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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한화의 도약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글로벌 패권전쟁 시대 방산·조선 등 블루칩 보유불법·변칙 없이 3세 승계도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어로스페이스 증자 오너 지배구조 강화와 무관잇단 M&A·방산업 특성상 그룹 현금흐름 ‘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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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패권전쟁 시대 방산·조선 등 블루칩 보유
불법·변칙 없이 3세 승계도 사실상 마무리 단계
에어로스페이스 증자 오너 지배구조 강화와 무관
잇단 M&A·방산업 특성상 그룹 현금흐름 ‘빠듯’
당국 간섭말고 시장 맡겨야…‘K방산’ 失期 우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산총액 기준으로 삼성, SK, 현대차, LG, 포스코, 롯데에 이어 재계 서열 7위에 오른 한화그룹은 요즘 재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입니다. 석유화학과 태양광 사업 등에서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본격화된 세계 무역전쟁과 강대국 간 패권 전쟁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한화그룹 계열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오션입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우리 정부가 2027년 세계 4대 방산 국가로의 도약을 추진하는 가운데 ‘K방산’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부상했습니다. 2022년 인수한 대우조선해양이 그 전신인 한화오션은 글로벌 선박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특히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조선산업과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증권시장의 블루칩이 됐습니다.
2002년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인수에 성공한 한화생명(옛 대한생명)부터, 산업은행으로부터 한때 6조 원까지 갔던 대우조선을 2조 원에 인수한 한화오션, 여기에 2014년 삼성과의 빅딜을 통해 인수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전 삼성테크윈)까지, 한화그룹의 도약에는 성공적인 M&A가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최근 자본시장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기업 총수는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회장과 함께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 김동관 부회장입니다. 특히 승계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한 현대차그룹과 달리 한화그룹은 편법이나 불법, 변칙 없이 사실상 3세 승계가 끝났다는 점에서 부러움을 삽니다.
김동관 부회장을 비롯해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 등 3형제에 대한 승계 작업은 2001년 한화S&C 출범에서 시작돼 2012년 한화에너지 설립으로 이어집니다. 현재 한화에너지 지분은 김동관 부회장 50%,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부사장이 각각 25%씩 갖는 구조이고, 한화에너지는 그룹의 모회사 격인 ㈜한화 지분 22.16%를 갖습니다.
한화에너지는 지난해 공개매수를 통해 ㈜한화 지분을 14.9%까지 늘렸고, 고려아연이 보유한 ㈜한화 지분 7.25%까지 인수해 ㈜한화 지분을 22.16%까지 확대했습니다. 여기에 기존에 김동관 부회장이 보유한 4.91%, 김동원 사장 2.14%, 김동선 부사장 2.14%까지 합치면 3형제 전체의 ㈜한화 지분은 31.62%나 됩니다. 이는 김승연 회장이 갖는 ㈜한화 지분 22.65%보다 8.97%포인트 더 많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3형제 지분 합계가 김승연 회장 지분을 초과해 한화의 3세 승계가 사실상 큰 틀에서 끝났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한화그룹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신용과 의리’입니다. 2011년부터는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도전·헌신·정도’로 사훈을 바꿨지만, 신용과 의리는 지금도 한화그룹의 핵심 가치입니다. 그래서인지 한화그룹은 어느 기업보다 조직에 대한 직원들의 로열티가 강합니다. 정부나 정치권 등과의 관계도 원만합니다. 단적으로 전임 윤석열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들과 해외 순방을 가거나 모임이 있으면, 나이가 가장 젊기도 했던 한화 김동관 부회장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는 후문입니다.
요즘 잘나가는 한화그룹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룹의 주축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와 관련해 논란이 많습니다. 자칫하면 3조 6000억 원 유상증자가 무산될 지경입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달 20일 해외 방위산업 시장 진출과 글로벌 방산·조선해양·우주항공의 톱 플레이어로 도약하기 위해 3조 6000억 원의 유상증자를 발표했습니다. 한화는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을 시설자금 1조 2000억 원, 해외 방산 생산능력 구축 1조 원, 해외 방산 조인트벤처 지분투자 6000억 원, 호주 조선사 오스탈(Austal) 등 해외 조선업체 지분투자 8000억 원 등에 사용할 계획입니다.
이 같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 계획에 대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경제 불확실성 속에 투자 결정을 한 만큼 엄청나게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감원도 “회사가 계획한 일정에 따라 신속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심사 역량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유상증자 발표 직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가 급락했고, 특히 유상증자 발표 1주일 전에 1조 3000억 원을 들여 한화에너지와 그 자회사인 한화임팩트가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 7.3%를 인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장에서는 그룹 내부의 지분 정리와 오너 지배구조 강화에 보유 현금을 사용하고는, 주주들에게 손을 벌린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한화그룹은 이 같은 시장과 주주·투자자들의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김승연 회장이 보유한 그룹 지주사 ㈜한화 지분 22.65% 중 절반에 해당하는 11.32%를 김동관 부회장 4.86%,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부사장에 각 3.23%를 증여한다고 공시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시장 일각에서는 심지어 한화에너지와 그 자회사 한화임팩트가 한화오션 지분을 매각해 확보한 1조 3000억 원을 배당 등으로 김동관 부회장 등 3형제에게 지급하고, 3형제는 이를 증여세 납부 등에 활용할 것이라는 ‘소설 같은 얘기’까지 나옵니다.
자본시장에서 주주와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자, 금감원도 입장을 바꿨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금감원은 특히 증자를 전후로 계열사 지분 구조를 개편한 배경과 증자와의 연관성, 지배구조 재편이 회사에 미치는 영향 등을 다시 정리해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금감원은 지난해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의 유상증자와 두산그룹의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합병에 제동을 걸어 무산시킨 전례도 있어, 한화로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까지 나서 한덕수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한 상법 개정안과 연결 지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와 김승연 회장의 지분 증여를 문제 삼았습니다.
자본시장 일각의 비판과 금융당국의 우려처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는 한화그룹의 승계와 3형제의 지배구조 강화를 위한 것일까요.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처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가 소액·일반 주주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걸까요.
우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는 3형제 승계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습니다. 앞서 본 대로 한화그룹의 승계는 김동관·김동원·김동선 3형제가 직간접으로 보유한 ㈜한화 지분 합계가 김승연 회장 지분을 넘어선 지난해에 이미 큰 틀에서 끝났습니다. 따라서 김승연 회장이 보유한 ㈜한화 지분 22.65%를 급히 물려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장에서 자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를 승계와 연결시키니, ‘정면 돌파’를 택해 김 회장 지분을 3형제에게 물려준 것입니다.
한화그룹은 3형제에 대한 지분 승계는 물론, 경영 측면에서도 이미 3~4년 전부터 김동관 부회장은 방산·조선·에너지, 김동원 사장은 금융, 김동선 부사장은 유통과 정밀기계 계열사를 맡아 독립적으로 경영하고 있습니다. 3형제는 산하 계열사 임원 인사까지 자율적으로 합니다.
두산그룹의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에서는 영업이익만 1조 원 가까이 내는 그룹의 ‘캐시카우’ 밥캣 주식 1주를, 영업이익 200억 원대에 불과한 두산로보틱스 주식 0.6주와 바꾸는 구조였기 때문에 주주들의 불만이 컸습니다. 하지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특별히 손해 보는 주주가 없습니다. 유상증자 발표 직후 급락했던 주가는 3형제에 대한 김승연 회장의 ㈜한화 지분 증여, 한화에너지와 ㈜한화의 합병 계획이 없다는 발표, 1조 원에 육박하는 ㈜한화의 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100% 참여 등이 공시되면서 대부분 회복됐습니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습니다. 왜 한화그룹은 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 공시 1주일 전에, 1조 3000억 원의 한화오션 지분을 한화에너지와 그 자회사 한화임팩트로부터 매입했을까요. 그 이유는 2022년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서는 2조 원이 필요했는데, 에어로스페이스와 그 자회사 한화시스템은 돈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한화에너지와 그 자회사 한화임팩트를 동원했고, 2년의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이번에 계열사끼리 정산을 하게 된 것입니다.
원래 계약대로라면 지난해 말에 한화오션 지분을 사와야 했지만, 에어로스페이스의 재무제표 관리를 위해 최근에야 실행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방산업체인 에어로스페이스 입장에서는 록히드마틴이나 라인메탈 등 글로벌 방산업체와 경쟁하기 위해 부채비율 등 재무제표와 신용등급 관리가 필수입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거액 유상증자는 전반적으로 빠듯한 한화그룹의 자금 사정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화그룹의 캐시카우는 석유화학이었는데, 요즘 업황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룹 내에서 가장 잘나가는 에어로스페이스는 그 수요자가 개인이 아닌 국가이고, 무역금융이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방위산업의 특성상 현금흐름이 원활하지 못합니다. 수주를 해도 계약금이나 중도금이 바로 들어오지 않고, 최종 납품을 해야 돈이 들어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매출채권(외상매출)이 2024년 말 기준 8조 6091억 원으로, 2023년 말의 2조 1115억 원이나 2022년 말의 1조 4762억 원에 비해 아주 크게 늘어난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한화그룹의 또 다른 블루칩인 한화오션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3~4년 치 일감을 확보해 뒀지만, 내년에 가야 누적 결손이 해소됩니다. 2022년의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최근에는 아워홈 인수까지 추진 중인 것도 그룹 자금 사정 측면에서는 다소 부담입니다.
기업의 지급능력 또는 신용능력을 측정하는 지표로 ‘유동비율’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량 기업이라면 유동비율이 200%를 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화그룹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화만 100%를 넘고, 나머지 기업들은 대부분 100% 이하입니다. 에어로스페이스 89.6%를 비롯해 한화에너지 61.5%, 한화시스템 85.4%, 한화솔루션 93% 등입니다.
이처럼 그룹의 자금 사정은 전반적으로 빠듯하지만, 에어로스페이스는 글로벌 특수를 맞아 대단히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한화 스스로 밝혔듯이 이번에 증자하는 3조 6000억 원 외에도 향후 3~4년 내 11조 원 정도를 투자해야 합니다. 나머지 7조 4000억 원은 금융기관 차입이나 영업 이익 등으로 충당할 계획입니다. 요즘 무기 수요가 급증하는 유럽 시장에 진출하려면, 호주나 이집트·폴란드가 그랬던 것처럼 현지에 조립공장이라도 세워야 하고, 그만큼 선투자가 필요합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에 있어서는 우방이 적보다 나쁘다”며 동맹국들에 대해서도 무차별 관세 폭탄을 퍼붓습니다. 그동안 수출의 선봉에 섰던 자동차와 반도체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 같은 상호 관세를 통한 무역전쟁과, 무력까지 동원해 전쟁을 불사하는 패권 전쟁의 시대에 총아로 떠오른 산업이 방위산업이고 조선업입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오션은 대한민국의 대표 주자입니다. 금감원이 어설픈 논리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에 제동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에어로스페이스의 대주주인 ㈜한화가 참여하는 1조 원 증자를 빼면, 실제 시장에서 조달하는 금액은 2조 6000억 원에 불과합니다.
자본시장법은 증권신고서의 중요 사항이 거짓으로 기재되거나, 누락되거나, 불분명한 경우 등에 한해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도록 규정합니다. 아울러 증권신고서는 말 그대로 ‘신고’하는 것이지, 금감원이 승인하거나 허가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명심해야 합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3조 6000억 원 유상증자에 대한 금감원 심사는 최소화하고 시장에 맡기는 게 정답입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증자에는 특별한 의혹이 없습니다. 금감원이 실기(失期)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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