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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맥주의 제주소주 인수는 신세계엘앤비 입장에서는 후련하기도 하지만 슬픈 일이기도 하다. 과연 만족스러운 거래였을지 시장의 의문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회사의 수익성을 고려하면 제주소주의 기업가치는 그간 투입된 자금 규모에 비해 현저히 낮게 책정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6년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당시 부회장)의 주도로 그룹에 편입된 제주소주는 부진을 거듭하며 ‘아픈 손가락’이 됐다. 이에 지난해 9월 취임한 송현석 신세계엘앤비 대표는 선택과 집중의 일환으로 과거 본인이 부사장까지 지냈던 오비맥주에 소주 사업을 처분했다.
12일 오비맥주에 따르면 신세계엘앤비는 오비맥주에 제주소주를 매각하기로 하고 이르면 연내 본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비맥주는 제주소주의 생산용지를 비롯해 기계설비, 지하수이용권 등을 넘겨받게 된다.
신세계엘앤비로서는 제주맥주 매각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적자를 지속하며 부채가 불어나는 만큼 사업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올해 6월 말 물적분할을 결정한 것도 결국 사업 매각 과정의 일환이었다.
아픈 손가락 제주소주
신세계그룹은 2016년 제주소주를 190억원에 사들였다. 인수 당시만 해도 애주가로 잘 알려진 정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데다, 이마트라는 거대 유통망이 있는 만큼 위협적인 플레이어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는 이를 뒷받침했다. 2016년부터 매년 유상증자로 100억원 이상씩 출자했다. 2020년까지 5년간 누적 투자액만 670억원에 달했다. 인수금액을 더하면 9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은 셈이다. 하지만 2020년 6월의 유상증자를 끝으로 이마트는 제주소주를 자회사인 신세계엘앤비로 이관했다.
이는 그룹의 의지와 달리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제주소주는 60억원(2017), 127억원(2018), 141억원(2019), 106억원(2020) 등 적자를 지속했다. 일반음식점 및 유흥 채널 깊숙이 뻗어 있는 주류전문 업체들의 영업 인프라가 신세계에 부족했던 것이 패인이었다. 이마트의 오프라인 유통 채널로는 결국 가정집 수요밖에 공략할 수 없었다.
그룹은 주류전문 유통사인 신세계엘앤비가 제주소주를 흡수합병해 시너지를 내는 쪽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이때까지도 제주소주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위스키 제조‘에 대한 정 회장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합병 직후 신세계엘앤비는 'W비즈니스'라는 전담팀을 꾸려 제주위스키, 탐라위스키 등 관련 상표 14개를 출원하는가 하면, 이듬해 4월과 6월에는 이사회를 열어 일반증류주와 증류식소주 제조 면허 취득을 결의하기도 했다.
후련하지만 웃을 순 없다
이 무렵 제주소주의 가치는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었다. 합병 당시 신세계엘앤비가 인식한 제주소주의 자산가치가 이미 취득원가 대비 대폭 쪼그라든 상태였기 때문이다. 2021년 제주소주가 보유한 자산의 장부가액은 136억원이다. 구체적으로 토지 16억원, 건물 63억원, 구축물 12억원, 기계장치 44억원 등이다. 이는 취득원가인 281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감가상각을 제외한 손상차손 금액만 74억원에 달했다.
제주소주를 보유하는 것이 실효성이 낮다는 사실은 신세계엘앤비의 감사보고서에서도 드러난다. 이에 따르면 신세계엘앤비는 77억원 상당의 제주소주 이월결손금을 떠안았지만, 향후 이 사업에서 소득이 발생할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해 연법인세자산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세금 상 기업이 합병 시 승계한 결손금을 미래 소득으로 메울 수 있다고 판단하면 자산으로 인식한다.
여기에다 그해 투자설명서에서 회사는 “제주소주는 '푸른밤' 등의 주류 제조와 판매업을 영위했으나 실적악화로 본 합병 이후 사업 철수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제주소주는 신세계엘앤비에 이관된 후에도 적자를 이어갔다. 총부채 역시 치솟으면서 전체 재무구조에 큰 부담이 됐다. 제주소주가 맡은 신세계엘앤비 제조사업부의 영업손실은 최근 3년간 꾸준히 늘어 지난해 말 21억원을 기록했다. 총부채 규모도 211억원에 달했다.
제주소주를 인수 8년 만에 매각한 신세계그룹이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다. 협상 과정에서 이러한 회사의 자산가치와 불투명한 수익성이 불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업계에서는 송현석 신세계엘앤비 대표가 인수 과정에서 연결고리가 됐을 것으로 본다. 송 대표는 2010년부터 신세계로 적을 옮긴 2018년까지 오비맥주 마케팅 총괄 부사장, 오비맥주 수입맥주사업부 대표, 오비맥주 마케팅 총괄 전무 등을 역임한 바 있다.
박재형 기자 jhpark@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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