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우 1980년대까지 M&A(인수합병)를 통한 벤처기업 투자금 회수가 20%를 차지했다. IPO(기업공개)를 통한 회수가 80%였다. 현재 한국의 모습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1990년대 초부터 점차적으로 M&A를 통한 회수 비중이 높아졌다. 지금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오픈이노베이션이 확산되면서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사파이어홀에서 열린 ‘기업형벤처캐피탈(CVC) 투자활성화를 위한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행사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주관, 더불어민주당 홍정민·이재정·김한정 국회의원이 주최했다.
박용린 선임연구위원이 회수 시장에서의 CVC 역할을 강조한 건, 아직 국내선 CVC가 투자 활동을 하는 데만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 CVC 수 자체가 해외보다 적지만, 국내 벤처투자의 30% 이상을 CVC가 차지하고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시장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라면서 “다만 벤처생태계에서 CVC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M&A를 통한 회수 비중에 있는데, 아직 그런 효과는 제한적이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전략적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오픈이노베이션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연결된다. 오픈이노베이션은 기업이 외부로부터 지식이나 아이디어 등을 얻어 내부 자원과 결합해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 등을 만들어 내는 전략을 말한다. 이를 위해 많은 기업들이 CVC를 만들어 관련 외부 기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강신형 충남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의 오픈이노베이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CVC는 단순 재무적 투자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면서 “대기업의 전략 목표와 스타트업의 전략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CVC의 역할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둘 사이의 조정이 쉽지 않다. 강신형 교수는 “아무래도 힘의 차이 때문에 스타트업 입장에선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대기업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김용건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부대표도 “저희를 찾아오는 스타트업들을 보면 기술을 잘 개발해서 글로벌 대기업과 함께 하고 싶어하지 국내 대기업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면서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보는 이미지는 여전히 종속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이에 오픈이노베이션의 경우 민간 액셀러레이터나 벤처캐피탈(VC)에 맡기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사이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제대로 된 협업을 이끌어 내는 일을 민간에 맡기고, 이후 CVC가 이어받아 후속 투자를 함으로써 M&A 회수 시장 활성화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중견기업 CVC의 역할과 투자 활성화 필요성도 제기됐다. 전략적 투자 활동이 많은 대기업에 비해, 중견기업은 상대적으로 재무적 투자 활동에 머물러 있지만 스타트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아서다. 실제 동남권 제조업 중심 중견기업들이 뜻을 모아 설립한 VC도 있다. 라이트하우스인베스트먼트다.
노규승 현대자동차 제로원 팀장은 “스타트업의 경우 제조 역량 때문에 스케일업(규모 확대)을 못하기도 한다”면서 “제조 역량을 가진 좋은 중견기업 CVC들과 연결하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제언했다. 서성태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시장혁신과 과장은 “중견기업 경영자들은 자수성가한 이들이 많다”면서 “성공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노하우를 알고, 그걸 후배 기업인들에게 전수하려는 의지가 높아 실제 현장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황금빛 기자 gold@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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