해 메리츠화재처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금융 지배구조라면 어렵습니다. 우리금융그룹에는 조정호 회장처럼 믿고 전권을 맡길 오너도 없고 자본시장에서 ‘선수’로 소문난 김용범, 최희문 같은 전문가도 없습니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해 2조원 가까이 대손충당금을 쌓는 등 체력을 비축한 만큼 올해는 반드시 성과를 내고 특히 ‘기업금융 명가’의 위상을 회복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올해 시중은행 중 당기순익 1위 은행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올 1분기 결과만을 놓고 보면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올 1분기 은행과 지주사들의 실적을 가른 것은 홍콩 H지수 관련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배상입니다. 우리은행은 다행히 ELS 판매가 적어 충당금 적립이 75억원에 그쳤습니다. 이에 비해 국민은행은 8620억원, 신한은행 2740억원, 하나은행은 1799억원이나 됐습니다. 

우리은행은 ELS 충당금 적립 부담이 거의 없는데도 1분기 당기순익이 전년 동기대비 감소해 신한·하나은행에 이어 3위에 그쳤습니다. 1분기 금융그룹 순익 경쟁에서도 우리금융은 여전히 4위에 그쳤습니다. ELS 손실 관련 충당금 적립 부담이 없는 2분기부터는 KB·신한·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의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업금융 명가’ 부활을 외치며 우리금융이 공을 들이고 있는 기업금융도 올 1분기 실적을 보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합니다. 우리은행은 지난 3월말 기준 기업 대출 잔액에서 국민은행에 이어 2위를, 올 1분기 기업 대출 증가액에서는 신한·하나은행에 이어 3위에 그쳤습니다.

은행의 영업력을 판가름하는 지표 중 하나는 순이자마진(NIM)입니다. 지난 1분기 우리은행의 순이자마진은 1.5%로 국민은행(1.87%), 신한은행(1.64%), 하나은행(1.55%)보다 낮습니다. 이광구 행장 때까지만 해도 우리은행은 영업력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우리은행이 무너진 것은 5년여에 걸친 손태승 회장 시절입니다. 가장 큰 잘못은 편중 인사였습니다. 사외이사들까지 개입했습니다.

고전 ‘주역’에 ‘적소이고대’(積小以高大)라는 말이 나옵니다. 주역 ‘대상전’에서는 “땅속에서 나무가 생성해 높게 자라나듯이 군자는 이를 본받아 작은 것을 쌓아서 높고 장대한 것을 이룬다”고 설명합니다. KB·신한·하나금융을 제치고 1등 금융그룹이 되는 꿈을 꾸는 임종룡 회장이 참고할만 합니다.

KB금융이 1등이 된 것은 은행 외에도 M&A를 통해 해당 업계에서 5위 안에 드는 증권사와 보험사를 확보하고 키웠기 때문이며, 10년 가까이 안정적으로 그룹을 이끈 CEO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임종룡 회장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조급할 수도 있겠지만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M&A는 가격이 아니라 때를 사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모펀드인 유진, IMM을 포함 한투증권, 푸본현대생명, 키움증권 등 우리금융 과점주주들은 CEO를 믿고 5년이고 10년이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인생도 금융업도 결국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