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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사건파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 재판에서 검찰과 삼성 변호인 측이 공방을 벌인 쟁점 중 하나는 '제일모직 상장'이었다. 제일모직은 지난 2014년 12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으며 이듬해 삼성물산과 1대0.35의 비율로 합병했다. 이는 제일모직 주식 1주의 가치를 삼성물산 약 3주로 평가했다는 의미다.
검찰은 제일모직 상장 후 삼성물산과 합병한 것에 대해 이 회장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을 상장해 주가를 높여 위와 같이 유리한 합병 비율을 만들 계획이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위한 사전 작업 외에는 제일모직의 상장 필요성은 없었다"며 "상장은 제일모직 주가를 부당하게 높이는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 변호인 측은 "제일모직 상장은 정상적인 기업 경영활동에 해당한다"며 "당시 제일모직에 투자 재원 확보 등을 위한 자금 조달 수요가 있어 상장이 필요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박사랑, 박정길 부장판사)는 "제일모직 상장은 사업상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투자 자금 확보하려고 상장...주주 이익에도 도움
판결문에 따르면, 제일모직은 △에버랜드(제일모직으로 사명 변경)의 제일모직 패션사업 인수(1조500억원)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투자(1847억원) △시설 투자 (2617억원) △삼성물산과 서울레이크사이드 지분 20%(700억원)를 인수하는 등의 과정에서 차입금 규모와 차입금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이었다.
이에 제일모직은 대규모 자금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 방안으로 상장을 선택했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제일모직 관계자 등도 사업상 상장 필요성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상장·합병 당시 제일모직 대표이사 등을 맡았던 A씨는 검찰에서 상장을 추진하게 된 계기에 대해 '로컬(국내) 사업으로 사업을 키우기에 한계가 있다. 해외로 나가려면 회사의 투명성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상장이 검토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에버랜드와 삼성물산을 담당했던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검찰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바이오 계열의 신규 사업에 투자할 자금을 확보하려는 차원에서 제일모직 상장을 추진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대다수의 비상장 회사들은 상장 요건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상장을 통해 자금 조달이 원활해진다"며 "주주의 경우 비상장법인에 비해 차익 실현이 용이해지기 때문에 상장 그 자체는 정상적인 기업 경영활동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또 "제일모직 상장이 미래전략실이 관여해 이재용 회장의 '최소 비용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행해진 것이더라도 사업상 필요성이 인정되는 이상 상장의 목적이 부당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제일모직 상장이 주주와 회사의 이익에도 도움이 됐다고 봤다. 지난 2013년에 작성된 문건에 '에버랜드 상장 및 삼성물산과 합병을 통해 신규 투자 여력 확보, 사업 경쟁력 제고, 해외 사업 확대, 중복 비용 절감 등 통합 시너지 증대 필요'라는 등의 검토 사항이 기재된 점을 고려한 것이다.
재판부는 "제일모직 상장의 사업적 필요성을 검토한 사실이 확인되는 점, 상장하면 자금 조달이 원활해지며 경영 투명성이 높아지는 장점들이 생기는 점 등을 고려하면 상장은 사업상 필요성이 인정되며 제일모직과 주주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상장 후 주가 상승...재판부 "시장의 긍정적 평가 때문"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이 회장 등 피고인들이 내부적으로 추산한 제일모직의 시가총액은 6조~8조원대였다. 그런데 상장 당일인 지난 2014년 12월 18일 제일모직 주가는 11만3000원으로 형성돼 시가총액이 15조3000억원 상당이었다. 이후 같은 달 30일 기준 시가총액은 약 21조3000억원에 달했다.
법원은 주가 상승에 대해 시장이 제일모직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결과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제일모직은 패션사업과 안정적인 수익이 창출된다고 하는 급식사업을 보유하고 있었고, 장래 성장이 예견되는 바이오사업도 삼성전자와 함께 보유하고 있었다"며 "시장에서도 이러한 사정을 높이 평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상장 후 제일모직 주가가 부당하게 부풀려졌다고 하려면 시세조종과 같은 정황이 확인돼야 하지만 그러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공모가 산정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한 것도 제일모직 주가 상승에 영향을 줬다고 봤다. 당시 제일모직 상장 주간사였던 씨티증권 IB 소속 관계자는 법정에서 '삼성 측은 제일모직 상장 이후 주가가 상승 흐름으로 보이도록 공모가를 보수적으로 산정하기를 원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수익성, 성장성, 경영진 등 다양한 요소가 반영돼 형성된 제일모직의 시장 주가를 특별한 사유 없이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며 "기업의 주가에 지배구조 관련 기대감이 반영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를 두고 주가가 허위로 부풀려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5편>으로 이어집니다.
박선우 기자 closely@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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