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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의 승계 구도는 사실상 확정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부회장은 해양방산·에너지·우주항공 등 그룹 핵심 사업군을 책임지며 차기 총수로 존재감을 키웠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그룹 부회장 자리에 오르며 전문경영인에서 오너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본격화했다.
대외적으로는 두 부회장 모두 이미 그룹을 대표하고 있지만 지배력 확대는 공통 과제다. 김 부회장의 경우 승계가 상당 부분 진척됐지만 정 부회장은 아직까지도 지배력이 현저히 약하다.
'한화에너지' 기반, 승계 전략 짠 김동관
우선 김 부회장은 현재 그룹 지주사 ㈜한화 지분율 4.91%를 보유하고 있다. 각각 2.14%씩 지분을 보유한 동생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에 비해서는 높지만 최대 주주인 부친 김승연 회장(22.65%)에게는 크게 못 미친다.
하지만 김 부회장이 50% 지분을 보유한 한화에너지를 고려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한화에너지는 김 부회장을 비롯한 오너 3세들이 지분을 가진 계열사다. 지분율은 김 부회장이 50%,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각각 25%씩이다. 한화에너지는 공개매수를 통해 현재 ㈜한화 지분을 9.70%에서 17.7%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김 부회장이 막대한 지배력을 가진 한화에너지가 ㈜한화 지분을 확대하면 '오너 3세 삼형제→한화에너지→한화→그룹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미 보유한 ㈜한화 지분 4.91%를 더하면 ㈜한화에 대한 김 부회장의 지배력은 약 13%까지 올라간다. 부친 지분율의 절반을 넘어서는 규모다.
일부에서는 한화그룹이 ㈜한화와 한화에너지를 합병하는 방식으로 승계를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화에너지가 미국 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신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 일환으로 해석된다. 신사업 육성을 통해 비상장사인 한화에너지 자산 가치와 수익 가치를 끌어올려야 상장사인 ㈜한화와의 합병 비율에서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 정공법 택한 정기선
반면 정 부회장은 자사주 매입을 통해 지분율을 조금씩 끌어올리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는 연봉과 배당을 통해 확보된 자금을 HD현대 주식 매입에 쏟아붓고 있다. 지난 5월 초부터 두 달여간 사들인 주식만 약 400억원에 달한다. 잇따른 지분 매입으로 1분기 말 5.26%였던 정 부회장의 HD현대 지분율은 6.04%까지 높아졌지만 부친 정 이사장의 지분율(26.60%)에는 한참 못 미친다. 추가적으로 지분을 사들인다 해도 유의미한 수준까지 확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김 부회장의 경우처럼 한화에너지를 통한 우회적인 지배력 확대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 부회장이 HD현대 외에 활용할 수 있는 계열사 지분도 많지 않다. HD한국조선해양 주식 544주, HD현대일렉트릭 주식 156주, HD현대건설기계 주식 152주 등이 정 부회장이 들고 있는 지분의 전부다. 결국 정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높이려면 부친의 지분을 증여받거나 매집을 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난관이 많다. 정 부회장이 부친의 지분을 원활히 증여받기 위해 납부해야 하는 증여세는 7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HD현대 배당금을 높이는 게 가장 현실적인 자금 확보 방안으로 꼽힌다. HD현대로부터 받은 배당금으로 HD현대 주식을 매입하고 그렇게 늘린 지분을 바탕으로 더 많은 배당금을 받아 지분율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한편 오너 3세라는 공통점으로 묶인 데다 나이도 비슷한 만큼 두 사람은 평소 막역한 친구 사이로 알려졌다. 2016년 김승연 회장의 모친상 빈소를 찾은 정 부회장이 취재진에게 "동관이 친구여서 오게 됐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김 부회장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정 부회장의 결혼식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방산사업에 있어서는 최대 라이벌이다. 국내 특수선 시장을 양분하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8조원 수주전을 앞두고 첨예한 신경전을 이어오고 있다.
최지원 기자 frog@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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