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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반도체 발전할수록 투자비용은 ‘천문학적’
삼성-SK 일년내내 돈벌어 투자하고나면 ‘끝’
미국 중국 EU 일본은 보조금만 50조~70조원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은 최근 ‘제주포럼’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 비즈니스를 하면서 느낀 애로를 솔직하게 얘기했습니다. 한마디로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아무리 이익을 내도 개별기업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좀 길지만 인용하겠습니다.
“시장에서 계속 반도체 성능 업그레이드를 요구하기 때문에 공장을 늘려야 한다. 예전에는 반도체 공정 미세화 과정에서 향상되는 정도가 컸는데 지금은 2나노 1나노 이렇게 되다 보니 한계에 부딪히고 더 이상 기술적 돌파구가 일어나지 않고 결국 설비투자를 더 할 수밖에 없다. 최근 팹(Fabrication, 생산공장) 하나를 지을 때 드는 비용이 대충 계산해봐도 20조원이다. 정부의 세제 혜택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이는 메모리뿐만 아니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도 비슷한 상황이다. 특히 SK가 잘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는 투자가 더 많이 필요해 어려움이 많다. 잘 팔리니까 행복한 고민일 수도 있지만 투자가 과격할 정도로 너무 많이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배터리처럼 반도체에 캐즘(일시적인 수요정체)이 오면 그때 잘 넘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최태원 회장은 반도체 산업이 고도화되고 엔비디아의 신형 AI칩 ‘블랙웰’처럼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이 발전할수록 투자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 반도체 경기가 좋을 때는 괜찮지만 혹시 위기 상황이 오면 개별기업 차원에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최태원 회장은 SK가 2028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 인디애나에 짓고 있는 5조4000억원 규모의 최첨단 패키징 공장 건설과 관련해서도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안 준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했습니다.
반도체 공장 하나 짓는 데 20조원이나 든다는 최 회장의 말이 믿기지 않아 SK하이닉스 관계자에게 다시 물어봤습니다. 진짜 그렇게 많이 드냐고. 돌아온 대답은 20조원이 아니라 30조원 정도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 수요 확대에 대응해 내년 상반기 양산을 목표로 현재 청주 M15X 공장을 건설 중인데 여기에 드는 비용이 20조원 정도고, 일반적으로 반도체 공장 하나를 짓고 설비를 갖추려면 30조원 정도 든다고 했습니다. 청주 M15X공장은 사이즈가 크지도 않고 인프라가 이미 깔려 있어 20조원 정도 든다는 것입니다.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면 우선 공장 건물과 전기 용수 등 건설 관련 공사에 적으면 4조원, 많으면 6조원까지 든다고 합니다. 나머지 25조원 정도가 공장에 들어가는 기계와 장비 등 설비투자입니다. 기계와 장비 중에서는 알려진 대로 네델란드의 ASML이 생산하는 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비용이 가장 큽니다.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으로 대당 가격만 수천억원을 넘습니다,
반도체 공장 하나를 짓고 여기에 들어가는 기계나 장비를 갖추는 데 20조~30조원 든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SK하이닉스가 제일 돈을 많이 벌 때가 영업이익 기준 2018년 20조원이었고, 올해도 20조~25조원 정도로 예상되니까 1년 번 돈을 공장 하나 짓는 데 모두 쓰는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반도체 공장을 짓고 설비를 갖추는 데 한꺼번에 돈이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투자는 대개 4~5년, 길면 6~7년에 걸쳐 진행됩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주 2분기 경영실적 설명회에서 “올해 투자 규모는 연초 계획 대비 증가하겠지만 최대한 현금흐름 범위 내에서 집행해 투자 효율성과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겠다”고 했습니다.
올해 최소 20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예상됨에도 신중한 투자계획을 밝힌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2018~19년 반도체 대호황기 이후 한 해 평균 캐팩스(CAPEX 자본지출)가 10조원 초반대에서 많으면 10조원 후반대까지 기록했는데 2022년이 피크였습니다.
22년의 경우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반도체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판단해 투자를 크게 늘렸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반대로 흘러 반도체 경기가 급속 악화돼 유동성 관리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비단 하이닉스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고 다른 반도체 회사들도 대부분 그랬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반도체 업계는 단순히 시장 전망만 보고 투자해서는 안 되고 실수요 기반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습니다.
SK하이닉스는 22년의 과잉 투자와 23년의 반도체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지난해의 경우 캐팩스를 5조~6조원으로 줄였고 오버슈팅해서 투자하지는 않겠다고 입장을 정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하이닉스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오면서 올 2분기에만 4조3000억원의 차입금을 줄였고 6월말 현금성 자산은 10조원에 육박합니다.
22년에 투자를 많이 했는데 그해 하반기부터 반도체 불황이 시작돼 유동성 관리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삼성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연결기준’으로 계열사 포함 100조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을 갖는 삼성전자지만 지난해 경기 불황으로 반도체 부문이 적자를 내자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2조원을 차입하고 계열사로부터 5조원 이상 배당을 받아 버텨냈습니다.
하이닉스가 연간 20조원 이상, 삼성전자가 40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는데도 투자는 최대한 신중하게 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은 그야말로 반도체 산업에 돈을 쏟아붓습니다. 그것도 개별기업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합니다.
반도체 첨단 공정은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 차원에서도 자국 내에 있어야 한다는 게 각국의 판단입니다. 그 결과 반도체는 전략산업이 됐고, 각국은 그야말로 ‘칩워’를 벌입니다. 그렇다 보니 반도체 전쟁은 ‘머니 게임’이 돼 돈을 쏟아붓다시피 합니다.
그동안 발표된 것만 봐도 보조금 형식으로 반도체 기업에 지원되는 돈만 미국이 73조원, 중국 70조원 일본 50조원 EU 64조원 수준입니다. 한국은 보조금 지원이 전혀 없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연합은 단순히 자국 기업들에만 보조금을 주는 게 아니라 자국 내 공장을 짓는 다른 나라 기업들에도 투자 규모에 비례해 보조금을 지원합니다. 삼성전자가 텍사스에 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 대가로 64억달러(9조원)의 보조금을 받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최근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컨설팅 그룹은 2032년이 되면 10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의 한국내 생산비율은 현재의 31%에서 9%대로 떨어지고 미국내 생산비율은 현재의 0%에서 32년에는 28%로 급증한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도 천문학적인 돈을 무한 반복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현실에서 결국 보조금을 많이 주는 곳으로 공장을 옮겨 갈 수밖에 없습니다. 애국심에만 호소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최근 국회에서 여야 가리지 않고 반도체 특별지원법 제정이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 등이 추진돼 그나마 다행입니다. 대한민국이 지속적으로 반도체 강국이 되려면 세제 혜택은 물론 전력과 용수 같은 인프라 지원에다 보조금 직접지원 등 이른바 ‘3종 패키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윤석열 정부와 국회가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체코 원전 수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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