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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 법정 공방 닮은 꼴 'SM경영권 분쟁'...승패 가른 쟁점은?

Numbers_ 2024. 3. 14. 12:32
자본시장 사건파일

 

 

(사진=박선우 기자. 게티이미지뱅크·SM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한미약품그룹 창업주의 장남 임종윤·차남 임종훈 형제가 한미사이언스를 상대로 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경영권 분쟁이 법정으로 옮겨갔다.

앞서 지난 1월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은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와 OCI홀딩스의 지분 맞교환을 통한 통합 계약을 맺었다. 이에 반발한 임씨 형제 측은 통합을 위한 한미사이언스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막아달라는 취지의 가처분을 신청했다. 해당 유상증자는 경영상 목적이 아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이번 가처분 신청은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경영권 분쟁'과 비슷하다. 당시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SM이 카카오를 상대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하자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 전 총괄은 "SM은 경영상 필요가 없는데도 신주 발행 등을 결정했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임씨 형제 측 가처분 신청에서도 다툴 것으로 보이는 '경영상 목적'은 어떻게 판단된 걸까. 이 전 총괄 사례를 통해 알아봤다.

 

SM, 카카오에 신주 배정...이수만, 법적 대응 "경영상 필요 없어" 

 

SM과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얼라인)은 지난해 1월 공동합의사항을 발표했다. 여기엔 △얼라인 측이 SM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SM 이사회와 협력하고 △SM이 멀티 프로듀싱 체제로 전환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멀티 프로듀싱 체제로 바뀐다는 건 이수만 전 총괄이 운영하는 라이크기획에 의한 단독 프로듀싱 체제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였다. 비슷한 시기 SM은 해당 계획을 포함한 사업 전략 'SM 3.0'을 발표하기도 했다.

(사진=이 사건 결정문 일부)


이어 SM 이사회는 SM 주주가 아닌 카카오에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신주와 전환사채를 배정·발행하기로 의결하며 이 전 총괄과 대립각을 세웠다.

당시 SM의 최대주주는 이수만 전 총괄(지분율 18.45%)이었다. 만약 이사회 결정대로 진행된다면, 카카오가 2대 주주 지위에 오르며 이 전 총괄의 지분율은 16.78%로 떨어질 상황이었다.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주장. (사진=이 사건 결정문 일부)


이 전 총괄은 "SM의 신주·전환사채 발행을 금지해달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는 상법과 SM 정관이 정하고 있는 사유, 즉 '긴급한 자금 조달 및 사업 확장, 전략적 제휴 등을 포함한 경영상 필요'가 없는데 SM이 카카오에 신주 및 전환사채를 발행할 것을 의결했다고 주장했다.  

상법은 "주주는 그가 가진 주식 수에 따라 신주의 배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제418조 제1항). 주주가 아닌 자에게 신주를 배정하려면 '회사의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신기술의 도입, 재무구조의 개선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여야 한다(제418조 제2항). 제3자에게 전환사채를 발행할 때도 위 규정을 준용한다(제513조 제3항).

이는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취지다. 지난 2009년 대법원은 "회사의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정관이 정한 사유가 없는데도 경영진의 경영권이나 지배권 방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하는 것은 상법을 위반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2008다50776).

 

SM "사업 비용 필요"...재판부 "긴급히 자금 조달할 상황 아냐"

(사진=이 사건 결정문 일부)


재판부는 SM이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 등을 배제하고 카카오에 신주 및 전환사채를 배정·발행할 필요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SM이 신주 발행 등으로 약 2172억원 규모의 자금을 긴급히 조달해야 할 상황이었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SM이) 이 사건 신주 및 전환사채 배정·발행을 의결할 무렵, SM은 충분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 등을 보유하고 있었고 급하게 갚아야 할 채무가 없었다"고 했다.

SM은 지난 2022년 9월 30일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 약 690억원, 금융기관 예치금 약 1208억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금융기관 차입금은 없었고, 2022년 기준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이 약 757억원에 이르렀다.

SM은 "새롭게 추진할 'SM 3.0' 사업 전략의 실현을 위해 카카오와의 전략적 제휴가 필수적이었고 사업 비용으로 최소 6000억원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진=이 사건 결정문 일부)


SM의 사업 전략은 △상당 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이고 △수립 단계에 불과한 상태에서 위와 같은 금액이 당장 필요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SM이 그 주주가 아닌 카카오에 직접 상당한 규모의 이 사건 신주 및 전환사채를 배정·발행해 기존 주주들의 보유 주식 가치 하락이나 지배권 약화 등의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거나 불이익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다른 방안들을 구체적이고 신중하게 검토했다고 볼만한 객관적인 자료를 찾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SM은 신주 및 전환사채 배정·발행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이 전 총괄을 포함한 기존 주주들에게 이를 알리거나 그 의견을 수렴한 적도 없었다.

재판부는 "결국 SM이 카카오와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고 'SM 3.0'이라는 새로운 사업 전략 추진을 위한 긴급한 자금 조달을 위해서 기존 주주들의 회사에 대한 지배력에 영향을 끼칠 우려가 큰 제3자 배정 방식의 이 사건 신주 및 전환사채를 배정·발행하기로 한 것이 그 무렵 불가피한 의사결정이었다고 보기에 충분한 소명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수만 지배력 약화하려는 목적"...법원, 가처분 인용


그렇다면 재판부는 SM이 카카오를 대상으로 신주 발행 등을 결정한 목적을 무엇이라고 판단했을까.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 사건 신주 및 전환사채 배정·발행 의결은 SM에 대한 경영권 귀속과 관련해 분쟁 가능성이 임박한 상태에서 이를 현실화한 행위"라며 "카카오의 SM에 대한 지분을 늘려 최대주주인 이수만의 SM에 대한 지배력을 약화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고 했다.

이 전 총괄은 SM의 창업자이자 최대주주로서 SM의 경영권에 미치는 영향력이 컸다. 하지만 그의 지분율에 비춰보면 대주주들의 연합이나 그에 대한 소수주주들의 지지 여부에 따라 SM의 경영권이나 지배권에 변동이 발생할 수 있었다. 또한 얼라인 측이 SM의 경영권이나 사업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었다.

(사진=이 사건 결정문 일부)


그런 와중에 이 전 총괄을 포함한 기존 주주에게 알리지 않고 기존 주주의 SM에 대한 지배력에 영향을 미치는 상당한 규모로 신주 발행 등을 의결한 것은 'SM의 경영권 귀속에 관한 분쟁을 현실화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또한 △SM이 카카오를 대상으로 발행할 신주의 규모(123만주)는 SM의 정관 개정 없이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추가 발행할 수 있는 신주의 최대 규모(125만 1214주)에 근접한 점 △카카오는 SM이 추가로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신주 등을 발행할 경우 이를 우선적으로 인수할 권리까지 확보한 점도 재판부의 판단 근거가 됐다.

(사진=이 사건 결정문 일부)


이러한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서울동부지법 민사합의21부(김유성 부장판사)는 지난해 3월 "(SM이 의결한 대로) 신주·전환사채가 발행될 경우 이 전 총괄이 SM 주주로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을 우려가 있어 보인다"며 이 전 총괄의 손을 들어줬다.

박선우 기자 closely@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