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122세에 사망한 잔 칼망의 종신 월급, 그리고 종신 보험

Numbers 2023. 12. 12. 07:59

허정수 전 KB금융지주 CFO

최근 송년모임에서 비즈니스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필요한 의사결정에 유익한 정보를 담은 귀한책(결정지능, 안재현 지음)을 선물로 받았다. ‘좋은 의사결정’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인용된 잔 칼망(Jeanne Calment)의 사망소식을 전하는 뉴욕타임즈 기사(1997.8.5)를 보면서 생명보험사의 종신상품이 문득 떠올랐다. 프랑스 남부 아를(Arles)의 한 요양원에서 122세로 사망한 당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아주 특별한 할머니 이야기에 나오는 ‘역모기지(Reverse Mortgage)’ 계약에 관한 내용이다.

잔 칼망은 90세 되던 1965년 본인이 살고 있던 아파트를 사망시 양도하는 조건으로 변호사인 라프레(Andre-Francois Raffray)와 매월 2500프랑(당시 미국달러 $500)을 받기로 계약을 했다. 이 계약 이후로도 칼망은 32년을 더 살았다. 1996년 77세로 1년 먼저 라플레 변호사가 죽을 때까지 칼망에게 아파트 시장가치의 두 배가 넘는 18만달러 이상을 지불했다. 라프레 사후에도 칼망이 살아 있는 동안 미망인이 매월 돈을 지불하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아파트를 매개로 ‘사적계약’을 통해 ‘종신연금’으로 현금흐름을 만들어 노년의 경제적 어려움을 피해간 것이다. 통상적인 기대여명을 생각하고 내린 라프레의 의사결정이 과연 나쁜 결정일까? 칼망의 선택은 좋은 의사결정일까?

 

출처=게티이미지뱅크.

 

금융상품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객(시장), 판매인과 금융회사(공급자), 그리고 규제당국의 입장을 동시에 살펴봐야 한다. 고객은 지불한 비용 대비 경제적 효익이 중요하다. 판매인은 수수료와 수당 등 판매보수가 활동 원동력이다. 금융회사는 상품 수익성과 지속가능 경영을 위한 리스크 통제여부가 중요하다. 감독당국은 경제주체들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율하고 작동시켜 산업발전을 이뤄내는 것이 핵심 역할이다. 고객이 좋아하고 판매인은 돈도 되면서 팔기 수월하며, 감독당국 규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회사의 수익과 리스크가 균형 잡힌 상품구조를 찾아가는 것이 좋은 상품을 개발하는 과정이다.

최근들어 생명보험시장에서 저해지환급형 ‘단기납종신보험’에 대한 여러 논란이 끊임 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슈는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는 ‘순수보장성’ 상품인 종신보험을 저축보험으로 속여서 ‘불완전 판매’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보험사들이 수익과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상품설계로 회사 장기성장과 산업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것이다.

 

사실 보험업계에서 늘 반복되어온 일상과도 같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이슈이다. 2023년 7월 감독당국이 단기납종신보험의 저축성 오인 상품구조를 변경하고 높은 단기 환급율을 내세우는 마케팅을 자제하도록 강하게 요구한 바 있다. 조만간 단기납종신보험 뿐만 아니라 종신보험 전체에 대한 모니터링과 조사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것일까? 혼란을 부르는 수많은 사유가 있지만 종신보험에 대한 감독규정의 개념정의가 현실을 담아내기에 부족하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보험사고 발생시 받는 보험금은 ‘사망보험금’과 ‘생존보험금’으로 나뉜다. 생존보험금이 포함된 상품은 ‘순수보장성’이 아니다. 감독규정은 종신보험을 순수보장성으로 분류한다. 종신보험은 보험사고 발생시에 ‘사망보험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도해지시에는 해약환급금을 돌려 받는 상품이다. 문제는 이 해약환급금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원금보다 많아지는 구간이 발생하는 데서 비롯된다. 가입기간에 따라 중도해지시 돌려 받는 해지환급금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현행 규정상 ‘생존보험금’이 기납부 보험료 ‘원금’보다 많으면 저축성, 적으면 보장성으로 분류한다. 종신보험의 성격이 보장성과 저축성 성격을 동시에 지닌 모호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보장성과 저축성은 상품 판매시점에 정의해야 한다. 사업비 부과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보험사 입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회사는 가급적 보장성으로 분류되는 상품을 출시하려고 한다. 그만큼 감독당국에서 인정하는 사업비 부과 여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종신보험은 해지환급금이 원금의 100%를 넘어도 순수보장성으로 감독당국이 예외 인정을 하고 있다. 종신보험 판매가 어렵기 때문에 사업비를 높여서 판매수수료를 지급할 충분한 재원을 마련해준다는 명분이다. 생명보험사들이 종신보험 판매에 목을 매는 이유이기도 하다.

순수보장성을 저축으로 속여서 판매한다는 지적은 종신보험 상품에 내재된 저축성격을 무시한 적절하지 못한 지적이다. 보장과 저축 기능을 모두 가진 상품인데 대고객 소구력이 높은 점을 중점 소개한 것을 잘못했다고 할 수만은 없다. 다만, 고객이 싫어할 요인을 의도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영업관행과 판매인들의 행태는 매우 잘못된 영업자세이다.

 

불완전판매는 고객이 상품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행위이다. 그렇지만 종신보험은 가입기간에 따라 해지환급금이 바뀌고, 납입기간 이후 해지환급금으로 연금 전환이나 목돈 활용 등 다양한 저축성 기능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종신보험의 실질적 성격이 순수보장성인지 저축성이 가미된 혼합형인지 상당히 모호해지는 지점이다.

만일 종신보험의 ‘사망보험금’이 ‘납입원금’ 보다 적다면 아무도 가입하지 않을 것이다. 최종 계약종료(사망) 시점에서 종신보험의 해약환급금(사망보험금)은 납입원금 보다 많아야 상품이 팔린다는 뜻이다. 더구나 인플레이션을 감안해야 하는 장기보험은 물가상승 보상분을 추가로 더 얹어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종신보험은 태생적으로 저축성 성격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 일본 등 보험 선진국에서는 종신보험을 양로보험 성격으로 받아들이고 저축보험으로 분류한다.

만일 회사가 종신보험 상품개발시 최종연령을 100세로 설정했는데 ‘잔 칼망’처럼 120세까지 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100세에 이미 ‘책임준비금’ 적립액이 사망보험금에 도달하여 더 이상 준비금은 증가하지 않는다. 따라서 고객 입장에서는 보험금을 미리 받기를 원하지만 회사는 보험사고(사망)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급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종신보험은 보험가입자 수명이 길어질수록 보험사에는 좋다. 내 주어야 할 보험금을 계속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보험가입자는 납입한 보험료를 사망시까지 묻어두어야 한다. 살아 생전 본인의 경제생활에 당장 활용할 수 없다. 생명보험시장 성장을 견인해온 종신보험이 지속적으로 위축된 주요 이유중의 하나이다.

보험금 담보대출, 조기인출, 건강특약(입원, 수술 등) 등 보험가입자 불편 해소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신보험을 찾은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저해지환급형 종신보험은 해지환급금을 줄이는 대신 보험료를 싸게 해서 판매대상 고객층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이다. 2015년 ING생명이 보험료 부담을 25% 이상 감축시킨 ‘저해지환급형’ 종신보험을 처음으로 출시했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단기납종신보험 증가로 소비자, 판매인, 보험사, 감독당국 중 소비자와 판매인은 행복해 할지 모르지만 보험사와 감독당국은 마냥 좋아만 할 수 없을 것 같다.

시장과 고객을 이기는 회사와 판매인은 없다. 소비자들 니즈에 맞춘 다양한 종신상품개발이 이루어지려면 현재의 3이원(예정이율, 예정손해율, 예정사업비) 방식 가격산출체계에 ‘예정해지율’을 포함한 4이원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보험료 산출시에 해지환급금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기 집행한 신계약비를 확보하기 위하여 조기 해약시 이를 차감하는 개념으로 해지환급금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해지율 시나리오에 따라 다양한 보험료 상품이 출시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좋은 의사결정’은 직관(Intuition)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분명히 이해한 상태에서 내리는 ‘통찰’(Insight)에 기반한 결정이라고 한다. 운 좋게 얻은 한번의 ‘좋은 결과’보다 ‘좋은 의사결정’이 더 중요하다. ‘좋은 의사결정’을 반복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 종신보험 관련 반복되는 이슈들이 개선될 수 있는 ‘통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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