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CFO 리포트] 금융회사 CEO의 자리

Numbers 2023. 12. 4. 10:29

하마구치 다카노리(‘사장의 일’ 저자)는 ‘사장 10계명’의 첫번째 계(戒) 로 ‘눈이 내리는 것도 내 책임’이라 생각하라고 했다. 업종이나 규모에 상관 없이 여느 회사 사장이든 그 자리는 ‘극한직업’ 임에 틀림 없다. 손해보험사 사장들은 겨울 철 함박눈이 결코 반갑지 않다.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름철 장마철에는 침수 차량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 코로나 시국에 감기환자와 병원 찾는 환자가 줄어들어 실손보험 지급보험금 감소로 경영실적이 개선되는 행운도 있다. 전지구적 환경과 기후변화를 두고도 걱정들이 태산이다. 세상의 경영자들 대부분은 자신의 뜻대로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에 늘 노심초사한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그 영향으로 나타난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명한 학자들이 쓴 경영학 교과서의 조직관리이론 뿐만 아니라 세상이 다 아는 성공을 이룬 탁월한 경영자들의 주옥 같은 현장 경험담을 담은 ‘사장학’에서 항상 톱픽(Top Pick)으로 거론되는 것이 권한부여(Empowerment) 이슈이다. 훌륭한 사장되는 중요한 덕목이 주주와 이사회로부터 부여 받은 ‘권한의 위임’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 관한 것이다. 유능한 CEO는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잘 나눠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1인 기업이 아닌 이상 회사 공동의 조직목표를 효과적으로 성취하려면 적합한 사람을 찾아서 보임을 하고 해야 할 일을 잘 나눠주야 한다. 당연히 나눠준 일의 수행결과에 대한 책임은 수행한 사람 뿐만 아니라 일을 나눠준 CEO가 포괄적으로 감당해야 한다. CEO는 권한을 부여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법과 규정 이전에 포괄적인 도의적 책임까지도 져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항상 그렇듯이 책임의 넓이와 폭이다. 관련 이슈가 너무 뜨거워지거나 정치사회적 상황과 맞물리면 예상밖으로 책임의 무게가 달라지기도 한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2023년 11월 29일 3년 이상을 끌어온 자산운용사(라임, 옵티머스, 디스커버리)들의 위법행위와 관련되어 있는 금융권 CEO들에 대한 금융위원회 제재조치가 확정이 되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을 근거로 ‘위험을 실효성 있게 통제할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이다. 고객 돈을 모아 조성된 펀드운용과정에서 발생한 횡령, 금품수수, 돌려 막기 등 자산운용사들의 불법행위를 사전에 걸러내지 못했는데 그 원인이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와 준수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펀드판매과정에서 적합성, 적정성, 설명의무 등 법과 규정 준수 미흡으로 발생한 ‘불완전판매’ 관련하여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금융회사 임직원에 대한 금융감독원 제재는 ‘자본시장법’에 의해 이미 2021년에 앞서서 이루어졌다.

2021년 10월 27일 금융위원회는 문제를 일으킨 라임 등 자산운용사들의 펀드 판매 및 운용관련 위법·부당행위에 대한 제재조치 적용 법규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사항과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 지배구조법)’ 위반사항으로 분리하여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펀드 사전점검 등 불완전판매 관련은 ‘자본시장법’의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세칙, <별표3>’을 적용하고,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관련은 ‘금융사 지배구조법 제24조’, 시행령 제19조, 감독규정 제11조 등의 ‘내부통제 기준’으로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각 증권사 내규에는 ‘금융사 지배구조법’을 반영하여 내부통제의 최종관리책임자가 대표이사로 되어 있다. 내부통제관련 법령들 상당부분이 사모펀드 스캔들이 터진 직후인 2020년 이후 최근 3년 사이에 보완이 많이 이루어졌다.

이번 금융권 CEO들에 대한 제재는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하여 판매자인 증권사 및 은행의 불완전판매행위, 그리고 내부통제 기준마련과 준수의무 미흡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묻는 과정이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회장 등 이미 진행중이던 관련 소송결과를 반영하려는 취지로 지금까지 제재를 미뤘던 것이다. 난해한 금융상품을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설명과 이해 없이 권유했다는 불완전 판매 이슈에 대해 포괄적 관리책임자인 CEO의 ‘사법적’ 책임을 묻는데 필요한 사실관계 확인과 법령 해석 등에 다툼의 여지가 많았던 측면도 있다. TRS(총수익스왑) 거래를 통해 자금지원을 함으로써 단순 판매자 역할을 넘어서 불법펀드의 판매확대를 조장했다는 취지의 ‘괘씸죄’가 추가되어 징계수위가 ‘자본시장법’에 의한 불완전판매 징계 때보다 더 높아지기도 했다. 모 증권사의 경우 거래상대방 위험을 충분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하여 TRS거래 규모를 이미 축소시켜오던 와중에 개인투자자에게 관련펀드를 판매했다는 것이 화근이었다.

국회 제출자료를 인용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8년 이후 2023년 8월까지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제재조치에 불응하고 제기된 소송이 387건이고, 2020년 이후 증가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종 판결이 나온 151건 중 금융위원회의 패소 비율이 36% 수준으로 보도되고 있다. 적지 않은 비율이다. 처음부터 아예 소송을 포기한 경우까지 고려하면 당국의 불합리한, 잘못된 제재로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금융기관과 임직원들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에는 금융사 CEO가 징계를 받으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대부분 자진 사퇴하고 개인적 불이익은 조용히 혼자 감수는 것이 오래된 관행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으면 불복하고 소송을 통해 사법적 판단을 구하는 프로세스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금융당국의 불합리한 감독제재관행이 업계의 불신을 키워온 측면이 강하다는 측면에서 자업자득인 셈이다.

2004년 KB국민은행과 국민카드의 합병과정에서 법인세 과소납부를 문제삼아 CEO와 담당임원에 대한 감독당국의 제재가 있었다. 감독당국, 세무, 법률 등 다수의 전문가들 의견을 종합하여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 입장에서 최선의 경영의사결정을 했지만 사후적으로 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억울했지만 소송 없이 당사자들은 사퇴했다. 다만, KB국민은행이 경영진 제재의 근거가 되었던 불합리한 과세행정에 문제를 제기하여 2015년 대법원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다. 기 납부했던 추징금 4485억원과 환급가산금 942억원을 모두 되돌려 받았지만, 당사자들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데 10년이 걸렸고 한 분은 이미 사망한 후의 일이 되었다.

2009년 황영기 전 KB금융지주회장은 우리은행장 재직시 CDO, CDS 투자관련 위법한 지시 혐의와 관리책임을 물어 업무정지 3개월 제재를 받았었지만 2013년 대법원 승소를 통해 5년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개인의 인생에서 5년, 10년은 짧지 않은 세월이다. 2022년 손태승 전 우리은행회장 역시 DLF 관련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 마련 미비 혐의로 문책경고를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현직 금융사 CEO가 금융감독당국과 맞서는 초유의 사태라는 우려와 비난을 감수한 결과였다. 손태승 회장은 라임펀드 관련 제재는 금융당국을 또 다시 상대해야 하는 부담과 소송의 실익 차원 등을 고려하여 소송은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제 18조(임원에 대한 제재)’에는 ‘고의 또는 중과실’의 단서조항 외에 금융기관 평판리스크 야기로 경영상태를 위태롭게 하거나 금융기관과 금융기관거래자 등에게 재산상 중대한 손실을 초래한 경우에 ‘해임권고’ 제재조치 할 수 있는 조항이 2020년 5월에 추가신설 되었다. 추가된 ‘해임권고’ 중징계 대상의 정의가 구체적 행위가 아니라 상당히 추상적인 포괄규정으로 되어 있어서 ‘직무정지’로 한단계 경감시킬 수 있는 ‘정상참작’ 조항을 동시에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위법, 부당행위에 해당하지만 금융기관 및 거래고객의 재산상 손실 초래의 동기, 목적, 방법, 수단, 사후 수습노력 정도 등을 감안하여 정상참작을 할 수 있도록 규정을 신설한 것이다.

고의성이나 중과실이 확인될 정도라면 당연히 합당한 죄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건전한 상식을 가진 대부분의 정상적인 경영자라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재임기간동안 회사가 망가지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적인 인센티브를 떠나서 이해관계자들과 사회공동체 가치증진 측면에서 더 좋은 회사를 후임자에게 넘겨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보통의 경영자들 생각이다. 모든 경영자에게는 아주 포괄적이고 주관적 해석 여지가 강한 ‘선량한 관리자 의무’가 부여되어 있다. ‘선관의무’ 불이행은 처벌 대상이라기 보다는 정상 참작의 조건이다. 사법적 판단에 필요한 ‘법과 규정’은 매우 엄격하고 아주 디테일해야 한다. 주관적 해석을 최소화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객관성 확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2023년 11월 21일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의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직책별 책임과 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책무구조도’를 포함하여 대표이사의 내부통제 ‘총체적’ 관리의무와 이사회의 역할 등을 명시하고 있다. 실효적으로 내부통제 관리시스템이 잘 작동되도록 관련시스템 구축의무가 명확히 부과되고, 관리실패시에는 책임을 대표이사가 지도록 명시하고 있다. 내부통제시스템은 회사경영의 운영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운영리스크는 몇몇 법규 조항의 추가보완만으로 완벽하게 관리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거의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CEO들이 감당해야 할 신의 영역이다.

금융회사 CEO 자리는 ‘법과 규정’에 따른 사법적 의무 이상의 책임을 요구한다. ‘눈이 내리는 것도 다 내 책임’인 것이다. 요즘 금융회사 CEO들이 당하는 수난사는 이러한 무한책임에 가까운 ‘선관의무’와 ‘사법적 판단’ 사이에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 책임을 물을 것인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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