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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고(故) 조석래 회장의 ‘무유호이’(無有乎爾)

Numbers_ 2024. 5. 2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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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고(故) 조석래 회장의 ‘무유호이’(無有乎爾)

“세상사는 모두 꿈이나 환상 물거품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번개와도 같으니 마땅히 그렇게 보아야 한다.” 불교 경전 ‘금강경’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마음속 번뇌 분별을 없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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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모두 꿈이나 환상 물거품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번개와도 같으니 마땅히 그렇게 보아야 한다.” 불교 경전 ‘금강경’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마음속 번뇌 분별을 없애고 깨달음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디에도 기대거나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인데 삶은 마지막 순간에 돌이켜 보면 이처럼 모든 게 물거품이고 그림자이고 이슬일 것입니다.

고전 ‘맹자’의 마지막도 비슷합니다. “무유호이(無有乎爾) 무유호이(無有乎爾),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라는 두 번의 탄식으로 끝납니다. 맹자는 사회개혁을 외친 혁명가이자 성인에 버금가는 사람으로 추앙받지만 삶의 마지막에는 평생 헛살았다며 탄식합니다.

 

지난 3월 타개한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조현준 조현문 조현상 세 형제간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를 당부하는 내용의 유언장을 남겼습니다. 조 명예회장은 “부모 형제의 인연은 천륜이며 어떤 일이 있어도 형제간 우애를 반드시 지켜달라”고 당부했습니다. 특히 10년 넘게 의절 상태인 둘째 아들 조현문 전 부사장에게도 본인이 남긴 주요 계열사 주식 등 유산에 대해 유류분(유족이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유산) 이상을 주라고 당부했습니다.

 

고 조석래 회장은 학자나 교수가 되고 싶었지만 창업주이자 선친인 조홍제 회장의 뜻에 따라 효성그룹을 물려받아 레깅스 소재인 스판덱스와 타이어에 들어가는 타이어코드 등을 세계 1등 사업으로 키웠습니다. 전경련 회장도 맡아 한국경제를 이끌었지만 그의 말년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2013년부터 시작돼 아직도 진행 중인 아들 형제간 분쟁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여기에다 힘든 검찰 수사와 구속 직전까지 간 재판을 받았고 10년 넘게 암투병했습니다.

 

이런 고난 속에서 조석래 회장은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맹자가 탄식했던 ‘무유호이(無有乎爾), 무유호이(無有乎爾)’ 바로 그것이었을 겁니다. 금강경의 마지막 구절처럼 물거품 그림자 이슬 같은 인생의 허무함과 덧없음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조석래 회장이 유언장에서 다시 한번 천륜과 우애를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른바 ‘효성가 형제의 난’은 2013년 2월 효성그룹의 둘째인 조현문 전 부사장이 그룹을 떠나고, 보유하고 있던 효성지분 7.18%를 팔면서 표면화됐습니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장남인 조현준 회장과 주요 임원진을 상대로 10여 건의 소송을 제기했고 오랜 수사와 재판 끝에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에 조현준 회장도 2017년 조 전 부사장을 맞고소해 1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조현준 조현문 조현상 형제의 할아버지이자 효성 창업주인 조홍제 회장은 해방 직후인 1948년 이병철 회장이 삼성물산을 창업할 때 동업을 시작해 14년간 같이 일합니다. 1962년 이병철 회장은 단돈 3억원을 주면서 동업을 끝내자고 말합니다. 조홍제 회장은 사업자금도 많이 댔고 제일제당과 제일모직 설립을 주도해 키운 것 등을 감안하면 너무도 억울해 소송까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송 생각을 접고 56세라는 늦은 나이에 자기 사업을 시작한 게 오늘의 효성그룹이 됩니다.

 

만약 조홍제 회장이 억울함에 못이겨 소송을 시작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면 오늘의 효성그룹은 존재하기나 했을까요? 조현준 조현문 조현상 형제는 할아버지 조홍제 회장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특히 10년 넘게 형 동생과 소송하느라 자기 사업을 제대로 못하는 조현문 전 부사장이 곱씹어 봐야 합니다. 할아버지 조홍제 회장이라면 지금 뭐라고 할까요?

 

선친은 죽음을 앞두고 세 아들에게 천륜을 말하고 우애를 당부했습니다. 어쩌면 이번이 세 아들이 화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이라면 죽음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사람이라면 죽음 앞에서는 권위와 체면 자존심은 물론 이해관계도 잠시 내려놓아야 합니다. 누가 잘하고 잘못함을 떠나 세 형제가 함께 선친의 장례는 치렀어야 했는데 안타까울 뿐입니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10여년 전 물려받은 효성 지분을 팔아 1300여억원을 챙겼고 이번에 선친 유언대로 유류분 이상을 상속받으면 1600여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합치면 3000억원에 육박하는 거액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 전 부사장이 “유언장의 입수, 형식, 내용 등 여러 측면에서 불투명하고 납득하기 어려워 상당한 확인과 검토가 필요하다”며 선친의 마지막 유언조차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조 전 부사장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밝힌 대로 자신을 패륜으로 몰아간 형과 동생 심지어 모친까지 원망스럽고, 갈 데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얻은 게 무엇입니까? 온갖 소송을 제기했지만 형과 동생은 멀쩡하고 본인만 재판을 받는 현실입니다.

 

할아버지 조홍제 회장이 그랬듯이 조현문 전 부사장이 조현준 회장 조현상 부회장을 이기는 길은 사업으로 성공하는 것입니다. 원한이 있다면 사업으로 형과 동생을 이기면 됩니다. 지금의 효성그룹보다 이익도 더 많이 내고 더 투명한 글로벌 기업을 만드는 것입니다.

 

조현준 회장도 할 일이 있습니다. 애초 이번 분쟁은 조 전 부사장이 조현준 회장을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시작된 것이지만 조 회장 측이 2017년에 취한 공갈미수 강요미수 등과 관련한 조현문 전 부사장에 대한 고발 조치를 취하하는 것입니다. 과정이야 어쨌든 이번 형제간 분쟁의 최종 승자는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도 효성그룹의 지배구조는 바뀌지 않습니다. 게다가 효성의 두 축인 효성티엔씨와 효성첨단소재의 경영 상황도 중국의 저가 공세 등으로 최근 매우 어렵습니다.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 중심으로 계열분리 작업에 가속도를 내야 한다는 점에서도 하루빨리 분란을 끝내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시간 앞에서 패배자입니다. 영원한 삶이 없고 영원한 기업이 없고 영원한 비즈니스도 없습니다. 원망도 미움도 분노도 시간이 가면 다 풍화되고 맙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돌이켜 보면 모든 게 물거품이고 그림자이고 이슬입니다. 고 조석래 명예회장도 그것을 절실히 느껴 천륜과 우애를 당부했습니다. 조현준 조현문 조현상 형제에게도 비즈니스를 정리하고 삶을 마무리해야 하는 그런 날이 옵니다. 그때 후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