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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TSMC를 보고 삼성전자를 보면

Numbers_ 2024. 5. 2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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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TSMC를 보고 삼성전자를 보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세계 1등 파운드리 반도체 회사 TSMC를 창업한 ‘대만 반도체 산업의 아버지’ 모리스 창. 중국 저장성 출신으로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갔지만 크리스 밀러가 쓴 ‘칩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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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세계 1등 파운드리 반도체 회사 TSMC를 창업한 ‘대만 반도체 산업의 아버지’ 모리스 창. 중국 저장성 출신으로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갔지만 크리스 밀러가 쓴 ‘칩워’(Chip War)에 나오듯이 그는 대만 사람이라기보다 ‘텍사스 사람’으로 부르는 게 맞을지도 모릅니다.

 

모리스 창은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와서 하버드와 MIT에서 대학 시절을 보냅니다. 그는 MIT에서 석사를 마친 후 두 번째 직장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20년간 일합니다. 창은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미국의 국가 기밀 취급 인가를 받아 국방 관련 일을 했고, 라이벌이었던 IBM을 이긴 공로로 2인자의 자리까지 오릅니다. 당시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하던 중국인 중 최고위직이었습니다. MIT에서 기계공학 석사를 마친 창은 나중에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반도체 산업에서 설계와 제조를 나눠 ‘파운드리’라는 산업을 만든 것은 인쇄술의 발견에 비견되는 엄청난 사건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모리스 창은 세계 반도체 역사를 새로 쓴 천재 기업인입니다.

 

대만 정부가 모리스 창에게 백지수표와 전권을 주어 설립된 TSMC는 대만의 국가적 프로젝트였지만 동시에 미국 반도체 산업과도 깊숙이 연결돼 있었습니다. TSMC의 고객 대부분은 미국의 반도체 설계자들이었고 TSMC의 최고위 임원 대다수가 실리콘밸리 출신이었습니다. 철저히 사기업으로 시작해 국내 인재 중심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는 출발부터 달랐고 이게 TSMC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창업자인 모리스 창 회장이 물러나고 뒤를 이은 사람은 마크 리우 회장입니다. 마크 리우는 대만국립대에서 전기공학을 수학한 후 UC버클리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이후 인텔과 AT&T에서 10년간 근무한 후 1993년 TSMC로 자리를 옮겼고, 2018년 회장직에 오릅니다. 그는 오는 6월 퇴임하는데 6년의 재임 기간 중 TSMC 시가총액은 무려 4배 늘어 1000조원을 넘었습니다. 반도체만이 아닌 종합 전자회사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500조원이 안됩니다.

 

마크 리우 회장의 뒤를 잇는 사람은 웨이저자 CEO입니다. 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반도체 기업을 거쳐 1998년 TSMC에 합류해 2013년부터 마크 리우 회장과 공동 CEO를 맡아왔습니다.

 

창업자 모리스 창부터 마크 리우 현 회장, 그리고 차기 회장인 웨이저자까지 TSMC의 리더들은 하나같이 미국 명문대에서 박사 학위까지 마쳤고, 글로벌 반도체 회사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요즘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반도체 기업은 삼성전자도 TSMC도 아닌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미국의 엔비디아입니다. 엔비디아는 지난 1분기에만 169억달러(23조원)의 영업이익과 65%의 영업이익률이라는 반도체 산업 역사에서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엔비디아는 올해 연간 영업이익 100조원을 쉽게 달성할 것으로 보입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대만 출신으로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오리건 주립대와 스탠퍼드대학을 거쳐 1993년 엔비디아를 창업했습니다. 신생 벤처기업 시절 젠슨 황은 TSMC의 모리스 창에게 칩을 만들어 달라고 편지를 썼는데 모리스 창은 흔쾌히 부탁을 들어줍니다. 젠슨 황은 “TSMC가 없었다면 오늘의 엔비디아도 없었다”며 “모리스 창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엔비디아가 TSMC에 제품생산을 모두 맡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지난주 삼성전자가 만드는 HBM(고대역폭메모리) 반도체가 발열 문제 등으로 엔비디아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외신 보도로 삼성전자 주가가 폭락했지만 모리스 창과 젠슨 황, 엔비디아와 TSMC의 끈끈함과 밀월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세계 반도체 전쟁에서 시장을 장악한 쪽은 단연 대만계입니다. 대만계 인물로는 모리스 창과 젠슨 황만 있는 게 아닙니다.

 

엔비디아에 이어 AI 반도체 2위를 달리는 미국 AMD의 리사 수 CEO도 대만 출신이고 젠슨 황과는 5촌 관계의 친척입니다.

최근 국내에서 ‘밸류업’ 열풍이 불면서 이사회와 지배구조에 대해 관심이 높지만 TSMC의 사외이사 면면을 보면 전직 관료나 교수 재무 전문가 등이 주축인 삼성전자 사외이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합니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 거물들이 이사회의 주축입니다. 예를 들면 영국 브리티시텔레콤 전 회장, 차량용 반도체 선두인 네들란드 NXP반도체 창업 회장,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 AMAT 전 CEO 등입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수장을 전격 교체했습니다. 삼성전자의 핵심인 반도체 사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단행된 사실상의 문책성 인사입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올 1분기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섰지만 흑자 규모에서 SK하이닉스에 밀렸습니다. 삼성은 AI시대의 핵심 메모리 반도체인 HBM 시장에서 최대 수요처인 엔비디아의 품질인정을 아직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전체 D램 시장에서조차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턱밑까지 추격해 왔습니다.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대만 TSMC와 시장 점유율 격차가 50%포인트까지 벌어졌습니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전영현 부회장은 KAIST에서 전기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정통 엔지니어입니다. 그가 메모리사업부장을 맡았던 2014~2017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20나노 18나노 D램 양산에 잇달아 성공해 경쟁사들과 초격차를 유지했습니다. 삼성SDI 사장을 맡아서는 갤럭시노트7 배터리 화재 사고를 수습한 것은 물론 적자기업을 흑자로 돌려놓아 그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큽니다.

 

그러나 이번 삼성 반도체 수장이 경질되는 과정을 보면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환경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데 5년간이나 배터리 사업 쪽에 나가 있던 사람이 얼마나 빨리 사태를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삼성전자 내에 현재의 반도체 위기 상황을 돌파할만한 실력과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랜 기간 공동 경영 등으로 실력을 쌓아 전임자가 물러나면 자연스럽게 최고 경영자가 승계되는 TSMC의 인재 풀(Pool)과 지배구조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혹시 전영현 부회장마저 실패한다면 삼성 반도체와 삼성전자는 심각한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의 성공을 빕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