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원문 바로가기
배당과 자사주 소각은 밸류업 본질 아니야
우리금융 한화생명 低PBR 자본력 확충해야
우호주주 이사회 등 지배구조개선 경영진 ‘몫’
올해 자본시장의 화두는 뭐라해도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세제, 상법 등의 개정을 포함해 후속 이슈들이 이어질 전망이다. 주가상승율로 보면 특히 은행 보험 등 금융업종이 밸류업 열풍의 최대 수혜 섹터다. 7월12일 현재 KRX 기준 연초 대비 증권업 지수 상승율이 20%, 은행업 29%, 보험업 30% 등으로 다른 업종보다 높다. 하지만 업종 내에서 개별 기업의 주가 상승율은 큰 차이를 보인다. 지수 상승율이 가장 높은 보험의 경우 삼성화재 46%, 삼성생명 38%, DB손보 32% 등의 순으로 연초 대비 높은 주가상승율을 보인 반면 한화생명은 12%로 낮았다. 금융지주 주가상승율도 KB금융 62%, 하나금융 46%, 신한금융 33% 등의 순으로 높지만 우리금융은 16%로 가장 저조하다.
밸류업 열풍 속에서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정책 최우선 순위가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등 대부분 자본을 줄이는 내용이다. 단기적으로 모두 주주들이 좋아하는 조치이지만 기업 밸류업의 본질은 아니라고 본다. 밸류업의 핵심은 기업의 본질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장부가치(Book Value)가 시장가치(Market Value)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많다. 대주주의 탐욕과 무능, 비즈니스 본업에 대한 비관적 전망, 사업기회를 적기에 살릴 수 없는 재무적 불안정, 쌓아놓은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영진의 게으름 등 개별 회사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 특히 규제산업인 금융업은 자본을 넉넉히 비축하는 것이 밸류업의 핵심이다.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확대를 통한 시장가치 증대도 자본규제 가이드라인 범위 내에서 추진이 가능하다.
최근 밸류업 열풍에도 불구하고 주가 상승율이 부진했던 금융사는 모두 상대적으로 자본구조가 취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화금융은 6% 이상 고금리 비중이 책임준비금의 25% 내외로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향후 금리하락시 장기선도금리(LTFR, Long Term Forward Rate) 인하 등 할인율 하락이 본격화되면 2024년 3월말 기준 K-ICS 지급여력비율 173% 수준으로는 규제가이드라인 150% 방어도 어려울 수 있다고 투자자들은 의심한다. 우리금융은 보통주자본비율이 11.9%로 낮아 M&A 등 성장전략 추진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 자본력이 튼실하지 못하면 배당여력이 충분하지 않아 주가상승 부진으로 PBR(주가순자산비율) 개선에도 한계를 보이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금융업 전반적으로 주가가 상승했지만 7월12일 한화생명 주가는 3100원으로 여전히 액면가를 밑도는 PBR 0.18배에 머물고 있다. 우리금융 역시 PBR 0.35배로 하나금융 등 경쟁사에 비해 저조하다. 두 회사 모두 경영안정과 지속가능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본 확충이 절실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가 추진중인 기업 밸류업 과제 중의 하나가 배당,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회사가 벌어들인 수익을 주주에게 더 많이 돌려주자는 것이다. 자본력이 취약한 금융사들은 상당히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당장 증자 등을 통해 본원적 자본 확충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시장 투자자들의 요구도 외면할 수 없다. 회사가 보유중인 자산을 재평가해 매각 등 자구노력으로 재무안정성을 높이고 회사의 미래성장을 믿고 장기적으로 동행할 수 있는 주주를 찾아 설득하고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한화생명은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3년만에 현금배당성향 14.9%로 1127억원을 배당했다. 밸류업 열풍 속에서 주주환원 요구를 전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굳이 올해 배당을 했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8일 한화생명은 보유 중이던 한화그룹 본사 건물을 세일즈 앤 리스백(Sales & Leaseback)으로 한화리츠에 매각했다. K-ICS 비율을 산출할 때 부동산 투자자산의 경우 위험계수를 25% 가량의 가격 하락 충격 시나리오에 반영해 필요한 요구자본을 산정한다. 부동산 보유비중을 줄이면 위험자산이 감소해 그만큼 필요자본 규모를 절약할 수 있다. 또 매각가격 8080억원은 한화생명의 현금 유동성 확보에 보탬이 되고 자산매각이익은 자본확충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부동산 매각차익으로 배당가능재원이 늘어 주가가 회복되어 PBR 개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한화생명과 같이 자본관리에 활용할 수 있는 부동산 등 가용자산을 보유한 경우는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다.
우리금융처럼 성장전략 추진을 위해 당장 자본이 필요하지만 마땅히 활용할 자산이 없으면 단기에 자본을 늘리는 방법은 신주를 발행하는 증자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기존 과점주주들이 보유주식 가치 훼손을 용인해야 가능하다. 우리금융 과점주주들이 배당 등 주주환원 요구를 최대한 자제해도 성장전략 추진에 필요한 자본을 매년 버는 돈으로 확보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2019년 재상장 이후 누적으로 우리금융은 매년 평균 현금배당성향 25.5%로 3조1234억원을 주주들에게 배당했다. 우리금융 주주들 입장에서 현금배당성향 25% 수준은 경쟁 금융사에 비해 낮은 수준이어서 불만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금융 이사회가 현금배당성향을 10%포인트만 낮췄어도 1조3000억원 이상의 이익잉여금을 추가로 확보해 보험사나 증권사 인수 등 M&A 전략을 좀 더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임종룡 회장 등 우리금융 경영진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배당확대나 자사주 소각만이 기업 밸류업의 본질은 아니다. 흔히 기업가치는 수익창출 능력으로 간주된다. 밸류업은 기업경쟁력 제고를 바탕으로 수익창출 능력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장기적인 주주가치 증대를 위해 평소 자본을 축적하고 기회를 물색하면서 좋은 때가 오면 적극적 인수합병을 통해 일거에 기업가치를 올리는 것이 회사 성장과 주주이익에 더 부합할 수 있다. 우리금융처럼 증자 등 성장에 필요한 재원 확보가 어렵거나 한화생명처럼 과거 쌓아놓은 부채구조 문제로 만성적인 자본 부족에 시달리며 수익 창출력을 의심받아서는 근본적인 밸류업이 어렵다.
한화생명이 보유 부동산 유동화로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고 자본이득(Capital Gains) 획득으로 자기자본을 확충하는 것은 바람직한 선택으로 평가된다.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등 자본을 줄여 단기적인 ROE(자기자본수익율)를 높이는 전략만이 기업 밸류업의 전부가 아니다. 회사와 경영진을 믿고 장기적으로 함께 갈 수 있는 우호적 주주를 확보하고 그런 이사회 구성을 만들어가는 것도 금융회사 경영진의 중요한 역량이다. 이는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깊이 고민하고 실행해야 할 대목이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Perspectiv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종면칼럼] 경제·안보의 ‘최종병기’ 삼성·SK 반도체 (2) | 2024.07.22 |
---|---|
[CFO 리포트] 시중은행 전환과 DGB금융 전략 (0) | 2024.07.18 |
[박종면칼럼] 삼성·SK의 반도체 슈퍼사이클 (0) | 2024.07.15 |
[디깅노트] 한국거래소 규제에 막힌 '국산 클라우드' 이노그리드 (0) | 2024.07.10 |
[CFO 리포트] 우리금융 증권업 성장전략의 타산지석 (0) | 2024.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