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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삼성 위기론과 연목구어(緣木求魚)

Numbers 2024. 4. 3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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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삼성 위기론과 연목구어(緣木求魚)

반도체 50년 이건희 회장 퇴진 10년만에 ‘위기’실적 악화에 기술력 뒤져도 신상필벌은 ‘옛말’사법리스크 탓만 할 수 없어…오너가 결단해야 2024년 올해는 삼성이 지난 1974년 한국반도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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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50년 이건희 회장 퇴진 10년만에 ‘위기’
실적 악화에 기술력 뒤져도 신상필벌은 ‘옛말’
사법리스크 탓만 할 수 없어…오너가 결단해야 


2024년 올해는 삼성이 지난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2024년 5월은 2014년 5월10일 서울 용산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건희 선대 회장의 뒤를 이어 이재용 회장이 그룹 경영을 총괄한 지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반도체 사업 시작 50년, 이건희 회장 퇴진 10년 만에 삼성그룹과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가 위기론에 휩싸였습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은 삼성 위기론을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삼성도 잘못하면 망한다. 지금이 진짜 위기다.” “중국이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고 있다(샌드위치 위기론)." 등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 선대 회장의 위기론은 삼성 구성원들에게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것인 데 반해 지금의 삼성 위기론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그룹이 무너질 수 있는 ‘실제 상황’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삼성전자, 특히 삼성전자 반도체가 위기임을 보여주는 지표는 한둘이 아닙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지난해 15조원의 적자를 봤습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계열사를 포함한 ‘연결기준’으로 6조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삼성전자 단독인 ‘별도기준’으로는 11조5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해 법인세도 내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삼성디스플레이나 해외 자회사들이 빠진 별도기준으로는 6조원에 불과합니다. 삼성전자 국내 본사는 투자할 돈이 없어 지난해 자회사인 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차입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경기 회복에 힘입어 연간 35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이 예상된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입니다. 삼성전자의 연간 투자액이 40조~50조원에 이르고 배당만 10조원을 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현금흐름 측면에서는 연간 최소 40조~50조원은 벌어야 그나마 현상유지가 가능합니다. 삼성은 반도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 있는지도 모릅니다.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습니다.

삼성과 삼성전자의 위기는 실적 악화나 유동성 고갈만이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부차적입니다. 핵심은 기술력에서 경쟁사들에 밀려 기술 초격차 우위가 사라진 것입니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애초 계획은 주력인 메모리 부문에서 초격차의 기술우위를 계속 지키되, 반도체 전체 시장에서 80%를 차지하는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 분야, 특히 제품을 위탁받아 생산 공급하는 파운드리 사업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보면 메모리 부문에서는 기술우위가 끝났고 파운드리 사업은 1위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알려진 대로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시대의 총아라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고 말았습니다. 2019년 HBM팀을 해체한 것이 결정적입니다. 그 결과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의 점유율 격차는 5% 정도에 불과합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에서 지난해 시장점유율이 11%에 그쳐 1위인 대만 TSMC(61%)와 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텔은 오는 2030년까지 삼성전자를 제치고 파운드리 2위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어떤 위기든 대응하는 사람들이 각오를 다지고 곧바로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면 문제될 게 없습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됩니다. 이건희 선대 회장 시절에는 그랬습니다. 지금 삼성은 많이 다릅니다.

삼성의 위기대응책 하면 당장 떠오르는 것은 광고비를 크게 줄이고 퇴직 임원들을 대상으로 운영해온 상근고문제를 폐지한 것 등입니다. 여기에다 최근 단행한 계열사 임원 주말근무제가 포함되겠지요.

이런 레트로 감성의 조치들이 과연 위기타개책이 될 수 있을까요. 오죽했으면,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것밖에 할 수 없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마른 수건 한 번 더 쥐어짜는 식으로 위기를 돌파할 수는 없습니다. 재계에서는 이런 식의 복고적 위기타개책이 정현호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부회장이나 박학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사장 등 그룹 수뇌부의 경영 스타일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애초 삼성은 신상필벌이 철저하기로 소문난 기업입니다. 삼성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실적 부진과 초격차 기술력 상실에 대한 책임부터 물어야 합니다. 반도체 부문에서 15조원이나 적자가 나도, HBM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밀려도,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와 격차가 더 벌어져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다면 삼성전자는 결코 1등 기업이 될 수 없습니다.

이해되는 측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바로 총수인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입니다. 재판 결과에 따라 총수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우려되기 때문에 신상필벌 보다 경영안정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룹 총수의 사법 리스크를 감안한 미봉적 대책들은 삼성맨들 입장에서는 이해될지 몰라도 죽느냐 사느냐의 치킨게임이 벌어지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양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도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더욱이 이제 겨우 1심이 끝나 앞으로 대법원 상고심까지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릅니다. 다행히 1심 선고대로 대법원에서까지 무죄를 선고받는다 해도 삼성전자가 글로벌 시장에서 삼류기업이 된 뒤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룹 컨트롤타워 부활도 시급합니다. 야당이 이번 총선에서 여전히 제1당 자리를 지켰다 해서 포기할 일이 아닙니다. 반도체 산업은 도로, 전기, 상하수도 같은 국가 기간 인프라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반도체 없이는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특히 삼성 반도체가 글로벌 경쟁력을 잃으면 국가 안보 측면에서도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대만의 사례처럼 반도체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 핵무기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지난해 말 ‘미래사업기획단’을 발족시킨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는 이 회장을 위해서도 그룹 컨트롤타워는 복원돼야 합니다. 특히 이 회장이 겁먹고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삼성전자의 최종 병기는 당연히 초격차의 기술력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인재는 물론 경영인재들까지 모셔 와야 합니다. 최근 들어 삼성에서 핵심 인재들이 떠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인재 제일’을 외쳤던 삼성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삼성 위기의 본질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현실에서 임원 주말근무 같은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기업문화와는 거리가 먼 조치가 실행되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사자성어를 알 것입니다. 이 말은 원래 맹자가 중국 제나라 선왕에게 한 말입니다. 전문을 옮기면 이런 내용입니다. “당신의 큰 욕망은 전체 중국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하는 방법으로 그런 이상을 실현하고 그런 욕망을 달성하기 바란다면 그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영원히 소원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화복무문 유인자초(禍福無門 唯人自招)'라는 말도 있습니다. 화와 복은 모두 문이 없으니 오로지 사람이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재용 회장, 정현호 부회장 등 삼성 수뇌부가 깊이 되새겨보기 바랍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