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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기 전에 짧게 설명할 것이 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 무대로 향했다. 김연수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 대표는 인공지능(AI) 사업전략에 대한 발표가 마무리될 무렵 다시 청중을 바라보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페어몬트 앰버서더 서울'에서 열린 한컴의 AI 사업전략 발표회는 김 대표의 공식 데뷔 무대였다. 지난 2021년8월 한컴의 대표로 취임한 이후 2년이 흘렀지만 그는 오피스에 치중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및 AI를 중심으로 재정비하고 회사의 미래 비전과 맞지 않는 계열사를 정리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때문에 기자나 고객사 및 협력사를 대상으로 공식적으로 회사의 비전에 대한 발표를 할 시간이 부족했다.
기자를 비롯해 회사의 주주들도 김 대표가 궁금했지만 종종 전해지는 회사의 보도자료나 김 대표가 보내는 주주서한을 통해 그의 생각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한컴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코파일럿에 대응할 한컴어시스턴트 개발에 나서기로 결정했고 김 대표와 경영진도 이를 공식적으로 알리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기자들과 AI 사업을 함께 할 파트너사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김 대표는 경영진과 함께 오랫동안 발표회를 준비했다.
'김상철 회장 아들 구속' 보도…김연수 "한컴과 관계없다"
그런데 발표회 하루 전날 경찰이 김 대표의 부친이자 한컴 그룹의 오너인 김상철 회장의 아들 김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경찰은 김 회장의 아로와나 토큰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컴그룹 계열사에 있는 김 회장의 아들에게 비자금이 흘러갔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김 대표와 한컴에게 큰 리스크(위험요소)가 될 수 있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날 발표회를 예정대로 진행했고 무대에 섰다. 앞서 김 대표와 함께 각자 대표로서 회사를 이끌고 있는 변성준 대표와 정지환 최고기술책임자(CTO)도 무대에 올랐지만 김 대표에게 가장 많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준비된 AI 사업 전략에 대한 발표를 마치고 다시 청중을 향한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직접 전날 보도에 대해 입을 열었다. 김 대표는 "(김 회장 관련 보도에 대해)한컴의 대표로서 입장을 설명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아로와나 코인 프로젝트로 인해 저를 포함한 법인이 얻을 수 있는 득실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가 먼저 입장을 내지 않았다면 이날의 주인공인 한컴어시스턴트와 관계없는 김 회장과 관련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김 대표는 직접 먼저 입장을 내며 정면돌파에 나선 셈이다. 그의 발표후 '오늘 이 자리를 향후 외부 활동을 늘릴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봐도 되냐'는 질문이 처음으로 나왔고 김 대표도 "올해까지 내부적으로 재정비를 하느라 바빴다"며 "시장과 스킨십을 늘려가며 한컴의 행보를 넓히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그간 꾸준히 한컴의 지분을 매입하며 주주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만큼 책임감있게 회사를 이끌어갈 환경을 마련한 셈이다. 한컴의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9월30일 기준 김 대표의 한컴 지분율은 1.57%다. 김 대표가 대표로 있는 다토즈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에이치씨아이에이치(HCIH)가 10.3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사실상 김 대표의 지분율은 11.88%가 된다. 한컴의 최대주주인 한컴위드(21.52%)에 이은 사실상 2대주주인 셈이다. 한컴의 모기업인 한컴위드는 김 회장이 15.77%로 최대주주로 있으며 김 대표가 9.07%로 2대주주다.
한컴과 한컴위드의 사실상 2대주주인 김 대표가 직접 나서 김 회장의 아로나와 토큰 비자금 조성 의혹은 법인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알리며 주주와 파트너사들이 우려할 수 있는 경영 불확실성을 제거한 셈이다.
전공 'M&A'로 '글로벌 빅테크' 만든다
이날 발표회에서 나온 질문에 대해 답을 하는 과정에서 그는 '향후 5년내 글로벌 빅테크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내놓으면서 인수합병(M&A)에도 적극 나설 뜻을 나타냈다. 김 대표와 경영진은 현재 유럽의 한 AI 기업을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김 대표는 M&A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2012년 한컴 그룹에 합류한 이후 M&A 업무를 주로 맡았다. 대표 취임 이후에도 사업포트폴리오 재편 작업을 하며 한컴MDS를 비롯한 11개 계열사를 매각하며 1200억원 규모의 현금유동성을 확보했다. 싱가포르에 설립한 한컴얼라이언스를 통해 대만의 글로벌 SaaS 기업 케이단(KDAN Mobile)에 대한 투자를 집행했다.
김 대표는 '프로덕트(제품)를 중심에 둔다'를 M&A 철학으로 삼고 있다. 제품 경쟁력을 갖추고 한컴의 비전과 맞는 기업이라면 지역을 막론하고 M&A 후보 대상에 올린다. 그는 최근 업무 자동화를 가능하게 해 사용자의 시간을 단축해주는 기술을 갖춘 기업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과거의 한컴은 오피스 기업이라 '문서'와의 시너지만을 생각하며 M&A 대상을 물색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업포트폴리오 재정비를 통해 자동화 기술 모듈을 확보했다. 그만큼 M&A 대상이 다양해졌다. 김 대표는 "자동화와 관련된 생체인식, 레포팅툴, 자동화 BI 등의 영역에서 인수를 추진할 수 있다"며 "자동화에서 삼성SDS와 RPA(로봇 업무 자동화) 분야에서 이미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향후 5년 내 자산규모 기준으로 대기업 반열에 들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빅테크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도 나타냈다. 그는 한컴은 AI 및 자동화 관련 기술을 제공하기에 MSP(클라우드 관리 서비스 제공 사업자)나 솔루션 기업과의 협력이 더 가시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특정 분야에서 특정 고객의 요구를 받아들여 사업을 하기보다 각 서비스 업체들에게 핵심 부품(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회사를 확보해서 대응할 수 있는 시장을 늘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컴은 M&A를 위한 실탄도 확보한 상태다. 3분기 연결기준 한컴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644억원, 단기금융상품은 820억원이다. 현금성자산으로 1464억원을 보유한 셈이다. 회사가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은 20억원으로 보유한 현금성자산에 비해 부담이 크지 않다. 한컴의 3분기 연결기준 부채총계는 1558억원, 자본총계는 5252억원으로 부채비율은 30%다. 일반적으로 200% 이하를 적정 부채비율로 보는 기준에 따르면 한컴의 부채비율은 안정적인 상황이다.
박현준 기자 hj@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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