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식 LF 부회장은 구본걸 회장의 남자로 불린다. 2012년 대표이사로 선임된 후 12년째 회사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2021년 공동대표였던 구 회장이 사임할 당시엔 경영 총괄을 이어받으며 급변하는 소비 트렌드와 그에 따른 패션업계의 세대교체 태풍 속에서도 입지를 더욱 굳혔다. 'LG패션'에서 'LF'로 사명 변경 10주년을 맞은 올해 오 부회장은 LF를 패션기업에서 의식주를 아우르는 종합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오 부회장은 CFO(최고재무책임자) 출신으로 재무전략가다. 서강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 후 1982년 반도상사(현 LX인터내셔널) 심사과에 입사해 범LG가에 발을 들였다. 이후 뉴욕지사, 금융팀, 경영기획팀장 상무, IT사업부장 등 전략, 금융 및 관리 부서를 두루 거친 오 부회장은 2005년부터 2011년까지 LG상사(현 LX인터내셔널) 경영지원실장, LG패션(현 LF) CFO 부사장, LG패션 개발지원부문장 등을 역임하며 구 회장의 신임을 확고히 했다.
2012년 LF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오 부회장은 공동대표 체제 속에서 구 회장과 호흡을 본격화했다. 재무전략가답게 공격적인 M&A(인수합병) 행보를 자랑했다. 2015년부터 식품, 유통, 방송, 부동산 등 분야를 망라하고 M&A를 주도한 오 부회장은 구 회장과 함께 5년간 10건의 M&A를 추진하며 패션업계 ‘큰손’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2014년 LG패션에서 미래생활문화기업을 뜻하는 LF(라이프 인 퓨처)로의 사명 변경과 함께 구 회장이 주문한 포트폴리오 다각화 전략에 부흥한 것이다.
인수 기업은 2015년 동아TV와 온라인 기업 트라이씨클을 시작으로 이듬해 주류유통업체 인덜지, 2017년 식자재 유통업체 모노링크와 구르메F&B코리아, 2019년 귀금속제조업체 이에르로르코리아 등이다. 특히 2~300억원대에 주로 집중됐던 이전 인수합병과 달리 2018년 1898억원을 투자한 금융·부동산업체 코람코자산신탁 인수 건의 경우 구 회장과 오 부회장의 체질 개선 작업에 정점을 찍은 사례다. 적극적으로 사업 반경을 넓힌 결과 LF는 종합 생활문화기업으로 도약했다. 2013년 말 기준 비 패션사업 비중이 전체 매출에서 2%에 그쳤다면 2022년 말에는 26%에 육박했다. 동시에 2013년 당시 21개였던 계열회사는 지난해 3분기 기준 50개까지 늘었다.
M&A가 한창이던 2010년대 오 부회장은 재무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회사의 매출을 견인했다. 연결기준 LF의 부채비율을 살펴보면 2016년 50.3%, 2017년 44.5%, 2018년 39.5%, 2019년 73.7% 등 100% 이내에 머물렀다. 2022년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는 30%를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2013년 연결기준 1조 4861억원이던 매출은 M&A를 거친 2017년 1조 6000억원을 돌파했고, 이후 2019년 1조8517억원으로 늘었다. 2023년 매출은 1조92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으며 올해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LF는 올해 연 매출 2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목할 점은 이 기간 패션사업부와 비 패션사업부(식품, 부동산금융 등)의 성장세가 대비된다는 점이다. 회사의 연결기준 매출이 증가할 동안 본연의 패션업 실적을 나타내는 별도기준 매출은 답보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LF의 2013년부터 2019년까지 해당 매출은 1조3000억~1조4000억원대를 기록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1조1000억~1조2000억원대로 오히려 줄었다.
결과적으로 오 부회장은 다각화한 영역을 발판 삼아 매출 증대라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셈이다. 그간 오 부회장의 경영 성적표가 패션 외 신사업 분야에서 보다 두각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업계 한 관계자는 “패션 부문과 달리 식품, 금융 등 신사업 분야의 매출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며 “이는 10년 넘는 재임 기간 동안 오 부회장이 LF를 패션기업에서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데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오 부회장이 패션 사업에서 소극적인 전략을 취한 건 아니다. M&A 이력만큼이나 오 부회장의 도전적인 자세는 패션 분야에서도 일관되게 엿보인다. LF의 색채를 완전히 탈피하며 독립 스트리트 브랜드로 우뚝 선 ‘던스트’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9년 사내 벤처 브랜드로 탄생한 던스트는 설립 단계부터 기획, 사업, 모든 과정이 LF 임원은 물론 오 부회장의 결재 없이 진행됐다. 오 부회장의 주문이었다.
오 부회장은 20년 이상을 패션업에 몸담아 온 리더다. 그만큼 트렌드를 읽는 시각은 누구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다. 당시 패션 산업의 정체가 지속된 가운데 닥스, 헤지스 등 중년층에 집중된 브랜드 구조는 오 부회장에게 또 다른 과제였다. 결국 이를 타파하고 젊은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선 ‘자율’과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브랜드 혁신이 필요하다는 오 부회장의 판단이 던스트 탄생으로 이어졌다.
던스트는 패션 대기업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조직 운영 방식을 통해 새로운 성공 사례로 남았다. 매년 10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론칭 2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2021년엔 LF의 자회사 '씨티닷츠' 통해 독립했다. 오 부회장은 당시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제2, 제3의 던스트를 탄생시키겠다"고 말한 바 있다.
오 부회장은 오는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다만 4번째 연임 여부를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2분기 패션 및 부동산 업황 부진에 따라 LF가 적자 전환했고, 3분기 연결기준 누적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91% 하락한 119억원을 기록하는 등 엔데믹 이후 좀처럼 실적 회복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오 부회장이 구 회장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고, 지난해 9월 LF 신규투자팀에 입사한 구 회장의 장남 구성모 매니저가 경영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오 부회장의 입지는 아직 건재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범LG가 계열은 주로 쇄신보단 안정적인 걸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며 “LF의 실적이 주춤하긴 하지만 기업의 경영 문제가 아닌 업계 상황이 전반적으로 어려운 탓이기 때문에 오 부회장의 입지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재형 기자 jhpark@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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