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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1심 판결]⑤ 삼성 미래전략실..."합병 미리 결정하지도, 지시하지도 않았다"

Numbers_ 2024. 6. 1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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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1심 판결]⑤ 삼성 미래전략실..."합병 미리 결정하지도, 지시하지도 않았다"

자본시장 사건파일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 중에는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 임원들이 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미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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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사건파일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자료=게티이미지뱅크·뉴스1·블로터DB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 중에는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 임원들이 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미전실은 총수의 지시나 의중에 따라 계열사의 경영에 개입해 주요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했던 총수 보좌조직이다. 최지성 전 미전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등 임원들은 지난 2015년 4월경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을 전단적(혼자 마음대로 결정하고 단행)으로 결정해 삼성물산 측에 하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삼성물산의 형식적 이사회를 거쳐 같은 해 9월 합병이 이뤄졌다는 것이 검찰 측 의견이다.    

하지만 1심에서 이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회장과 미전실에 의해 합병이 이미 결정돼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렇다면 합병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됐다고 본 것일까. 판결문을 살펴봤다.

 

제일모직 측의 합병 문의...미전실, 검토 후 이 회장에 보고

 

합병이 이미 결정돼 있었다고 주장한 검찰 측 증거는 프로젝트-G(Governance)였다. 프로젝트-G는 지난 2012년 미전실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지배구조 검토 태스크포스(TF)'가 작성한 문건이다. 

검찰은 이 문건을 이 회장의 승계계획안이라고 봤지만, 재판부는 "지배구조 방안들을 집대성해 종합적으로 검토한 것이지 당시 합병 실행 계획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다른 문건들도 미전실이 전단적으로 합병을 결정했다는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가 되지 못했다. 합병 관련한 내용이 문건에 있더라도 다른 부분에 제일모직을 삼성물산과 합병하지 않거나, 독립 운영하는 방안 등을 검토한 내용이 함께 기재돼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합병은 제일모직 측의 문의, 삼성물산 경영진의 합병 동의, 미전실의 검토, 이 회장 등의 승인을 거쳐 진행됐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2015년 3월 당시 제일모직 패션 부문 사장이던 A씨는 해외 진출 방안을 고민하던 중 삼성물산과 합병한다면 상사 부문의 해외 유통망 등 관련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미전실에 의견을 문의했다. 이후 미전실은 문건(M사 합병추진안)을 작성했고,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은 A씨에게 합병을 추진하는 데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했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이에 A씨는 당시 삼성물산 대표였던 B씨에게 합병을 제안했고, 긍정적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김 전 미전실 전략팀장은 검찰에서 '삼성물산의 합병 추진 의사를 확인한 다음 최지성 전 미전실장에게 보고해 승인받았다', '그날 이 회장에게 합병 추진에 대해 처음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미전실의 합병 추진 검토, 결정과는 별개로 우연히 그 시점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 추진 의사의 합치를 이루더니 미전실에 이를 알려왔다'는 취지의 김 전 전략팀장의 진술은 개연성이 극히 떨어지고 매우 조악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삼성물산 관계자들이 미전실에서 합병을 검토했다는 점을 당시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김 전 전략팀장이 양사 경영진의 협의 사실을 확인하고 이 회장에게 관련 보고를 한 것이라는 핵심적인 부분에 대한 관계자들의 진술이 부합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김 전 전략팀장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미전실이 삼성물산 경영진 등에게 합병 추진 계획인 'M사 합병추진안'과 실행 지시를 하달했다는 검찰 주장도 인정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삼성물산 관계자 등은 법정 및 검찰에서 이 문건을 '당시에는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M사 합병추진안' 등에서 검토한 합병 일정과 실제 합병 일정안도 달랐다. 

 

검찰 "이사회, 거수기"...재판부 "검토 충분, 합병 필요성 공감"

 

삼성물산 이사회가 미전실이 결정한 합병을 형식적으로 추인했는지 여부도 재판의 쟁점이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사회 전날과 당일에 사외이사들에게 합병 타당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이 이뤄졌으며, 사외이사들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 찬성 표결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사외이사들은 법정과 검찰에서 '제일모직으로부터 합병 제안이 왔다는 말을 듣고 시너지 효과 등 삼성물산에 큰 도움이 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 '특히 (제일모직의) 바이오사업이 삼성물산의 신성장 사업으로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해 합병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사회 시간이 1시간이어서 형식적이고 졸속으로 진행됐다는 논리도 펼쳤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전 설명회를 통해 합병 안건에 대한 자료를 제공받고 질의응답도 충분히 진행됐기 때문에 삼성물산 이사회가 이사회 당일 1시간 만에 모든 고민과 검토를 끝낸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사외이사들이 이사회에서 반대 의결을 한 사실이 없다는 이유로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는 검찰 주장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통상 이사회가 열리기 전에 이사들과 안건을 조율·수정하고, 반대하는 이사가 많은 경우 이사회 결의에 부쳐지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찬성률이 높다는 사정만으로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역할에 지나지 않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또 재판부는 "만약 검사의 주장대로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면 사외이사들을 대상으로 사전 설명회를 거칠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6편>으로 이어집니다.

 

선우 기자 closely@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