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분석

텅빈 곳간...고강도 쇄신 외친 '최태원 코드' 어떻게 맞추나

Numbers_ 2024. 6. 2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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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곳간...고강도 쇄신 외친 '최태원 코드' 어떻게 맞추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고강도 체질개선을 요구한 가운데 각 계열사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공급망 재편 등 녹록지 않은 대내외 환경에 대응해 그룹 차원의 자구책이 필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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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고강도 체질개선을 요구한 가운데 각 계열사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공급망 재편 등 녹록지 않은 대내외 환경에 대응해 그룹 차원의 자구책이 필요하지만 자금줄이 말라붙은 상황에서 거론되는 사업재편 시나리오 자체가 부담이다.


투자·M&A 당위성 주장 최태원, 성공 여부 '미지수'


최 회장은 최근 열린 사장단회의에서 "인공지능(AI)과 반도체는 에지 있게 투자하고 그린·바이오 사업은 콤팩트하게 줄이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핵심 사업 이외의 신규 투자는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미래 성장성이 저조한 기존 투자는 과감히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현재 그룹 경영쇄신의 일환으로 SK이노베이션이 SK E&S를 흡수합병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연간 영업이익 1조원이 넘는 SK E&S의 우수한 현금창출력이 SK이노베이션의 부채 부담을 낮추고 자금 확보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를 합친 뒤 발전·액화천연가스(LNG) 등 SK E&S의 알짜사업 부문을 SK온에 이전하면 SK온의 재무구조도 한층 개선할 수 있게 된다.

일부에서는 상장사(SK이노베이션)와 비상장사(SK E&S)의 합병인 만큼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합병 비율에 따라 주식매수청구권 기준 가격이 주가를 웃돈다면 주식매수청구권이 큰 규모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현금 부담이 커지게 된다. 이에 SK이노베이션 주식가치 희석이 불가피해지며 소액주주들이 반발할 우려도 제기된다.

지주사인 SK㈜가 SK E&S에서 나오는 배당소득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SK E&S는 SK㈜에 연간 4000억원 이상의 배당금을 지급하는 주요 수입원이다. 이와 관련해 SK이노베이션은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게 없다"고 밝혔다.

이 밖에 △SK온과 SK엔무브 합병 △배터리 분리막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지분 매각 △SK E&S와 SK온 등 다양한 안이 논의된다.

 

부채만 수십조…SK온 구하기 총력전?


최근 일부 언론은 SK 주요 경영진이 산업은행에 그룹 사업재편의 밑그림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SK는 산은에 △계열사 간 중복사업 정리 △비주력사업 부문 매각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등을 골자로 한 방안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산은은 반도체, 배터리 등 국가전략산업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SK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여기에 SK는 보유 중인 해외 지분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행사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베트남 마산그룹 지분 9.5%를 처분하고 빈그룹과 지분매각 협상을 벌여 1조원가량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협상은 현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의 협조를 구하고 비핵심 자산까지 정리하며 SK가 현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배경으로는 SK온 정상화가 꼽힌다. SK온이 적자에도 대규모 설비투자를 이어가며 그룹의 전체 실적을 잠식하고 있다. 신용공동체인 SK이노베이션의 재무 부담도 가중됐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의 올 1분기 순차입금은 배터리 사업 투자 확대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3조79억원 증가한 18조5744억원을 기록했다. 연간 부채 규모는 2019년 21조3212억원에서 지난해 말 50조7592억원으로 4년 만에 2배 넘게 불어났다.

 

SK 내부에서는?...미묘한 기류 "부담감 커졌다"


최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는 고강도 쇄신을 요구하지만 SK 내부에서는 이를 현실화하기 버겁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SK 내부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한 가운데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며 "그룹 체질개선에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경영진이 자금 마련을 위한 접촉을 늘리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사 시기가 아닌데 최근 구조조정의 '칼바람'까지 불며 부담은 한층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SK 내부에서는 문책성 경질이 잇따르고 있다. 박성하 SK스퀘어 대표이사는 성과 미비를 이유로 최근 해임 통보를 받았다. 투자전문회사 SK스퀘어는 그동안 경영실적이 저조하고 투자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SK하이닉스를 제외하고 11번가, 웨이브, ADT캡스, 원스토어, 티맵모빌리티 등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는 회사들의 실적은 모두 침체 상태다. 지난해 8월 SK온 최고사업책임자(CCO)로 영입된 성민석 부사장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SK온이 임원 감축에 본격 시동을 거는 등 앞으로 C레벨에서 추가로 경영진이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


최지원 기자 frog@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