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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통' 정철동 사장, LG디스플레이서 ‘애플 신화’ 재현할까

Numbers 2023. 12. 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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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과 중국 광저우 LG디스플레이 공장 전경. (사진=LG디스플레이)


정철동 LG이노텍 사장이 LG디스플레이의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회사를 이끌게 됐다. 정 사장은 생산기술 전문가로 LG이노텍에서는 우량 고객사 애플과 협력관계를 확대해 실적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성과를 냈다. 정 사장은 애플과의 협력 등 기업간거래(B2B) 사업에서 쌓은 높은 이해도에 더해 생산기술 분야 전문성을 살려 장기 부진에 처한 LG디스플레이를 정상화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LG 부품 사업 '생산' 전문가…OLED 생산라인 구축 활약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 주요 약력. (자료=LG디스플레이)

 

정 사장은 이달 1일 임직원에게 보낸 취임 메시지에서 "사업 전반의 원가 혁신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품질·가격·납기 등 기업경쟁력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부터 탄탄한 회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디스플레이 제조 기업의 CEO로서 가장 근원적인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지만, 생산 전문가의 면모를 드러냈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정 사장의 경력 대부분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공정 기술과 생산성 향상에 방점이 찍혀 있다. 액정표시장치(LCD) 장비와 부품을 국산화하는가 하면 회사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신규 생산라인 구축에도 참여했다.

1984년 LG반도체에 입사해 공정 기술을 개선하는 일에 주력했고, 잠시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를 거쳐 LG디스플레이의 전신인 LG필립스LCD로 2004년 돌아왔을 때 생산기술을 담당했다. 이때부터 생산기술 전문가로 이름을 알리며 2007년에는 철탑산업훈장을 받았고, 2009년에는 LCD 패널 운반용 로봇을 국산화하는 성과를 냈다.

정 사장은 2011년 전무로 승진하며 LG디스플레이에서 생산기술센터장과 최고생산책임자(CPO)를 겸했다. 생산성은 원가경쟁력과 품질에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LG디스플레이 같은 부품 기업에서 CPO는 중책으로 꼽힌다.

정 사장이 CPO를 지내던 시점에 LG디스플레이는 세계 첫 8세대 OLED 생산라인과 6세대 OLED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등 굵직한 투자를 단행했다. 정 사장은 CPO로서 LG디스플레이의 먹거리인 OELD 생산 기반을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2016년 사장으로 승진하며 LG화학 정보전자소재사업본부장으로 이동한 뒤에도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정 사장은 LG화학의 디스플레이용 유리기판 사업의 생산성 개선을 주도하며 수율을 업계 선두권 경쟁사인 코닝 등과 견주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신규 사업인 수처리필터를 조기에 안정화하며 사내에서 B2B 사업에 대한 경험과 통찰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8년 구광모 LG 회장 취임 이후 단행한 첫 임원 인사에서 정 사장은 LG이노텍의 CEO를 맡게 된다. 이때부터는 생산 분야 전문가를 넘어 소재·부품 전문경영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선택과 집중'으로 수익성이 저조한 사업을 정리하고, LG이노텍의 주력인 카메라 모듈과 미래 먹거리인 전장 부문을 강화하는 데 힘썼다. 2019년 중국 업체에 가격경쟁력과 점유율에 밀려 고전해 온 고밀도회로기판(HDI) 사업을 정리하고, 무선충전사업, 전자가격표시기(ESL) 사업에서도 철수했다. 이듬해에도 10년간 적자로 수익성이 부진한 발광다이오드(LED) 사업도 전장용 분야를 제외하고 접었다.

반면 LG이노텍의 주력인 카메라 모듈 사업은 성장 가속 페달을 밟았다. 정 사장 부임 이전부터 LG이노텍은 애플의 스마트폰인 '아이폰' 시리즈에 카메라 모듈을 공급하며 실적을 높이고 있었다. 정 사장은 LG디스플레이에서 경험한 애플과의 협력 관계, B2B 사업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LG이노텍의 카메라 모듈 사업을 한 단계 키워냈다. 고성능 트리플 카메라와 비행시간거리(ToF) 기반 3차원(3D) 센싱 모듈 등 고부가가치 제품 실적이 가파르게 올라갔다.

2019년 7조9754억원이었던 매출은 2021년 14조9456억원을 기록하며 2년 만에 두 배가 늘었다. 영업이익 역시 2021년 1조2642억원으로 1조원을 넘겼다. 정 사장은 2020년 LG이노텍의 성장 비전으로 2022년 매출 10조원, 2025년 영업이익 1조원, 2028년 영업이익률 10%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매출과 영업이익 목표치를 조기에 달성한 셈이다.


'수주형' 사업 키우는 LGD…B2B 전문가 정철동 적임자

 

정 사장은 생산기술 전문가라는 점에서 전임 정호영 사장에 앞서 LG디스플레이를 이끈 한상범 전 부회장에 가깝다. 정호영 사장은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 등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낸 '재무통'이라면, 한 전 부회장은 정 사장과 마찬가지로 LG반도체에서 공정기술개발, LG디스플레이에서 생산기술센터장을 지낸 '기술통'이다.

LG디스플레이가 다시 기술통 CEO를 맞게 된 이유로 회사가 최근 주력하는 수주형 사업 강화가 꼽힌다. LG디스플레이는 고객과 계약을 기반으로 생산량과 가격을 협상하는 수주형 사업 비중의 확대를 노리고 있다. 기존 대형 OLED 패널은 LG디스플레이가 고객 수요를 예상해 생산량을 정하고, 시장의 수급 상황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진 TV 시장 침체에 더불어 OLED TV의 성장 정체로 LG디스플레이의 대형 OLED 공장은 가동률을 절반 수준까지 낮추며 보릿고개를 지나고 있다.

LG디스플레이의 수주형 사업 분야는 OLED 패널을 활용한 중소형, 차량용 제품이다. 현재 전체 매출의 40% 수준인 수주형 사업 비중을 빠르게 70% 이상으로 높인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차별화된 기술력에 더해 전략적인 수주 활동이 받쳐줘야 한다. 수주한 물량의 적기 생산을 위한 생산성 향상도 필수적이다. 고객과의 협업과 생산성 향상 모두 정 사장이 과거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을 지나며 굵직한 성과를 냈던 분야다. 스마트폰을 포함한 중소형 OLED 사업에서는 정 사장이 애플과 협력한 경험을 살려 거래 확대를 추진할 수 있다. 차량용 디스플레이와 중소형 OLED에서는 생산효율을 극대화해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낸다.

정 사장의 첫 시험대는 흑자전환 여부가 될 전망이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3분기 6621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6개 분기를 연달아 적자를 보고 있다. 회사는 올해 4분기 분기 흑자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 사장 역시 취임 메시지에서 "실적 턴어라운드가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수주형 중소형 부문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투자도 급하다. LG디스플레이는 아직 정보기술(IT) 제품용 8세대 OLED 투자를 확정하지 못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중국 BOE는 이미 투자를 시작했다. 

이진솔 기자 jinsol@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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