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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의 섬’, ‘실리콘의 섬’에서 ‘인공지능(AI)의 섬’으로 도약하겠다는 대만에서 핵심 회사는 당연 1987년 대만 정부가 세운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회사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 입니다. 물론 지금은 민영화돼 정부(대만행정원 국가발전기금) 지분은 7% 정도에 불과합니다.
대만에서는 TSMC를 빼고 어떤 얘기도 할 수 없습니다. TSMC는 대만 증시에서 전체 시가총액의 30%를 차지합니다. 전체 수출 중에서는 12.5%, GDP(국내총생산) 비중은 22년 기준 8%쯤 됩니다. TSMC의 위상이 이 정도다 보니 대만에서 반도체는 전체 수출의 35%, 국내총생산의 18%를 차지하는 최대 산업이 됐습니다.
대만 사람들은 TSMC를 ‘호국신산’(護國神山)이라고 부릅니다. 대만이라는 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뜻입니다. TSMC가 대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 나라를 지켜줄 정도라는 뜻이지만 문자 그대로 안보와 국방 측면에서도 TSMC가 있어서 대만인들이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대만 사람들은 TSMC를 국가안보를 보장하는 ‘반도체 방패’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대만인들이 기업에다 ‘신산(神山)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무한 존경의 뜻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삼성이나 SK 현대차 LG그룹 등이 잘 나가면 ’삼성공화국‘이니 ’재벌공화국‘이니 해서 견제하고 빈정대는 것과는 딴판입니다.
대만이라는 나라의 가장 큰 딜레마는 당연히 중국입니다. 정치와 안보, 경제 모두 중국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과제입니다.
정치·안보 측면에서는 중국의 대만에 대한 끊임없는 군사 위협과 전쟁 도발 위험이고, 경제적 측면에서는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입니다. 단적으로 대만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40%대에 이릅니다.
이런 대만의 중국 딜레마를 완전하지는 않지만 풀어주는 '해결사'로 등장한 게 바로 TSMC입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매출 기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절반에도 못 미쳤던 TSMC는 2020년대 들어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반도체 특히 AI 반도체 붐이 일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그 결과 대만의 대중국 수출의존도는 35% 수준으로 떨어지고 대신 미국 수출 비율은 20%까지 늘었습니다.
정치·안보 측면에서 TSMC의 역할은 단순한 반도체 기업 그 이상입니다. 대만 사람들은 TSMC로 상징되는 ‘반도체 방패’(Silicon Shield)가 대만 국가안보의 ‘최종 병기’라고 공공연하게 말합니다. TSMC는 경제와 산업 정책을 넘어 대만 외교와 안보 정책의 중심입니다.
미국의 한 군사전문가는 중국이 대만을 침략할 경우 두 나라 간의 군사력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막을 유일한 방법은 TSMC를 폭파하는 것이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습니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대체 불가’ TSMC가 사라질 경우 세계 경제는 물론 중국이 받는 고통도 엄청날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군사행동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과거 50년 동안 석유가 정치적 군사적 지정학적 세계 질서를 결정했다면 이제는 반도체가 대신합니다. 미국은 한국 대만 등 아시아가 80%를 차지하는 반도체 제조를 50% 수준까지 북미와 유럽으로 가져오겠다는 전략입니다.
미국이 엄청난 보조금을 주면서까지 TSMC와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건설하는 것은 경제적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면 대만이나 한국에서보다 비용이 훨씬 더 듭니다.
미국이 TSMC나 삼성의 반도체 투자를 유치한 것은 유사시를 대비한 군사적 대응 전략입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그래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고 한 것입니다.
어쨌든 대만은 TSMC를 주축으로 경제적으로 부강해지고, 정치·군사적으로는 외세 침략도 방어하는 ‘반도체 방패’를 구축해 완성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대만은 지금과 같은 AI 시대에 파운드리는 물론 반도체 설계, 패키징(조립) 등에서 최정상에 오르면서 ‘세계 AI 인프라 허브’가 됐습니다.
대만의 반도체 경쟁력은 비메모리 제조(파운드리)만이 아닙니다. 물론 파운드리도 61%의 시장점유율을 갖는 TSMC 외에 3위의 UMC, 7위의 PSMC 등이 있어 합치면 대만의 전체 시장점유율은 80%에 육박합니다.
반도체 설계도 미디어텍 리얼텍 노바텍 등이 있어 미국 다음으로 21%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합니다. 후공정(패키징 및 테스트) 분야는 ASE 파워텍 킹위안 등 대만 기업들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53%나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TSMC와 경쟁하고 버금가는 회사를 찾자면 당연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입니다.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쯤 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을 합치면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의 30%쯤 되니까 얼핏 봐서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DS)과 SK하이닉스를 합치면 TSMC와 싸울 만합니다.
그러나 꼼꼼하게 따져보면 삼성 반도체와 SK하이닉스를 합쳐도 TSMC와 경쟁하기에는 크게 부족합니다. 삼성과 SK는 메모리 부문에서는 합계 시장점유율이 D램 70%, 낸드플래시 50%로 압도적이지만 다른 건 내세울 게 없습니다.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의 95%가 메모리에 편중됩니다.
증시 시가총액을 놓고 봐도 삼성전자 500조원, SK하이닉스 150조원 수준인데 비해 TSMC는 1000조원이 넘습니다.
올들어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오고 특히 AI 반도체 특수로 HBM(고대역폭메모리)이 뜨지만 지금 반도체 시장의 중심은 메모리가 아닌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입니다. 과거 50 대 50의 비중에서 지금은 비메모리 비중이 70~80%로 훨씬 높습니다.
지난해 기준 미국과 대만이 장악한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시장은 620조원으로 179조원의 메모리 시장을 압도합니다. 진정한 반도체 강국이 되려면 비메모리 분야가 강해야 하고, 비모메리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지만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냅니다.
반도체 산업은 이제 기업간 경쟁이 아니라 국가대항전이 됐습니다.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은 맏형격인 TSMC를 중심으로 민간과 정부가 ‘원팀’이 됐기 때문입니다.
미국도 정부와 기업들이 ‘팀 USA’를 만들어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까지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에 나섰습니다. 일본과 유럽도 막대한 보조금까지 지원하면서 총력전을 펼칩니다. 대한민국만 기업 혼자 고군분투합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미국 정부가 한국 대만 일본 네델란드 등 동맹국의 반도체 기업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 기술 접근을 계속 허용할 경우 가장 엄격한 무역제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미국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대만이 미국에 방위비를 지급하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산업의 100%를 가져갔다고 비판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대한민국 반도체가 세계 무대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상징되는 미국과 일본의 메모리 주도권 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일본 반도체 산업을 견제하면서 한국에 기회가 온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그런 기회인지 모릅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만까지 견제할 때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에 다시 엄청난 기회가 올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여야 정치인, 삼성 SK 등 기업들이 ‘원팀’이 돼 반도체에 필수인 자본과 인력 전력 문제 등을 해결하고 실행해 5~10년 후 성과를 낸다면 1인당 국민소득은 5만 달러를 넘고 명실상부 진짜 선진국이 됩니다.
국가안보 측면에서도 메모리를 넘어 반도체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반도체 강국’이 된다면 북한의 핵 개발도 전혀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와 대한민국 안보의 ‘최종 병기’는 삼성 SK 등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입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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