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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린랲 경영권 분쟁]② 대법원까지 이어진 부자간 법정 공방...'장남 승소'로 뒤집힌 이유

Numbers_ 2024. 6. 8.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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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린랲 경영권 분쟁]② 대법원까지 이어진 부자간 법정 공방...'장남 승소'로 뒤집힌 이유

자본시장 사건파일식품포장용품 제조기업 크린랲은 수년간 창업주 가족의 경영권 분쟁에 노출돼 있었다. 고(故) 전병수 회장과 장남 전기영씨가 '전병수 회장이 소유한 회사 주식 21만주를 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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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사건파일

 

/그래픽=박선우 기자, 자료=게티이미지뱅크·크린랲 홈페이지


식품포장용품 제조기업 크린랲은 수년간 창업주 가족의 경영권 분쟁에 노출돼 있었다. 고(故) 전병수 회장과 장남 전기영씨가 '전병수 회장이 소유한 회사 주식 21만주를 장남에게 증여한다'는 내용의 주식증여계약서를 두고 소송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장남은 지난 2006년 작성된 이 계약서를 근거로 자신을 주식의 소유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 회장은 계약서가 위조됐고, 주식의 소유권은 차남에게 있다며 2019년 장남을 상대로 소송(주식양도의사표시 및 명의개서)을 제기했다. 1심이 진행되던 중 전 회장이 사망하자 A씨가 소송수계인(소송을 이어받은 사람)으로, 차남 전기수씨가 원고보조참가인으로 재판에 참여했다.

1심은 전 회장 측의 승소였다. 주식증여계약서의 성명·사인이 전 회장에 의해 작성됐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등의 판단에서였다. 이후 2심에서 장남의 승소로 판결이 뒤집히며 이들의 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올해 3월 대법원에서도 이 판결은 그대로 유지됐다.

항소심에 올라가면서 판결이 엇갈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재판부 판단을 살펴봤다.

 

주주명부에 주주로 등재된 장남...재판부 "회사의 주주로 추정"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장남이 크린랲 주주명부에 주주로 등재돼 있는 점은 항소심 재판에서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 등에 근거해 "주주명부에 주주로 등재돼 있는 사람은 그 회사의 주주로 추정되며 이를 번복하기 위해서는 그 주주권을 부인하는 측(전 회장 측)에 증명 책임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 회장 측이 주장하는 사정이나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장남이 주주'라는 추정을 바꾸기 어려웠다. 

우선 계약서상 전 회장의 서명이 그의 자필이 아니라는 점이 인정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1·2심 모두 주식증여계약서를 감정했는데 결과가 달랐다. 1심 감정인은 계약서상 전 회장의 한자 성명·영문 서명에 주저하거나 떨린 흔적 등이 관찰되지 않아 모방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반면 2심 감정인은 영문 서명에 주저흔이 발견된다는 등의 판단을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계약서의 진정성립(작성자의 진정한 의사에 따라 작성된 것)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두 번의 필적 감정이 이뤄졌으나 결과에 차이가 있다"며 "어느 하나의 감정 결과를 그대로 채택하기 어렵다"고 했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2심 감정인이 주식증여계약서와 회사 서류 등에 나타난 전 회장의 한자 성명 필적이 각각 다르다고 판단했지만, 그 결과만으로 제3자가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섣불리 단정할 수도 없었다. 재일교포인 전 회장이 항상 일본식 필순(筆順·글씨 쓸 때 획의 순서)을 따랐거나 필적이 일관됐다고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회장이 한국에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회사 문서에 직원들이 대신 전 회장의 서명을 기재했다는 증언이 나오기는 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설령 주식증여계약서상 전 회장의 서명이 직원에 의해 작성됐더라도, 전 회장이 주식을 장남에게 증여한 이후 명의개서(주주명부에 주주의 이름·주소를 적는 것)를 위해 자신의 서명을 타인이 하도록 허락했을 수 있다"며 "그 서명이 전 회장의 의사와 무관하게 작성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일관성 없는 전 회장 주장, 그대로 믿기 어려워"


나아가 항소심 재판부는 '장남에게 이 사건 주식을 증여한 바 없다', '주식증여계약서는 전 회장의 의사에 기하지 않고 임의로 작성됐다'는 취지의 전 회장 발언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했다. 주장에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전 회장은 장남을 상대로 제기한 또 다른 소송의 소장에서 '주식 21만주를 장남에게 양도해 그 소유권이 장남에게 이전됐음을 전제로 양도 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점'을 문제 삼았다. 그러더니 전 회장은 강박에 의하거나 통정허위표시(상대방과 합의해 허위로 의사 표시)로 장남에게 주식을 증여한다고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전 회장이 2016년경 약 86세의 나이로 고령이었고 2017년 4월경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은 점까지 더해 보면, 2016년경 무렵부터 이뤄진 이 사건 주식에 관한 전 회장의 발언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했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더불어 재판부는 △전 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크린랲 주식을 장남에게 증여하거나 유상 양도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승계시키는 것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온 것으로 보이는 점 △크린랲 감사보고서에는 2006년도부터 장남의 지분율이 70%로, 전 회장의 지분율은 27.8%로 기재돼 있는데도, 전 회장이 2016년경까지 지분 소유관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 점 등도 고려해 장남 승소 판결을 했다. 

지난해 12월 부산고법 창원재판부 제1민사부(조광국 부장판사)는 "전 회장이 (주식증여계약서 작성 무렵인) 2006년 11월경 이후에도 주식의 소유권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장남이 소유권을 보유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전 회장 측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지만, 올해 3월 심리불속행 기각됐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원심 판결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의 문제가 없어 재판부가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대법원 판결 이후, 2022년부터 크린랲을 이끈 차남은 대표이사직에서 내려왔다. 새 대표이사는 전 회장의 조카이자 과거 크린랲 대표이사였던 승문수씨가 맡았다. 승씨는 <블로터>에 "대법원 판결로 이달 14일 다시 대표로 선임됐다"고 밝혔다.

<끝> 

박선우 기자 closely@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