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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된다. 금융당국이 부동산 PF 사업성 평가기준에 '부실우려' 등급을 신설하면서다. 금융당국은 부실우려 등급 사업장에 경·공매를 통한 매각이 이뤄지도록 계획서를 요구하고 미진할 경우 현장점검에 나설 수 있다.
이를 두고 부실한 PF 자산을 보유했으면서도 만기를 지속 연장해 부동산 경기 회복 시기를 기다리는 저축은행과 캐피털 등 제2금융권의 '버티기'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경·공매 시장에서 부실 PF 사업장에 대한 수요가 확인되고 있지 않는 만큼, 채권상각을 통한 '손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부동산 PF의 질서있는 연착륙을 위한 향후 정책 방향'을 지난 10일 발표했다. 당국은 "고금리·고물가가 상당 기간 지속될 우려가 있는 가운데 사업성이 극히 낮은 사업장에 대해서까지 관대하게 만기 연장이 이뤄지는 등 재구조화·정리가 지연되는 경우가 있으며, 제2금융권 중심으로 연체율도 상승하고 있다"면서 "PF 부실 누적은 부동산 시장의 자금공급 경색을 초래하고 금융·건설업계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정책 방향에 따라 사업장 평가 대상을 기존 본PF(인허가 완료 이후 공사비 지급 등을 목적으로 받는 대출), 브리지론(개발사업 초기 토지매입 등을 위한 대출) 외에 이와 위험성이 유사한 토지담보대출, 채무보증 약정도 추가한다.
사업성 평가등급 분류도 기존 3단계(양호·보통·악화우려)에서 4단계(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로 세분화한다. 사업성이 충분한 사업장은 신규 자금 지원 등 정상화를 추진한다. 유의 등급 사업장을 대상으로 재구조화·자율매각, 부실우려 등급 사업장에 대해서는 상각, 경·공매 등으로 질서있는 연착륙을 유도하겠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방침이다. 부실우려 사업장은 자율매각보다 금융당국의 '타율적' 개입이 이뤄진다는 얘기다.
신설된 부실우려 등급은 브리지론의 경우 최초 대출 만기 도래 이후 장기간이 경과하고 토지매입, 인허가, 본PF 등 다음 단계로 전환되지 않을 때, 본PF의 경우 공정, 분양 계획 대비 매우 부진할 때 등이 해당된다. 수익성 측면에서 총사업비, 시장 수급 상황 등 수익구조가 매우 악화되거나 △여신만기 4회 이상 연장 △연체이자 납부 없이 만기연장 △경공매 3회 이상 유찰 등일 때 부실우려 등급을 매길 수 있다.
금융사가 부실우려 사업장에 대출한 경우 대출액의 75%를 충당금으로 쌓아야 한다. 현행 악화우려 등급의 30%에서 부담이 2.5배 높아지는 셈이다. 금융당국은 전체 사업장 중 90~95%가 정상에 해당하고 나머지 2~3%가 부실우려, 3~7%가 유의 등급으로 분류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 PF의 사업성 평가 규모가 약 230조원인 점을 고려하면 5조~7조원에 해당하는 물량이 부실우려에 속한다.
그러나 경·공매 시장이 이 같은 대규모 물량을 소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삼정KPMG에 따르면 2024년 초부터 올해 3월22일까지 부동산신탁사의 토지매각 공매 건수는 총 770건으로 집계됐는데, 낙찰건수는 12건으로 낙찰률이 1.5%에 그쳤다.
금융당국은 자금여력이 충분한 은행·보험업권 등을 PF 정상화 지원에 동참시킬 방침이다. 5개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과 5개 보험사(삼성·한화생명, 메리츠·삼성·DB손해보험)가 1조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공동대출)을 조성해 경·공매를 진행하는 PF 사업장에 대한 경락자금대출, 부실채권(NPL) 매입, 일시적 유동성 지원 등을 실시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최대 5조원까지 규모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경·공매로 원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채권을 처분하거나 끝까지 팔리지 않아 상각으로 전액 손실 처리할 경우 2금융사들의 증자는 예정된 수순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저축은행과 증권사, 캐피털 등 2금융권의 PF 예상 손실액은 최대 13조8000억원에 달한다. 업권별로 보면 저축은행 4조8000억원, 캐피털 5조원, 증권사 4조원 규모다.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워 2금융사를 인수합병(M&A) 시장에 내놓는 대주주도 있을 것으로 시장에서는 예상한다.
금융당국은 은행·보험업권의 경우 전체 PF 여신 규모는 크나 대부분 대형 본PF 사업장으로 사업성이 양호한 반면, 저축은행 등 중소금융업권은 브리지론·토지담보대출 비중이 높아 상대적으로 평가기준 개선에 따른 부담을 가질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도 "그간 선제적 충당금 적립 등으로 충분한 손실흡수 역량을 확충해온 점을 고려할 때 감내 가능한 수준"이라며 "전반적인 금융 시스템은 개선된 평가기준을 적용해도 안정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금융감독원은 오는 6월 금융사를 대상으로 한 PF 사업성 평가, 7월 평가 결과 점검, 8월 평가 결과 조정 등 사업성 평가 진행 현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방침이다.
강승혁 기자 ks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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