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이 화물사업부 매각건을 두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반면, 대한항공은 EU집행위원회(EC)에 ‘선(先) 통합 후(後)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이 담긴 시정조치안을 의결했다. 아시아나항공의 고심 속, 대한항공이 화물 매각 카드를 밀어붙이는 까닭에 대한 의구심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화물 매각 등으로 기업결합 심사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아시아나항공의 영업력만 악화한다는 시선도 보낸다.
아시아나, 화물 매각 여부 두고 고심...내달 초 결정난다
31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전날 임시 이사회를 열고 EU집행위원회(EC)에 제출할 화물 사업 매각을 포함한 대한항공의 시정조치안 제출 안건에 대해 논의했으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사회가 결론을 내지 못한 이유는 화물사업부 매각시 회사 직원들의 반발과 함께 주주들에 대한 배임 소지를 우려하는 일부 사외이사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이사진은 내달(11월) 2일 오전 서울 모처에 모여 회의를 이어갈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31일)까지로 전해진 EU집행위 시정조치안 제출 마감시한을 지키지 못하게 된 대한항공은 EC 측에 양해를 구할 방침이다. 같은날 이사회를 연 대한항공 측은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 분할 방안을 포함한 시정조치안 제출에 대해 가결했다.
화물사업부 분리 매각안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심사중인 EC가 제안한 조치다. 현재 EC는 한국∼유럽 전체 화물 노선의 독점 우려를 문제 삼고 아시아나항공이 화물사업을 정리하지 않으면 기업결합을 승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은 14개 경쟁 당국 중 11개 경쟁당국의 문턱을 넘고 EC와 미국, 일본 경쟁 당국의 승인만을 남겨둔 상태다. EC의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하게 되면 미국, 일본이 기업결합을 승인해도 합병은 무산된다.
화물사업부 매각안이 반대 결정이 나올 경우 현재로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양사 간 통합은 사실상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합병에 실패한 아시아나항공은 재매각 되거나, 산업은행 관리 체제 하에 있거나, 부도 및 법정관리 체제 하에 들어가는 방안들이 유력해진다.
다만, EC 측에서 합병 승인을 받은 뒤 추후 화물사업부 매각을 약속하는 형태의 조건부 승인을 해 준다면 기업결합심사는 통과할 가능성이 커진다. 업계 관계자는 “EC 측에서 먼저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 매각을 제안한 점을 감안하면 '매각시 기업결합을 승인하겠다'라는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병 장기화, 독자생존 어려워진 아시아나... 대한항공은 ‘본전’?
그러나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화물사업 매각을 승인하더라도 EC의 조건부 승인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합병은 실패할 가능성이 커진다. EC는 조건부 승인보다 '선조치 후심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이 ‘선(先) 통합 후(後) 화물 매각’을 추진하는 까닭은 손해볼 것이 없다는 판단이 기저에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최종적으로 합병에 실패해도 이미 대한항공으로서는 아시아나항공이라는 핵심 경쟁자를 장기간 합병 불확실성에 놓이게 해 자체 경쟁력을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최대주주였던 산업은행이 2020년부터 매각을 추진해 2021년 대한항공의 지주사인 한진칼에 인수됐지만 기업결합 심사 등으로 M&A가 지연되면서 사실상 3년간 주인없는 회사였다.
2020년 11월 대한항공은 아시아나 항공 인수를 공식화했지만 EU 경쟁당국과 2021년 1월 사전협의 절차를 시작한 이후 올해 1월에 정식신고서를 제출하며 본심사에 착수했다. 2년 넘게 심사가 지연된 셈이다. 표면적 이유로는 의견 조율, 자료 제출 지연 등이 제시됐다.
이 시기에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의 격차를 최소 두배 이상 벌렸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4조원의 매출액을 올렸고 3조, 2조에 육박하는 영업이익 및 순이익을 냈다. 같은 기간 아시아나항공은 6조원의 매출을 시현한 한편, 각각 영업이익 6000억원, 당기순이익 265억원을 기록했다. 합병이 지연되는 동안 아시아나항공의 자체 경쟁력이 크게 악화된 것이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의 독자생존은 어려워졌다. 올해 상반기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는 12조원 수준으로, 부채비율은 1741%에 이른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3조254억원, 영업이익은 2014억원을 기록했지만, 602억원의 순손실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 항공은 과거부터 재무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여행 수요 침체기와 함께 합병이 장기화되고 오랜 기간 주인 없는 상태에 놓이면서 '독자생존'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면서 "아시아나 항공 입장에서는 합병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남지연 기자 njy@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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