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도 가정도 기업도 국가도 모두 꿈꾸고 바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평화입니다. 경전 중의 경전 ‘주역’에서 평화에 해당되는 괘를 찾자면 64괘 중 11번째인 지천태(地天泰)입니다. 지천태의 괘는 그야말로 만사태평이고, 모든 게 잘 돌아가고, 편안하고 형통한 상태를 가르킵니다.
그런데 이 지천태 괘의 모양을 보면 우리 상식과는 다릅니다. 하늘과 땅, 양과 음이 뒤바뀌어 있습니다. 위에 있어야 할 하늘(양)이 아래에 있고 아래에 있어야 할 땅(음)이 위에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어 있는 게 태평성대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지천태와 정반대의 괘가 12번째인 천지비(天地否)인데 이 괘는 하늘(양)이 위에 있고, 땅(음)이 아래에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게 막히고 소통이 안되고 낭패를 보게 됩니다.
왜 하늘과 땅이, 음과 양이 뒤바뀌어 있어야 평화가 오고 평안한 세상이 될까요? 양은 원래 그 속성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고 음은 아래로 내려오는 성향입니다. 따라서 양이 아래에 있고 음이 위에 있으면 음양의 기운이 서로 맞닿아 교섭하기 때문에 만물이 형통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이 음과 양, 땅과 하늘의 소통입니다.
하늘은 군주 또는 리더이고, 땅은 신하 또는 대중이라고 하면 지천태의 괘는 지도자가 대중들 아래에 내려가 그들을 받들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가정도 기업도 나라도 화목할 수밖에 없고 평화가 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역’에서 지천태를 해설한 ‘효사’(爻辭)를 보면 더 깊은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상하가 잘 소통하는 좋은 시절을 만났다. 이렇게 되면 뜻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외면하고 숨어 지낼 수만은 없다. 뜻이 같은 동지들을 모아 같이 나가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지천태 괘의 두 번째 효사에는 이런 내용도 나옵니다. 이 괘의 핵심입니다. “황폐하게 된 것 또는 온갖 오욕(汚辱)을 포용하고 책임지며, 험하고 거센 물결이 몰아쳐도 과감하게 헤쳐 나아가며, 멀리 떠나있던 현명한 숨은 인재들을 찾아 쓰며, 주변의 붕당(朋黨)을 없애고 사적인 정(情)에 얽매이지 않는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진실로 중도(中道)의 통치를 구현하는 위대한 리더가 된다.”
9년간 KB금융을 이끈 윤종규 회장 후임으로 ‘준비된 CEO’ 양종희 회장이 취임했습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청년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국민과 함께 성장하는 KB금융’을 선언했습니다. 신임 양 회장은 “사회와 상생하는 금융, 품격 있고 신뢰받는 영업활동으로 고객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주는 금융그룹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양 회장은 “제도와 시스템을 현장 직원 중심으로 재설계하고 열심히 일한 직원들이 대우받는 기업문화를 만들겠다”고도 했습니다.
사회와 상생하고 고객을 최우선하고 직원들에게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것은 바로 하늘이 땅을 섬기는 지천태의 괘를 실천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KB금융과 양종희 회장의 앞날이 태평성대가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KB금융의 ‘평화’를 위협하는 난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리더는 없습니다. 전임 윤종규 회장은 ‘KB금융 사태’를 해결하고 건강한 조직을 복원함으로써 명실상부 1등 금융그룹을 만들었지만 ‘그늘’이 없지 않습니다. ‘아시아의 리딩금융그룹’을 내걸고 인수한 인도네시아 부코핀 은행에서 조 단위의 부실이 생겼습니다. 8조원 가까이 판매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에서도 거액의 원금손실이 예상돼 고객들과 갈등을 겪습니다. 과거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문제 없이 지나가 다른 은행들의 부러움을 샀던 KB금융이 이번에 가장 크게 물린 것은 뼈아픈 대목입니다.
이제 양종희 회장은 부코핀 은행의 거액 부실과 ‘ELS 사태’라는 황폐화되고 욕된 것들을 포용하고, 책임지고 해결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섬기겠다고 한 고객들과 직원들은 물론 주주 및 감독 당국과도 지혜롭게 잘 조율해야 합니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전임자들을 탓하지 않는 것은 물론 당국의 압박같은 거센 물결도 헤치고 나가야 합니다.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붕당을 없애고 멀리 떠나있던 숨은 인재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모아야 합니다. 어떤 체제든 오래 하다 보면 한쪽으로 쏠리기 마련입니다. 곧 있을 인사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주역’ 지천태 괘의 세 번째 효사에는 태평스러운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기 때문에 누구든, 어느 조직이든 쇠락의 조짐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어쩌면 지금 KB금융과 양종희 회장이 이런 상황에 빠져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역’은 바로 이때 올바른 미래를 향해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라고 주문합니다. 진심으로 묻고 노력하면 허물이 사라지고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화위복이 되는 것이지요. KB금융과 양종희 신임 회장이 늘 평화롭기를 기도합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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