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을 둘러싼 여러 이해 관계자의 복잡한 관계, 모략, 전략을 다룹니다.
HMM 인수 후보자 중 딜 완주 가능성을 두고 설왕설래가 가장 많은 기업은 LX인터내셔널이다.
보수적으로 자금을 관리하며 곳간을 넉넉히 채워왔던 LX그룹이 HMM을 인수하기 위해 무리해서 돈을 조달하겠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최근에는 LX그룹이 HMM 인수를 포기한다는 뒷말이 퍼진 가운데, 일각에서는 LX그룹이 실제로는 자금 조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상반된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HMM 인수를 둘러싸고 이른바 ‘쩐의 전쟁’이 본격화된 지금, LX인터내셔널은 밖으로는 여론을 살피는 한편 안으로는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추리는 등 셈법이 복잡한 것으로 짐작된다.
몸값 부담 불구 인수 동기 '뚜렷'
일찍이 업계에서는 LX인터내셔널의 HMM 인수전 완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왔다. LX인터내셔널의 현금 여력과 8조원 안팎에 달하는 HMM 인수가의 차이가 커 자칫 주객이 전도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LX인터내셔널은 민병일 전무가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선임된 2019년 이후 투자를 최소화하면서 현금흐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보수적인 재무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HMM 인수를 두고 내부 논의가 치열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LX인터내셔널의 ‘늦은 참전’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LX인터내셔널은 최근 들어서야 중견 회계법인인 삼덕회계법인을 자문사로 선정하고 실사 작업에 돌입했다. 이를 두고 HMM 인수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평이 나온다.
IB업계 관계자는 “LX인터내셔널은 해운업과 직접적인 접점이 없기 때문에 대형 회계법인의 조력을 받으며 실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번 자문사 선정 결과를 보더라도 LX인터내셔널의 HMM 인수 의지가 크지 않다는 추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최근에는 HMM 직원들 사이에 ‘LX인터내셔널이 가장 소극적’이라는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IB 업계에서 ‘LX그룹이 인수를 포기했다’는 뒷말이 퍼지면서 HMM 인수전은 하림지주와 동원산업의 각축전이 될 것으로 보였다.
반대로 딜에 직접 뛰어든 기업들 관계자의 전언은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M&A 실사 작업을 진행할 때 매도자 측과 매수인 측은 정보제공요청(RFI, Request for information) 과정을 거친다. 매수자 측이 기업 관련 정보를 달라고 요청하는 절차다. 인수 의지가 강한 기업들은 RFI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LX인터내셔널은 이 과정에서 인수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관측된다.
“LX그룹이 딜을 드롭하지 않고 실제로는 정말로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는 인수 후보자 측 핵심 인사의 전언에는 이같은 분위기가 담겨있다. 앞서 언급한 IB업계 관계자는 “처음에는 정보를 취합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수에 뛰어 들었다가 추후 사업 시너지 등 성장 가능성을 보고 오너가를 중심으로 인수를 적극 추진하는 경우가 있다”며 “LX인터내셔널이 HMM을 인수할 경우 그에 따른 수혜는 적지 않아 완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설득력이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LX그룹이 HMM을 인수하면 단숨에 재계 10위권으로 덩치를 키우는 동시에, 규모의 경제로 글로벌 물류 사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LX그룹이 HMM 인수에 총력을 기울일 만한 동기는 충분하다는 얘기다.
LG그룹 지원, 내부거래 그칠 가능성 커
LX인터내셔널이 HMM을 인수하려면 전방위로 자금을 끌어모아야 한다. IB업계에서는 LG그룹 차원의 자금 지원 가능성이 클 것이란 의견이 주를 이루지만, 쉽지 않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스스로 몸집을 불려야 하는 구본준 LX그룹 회장이 LG그룹의 도움을 받으면 계열 분리 명분이 약해진다는 이유다.
만약 LG그룹이 HMM 인수를 지원하기 위해 수조원 단위의 유증에 참여할 경우, LX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LX인터내셔널이 LG그룹에 넘어갈 가능성도 구본준 회장 입장에선 부담이다.
인적분할 전 LG그룹의 수혜를 받은 계열사는 LX하우시스가 유일하다는 점도 '지원 불가설'에 무게를 싣는다. 당시 LX하우시스는 신용등급에서 LG그룹의 유사시 지원가능성으로 ‘1노치(notch)’ 높은 등급을 받았다.
다만 내부 거래가 유지되는 선에서 LG그룹의 지원이 유지될 것이란 분석이다. LX인터내셔널 매출의 50%는 여전히 LG그룹에서 발생하고 있다. 주요 거래처로는 LG전자,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LG디스플레이 등이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3월 보고서를 통해 “인적분할 이후에도 그룹사 물량 통합 비딩을 통한 우수한 협상력과 운임 경쟁력, LG그룹과 시스템 통합 등 록인효과를 바탕으로 영업적 긴밀성을 유지하고 있다”며 “LG그룹과의 긴밀한 영업관계는 사업안정성을 지지해주는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LX그룹은 과거 LG계열의 상장 기업으로 △산업재·원자재 등의 무역사업 △해외자원개발사업 △프로젝트사업 △물류사업 등을 영위해왔다. 지난 2021년 5월 ㈜LG로부터 인적분할한 LX홀딩스를 중심으로 LX계열사 13개가 계열소속회사로 편입했다. 이후 2022년 6월 공정위 승인으로 LX그룹의 계열 분리가 마무리됐다.
계열 분리 당시 한국신용평가는 “대주주 간 지분정리로 실질적인 계열 분리가 완료된 이후에는 LX홀딩스 산하 계열사에 LG그룹의 유사시 지원가능성을 적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차입·유증에 그룹 전방위 지원 시 인수 가능성↑
LG그룹의 지원이 없더라도 차입과 유증, 나아가 그룹 차원의 지원이 이뤄진다면 HMM 인수가 아예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LX인터내셔널은 2022년까지 실적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으나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실적 변동성이 크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주력인 석탄 등 원자재 가격과 물류사업 관련 해운 운임 지수가 하락하면서 실적이 위축됐다. 이에 따라 EBITDA(에비타, 상각전 영업이익)가 4399억원으로 31.8% 감소하는 한편, 순차입금이 1조4000억원으로 51.6% 증가했다. 다만 신용등급 핵심 지표인 순차입금/EBITDA가 1.6배로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추가 차입은 무리가 없을 전망이다.
조단위 유상 증자도 유력한 카드다. LX인터내셔널은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발행 주식수를 전보다 두배까지 늘릴 수 있도록 정관을 바꿨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LX인터내셔널이 최대 2조7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다만 제3자 유증의 경우 최대주주인 LX홀딩스의 지분율이 희석될 수 있다는 위험이 뒤따른다.
그룹 차원의 지원도 유의미하다는 평가다. LX그룹의 현금성자산은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해 약 2조원 가량으로 계산된다. △지주사인 LX홀딩스, 2400억원 △LX인터내셔널, 1조2700억원 △LX하우시스, 2000억원 △LX세미콘, 2800억원 등이다.
자산 매각을 통한 자금 마련도 유력시된다. 이들 기업이 보유한 총 자산은 약 13조원으로 △LX홀딩스, 1조원 △LX인터내셔널, 8조4000억원 △LX하우시스, 2조5000억원 △LX세미콘, 1조2600억원 등이다.
LX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의 지분을 일부 매각하는 방안도 있지만 자금 조달 효과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LX하우시스, LX세미콘, LX엠엠에이, LX엠디아이 등 4개 기업의 총 장부가액은 8454억원 규모다.
업계는 LX인터내셔널의 자산 매각 가능성을 높게 본다. 앞서 LX인터내셔널은 2018년 여의도 트윈타워의 지분 일부를 매각해 1335억원을 확보한 데 이어, 2020년에는 북경타워 지분을 전부 팔아 3350억원을 마련했다. 올 상반기 보유하고 있는 토지와 건물의 장부가액은 각각 2352억원, 3621억원이다. 이중 물류부문 국내 영업설비로 사용하고 있는 토지와 건물은 총 2100억원 규모다.
올 상반기 기준 LX인터내셔널이 출자한 타법인은 총 51곳이다. 총 장부가액은 3조2000억원이다. 이중 국내 법인은 13곳, 해외 법인은 38곳이다. 지분 매각을 통해 현금 확보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은 장부가액 기준 △LX판토스(6800억원) △한국유리공업(6000억원) △인도네시아 GAM(4051억원) △인도네시아 GGL(2144억원) △인도네시아 BNE(1170억원) △중국 투자법인(1757억원) △홍콩 투자법인(1534억원) 등이다.
LX인터내셔널 측은 HMM 인수를 위한 자금 조달 방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조아라 기자 archo@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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