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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카카오의 위기와 김범수의 시련

Numbers_ 2024. 8. 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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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카카오의 위기와 김범수의 시련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산 사람조차 수명은 기껏 120세 정도입니다. 국가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 유지된 주나라의 역사는 800년입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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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산 사람조차 수명은 기껏 120세 정도입니다. 국가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 유지된 주나라의 역사는 800년입니다. 중국 통일 국가 중 가장 오랜 통치 기간을 갖는 유방이 세운 한나라도 400년 조금 넘습니다. 

역사는 아무리 강한 나라도 무너진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보여줍니다. 중국의 주나라 한나라는 물론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 로마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제국과 문명, 현대에 와서는 영국에 이르기까지 한때 세계 최강자로 군림했지만 몰락했습니다. 현재는 미국이 최강이지만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게 채 100년이 안 됩니다. 

기업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일본에는 1500년 된 건설회사가 있고 독일에는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맥주회사도 있지만 가족 기업 수준입니다. 글로벌시장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 수백 년을 버티는 기업은 찾기 어렵습니다. 기업의 평균 수명은 기껏 30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왜 세계 최고의 국가들과 세계 최고의 기업들은 몰락할까요. 우선 고전 ‘맹자’에서 답을 찾아보면 이렇습니다. “화(禍)와 복(福)은 자기로부터 구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하늘이 내린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지은 재앙은 피할 길이 없다.” “우환(憂患)은 나라를 흥하게 하고 편안함은 몸을 망하게 한다.” 맹자가 직접 말한 것도 있고 ‘시경’이나 ‘서경’을 인용한 것도 있지만 결론은 국가도 개인도 망하는 이유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고 오래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자’에서 답을 찾아보면 이렇습니다. “도(道)를 지닌 뛰어난 선비는 한 마디로 그를 표현하는 게 어렵지만 굳이 말하자면 머뭇거리기를 마치 겨울에 얼어붙은 강을 건너는 것 같고, 망설이기를 마치 사방의 적을 두려워하는 듯이 한다.”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망하지 않고 오래 가려면 신중하고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식으로 했다간 망하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노자’에는 ‘기자불립 과자불행’(企者不立 跨者不行)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발끝으로 선 사람은 오래 서지 못하고 가랑이를 벌려 크게 걷는 사람은 멀리 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기업’(企業)이라는 단어도 이 말과 관계가 깊습니다. 여기서 ‘기’(企)는 발끝으로 디디고 서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기업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해야 살아남습니다. 그렇지만 기업 경영도 기초를 단단히 하지 않고 오직 높고 먼 곳만 추구하면 자멸을 부릅니다.

세계 최고의 기업이 왜 몰락하는가에 대해 가장 많이 연구한 사람은 잘 알려진 대로 ‘경영학의 구루’ 짐 콜린스입니다. 이제는 고전이 된 그의 ‘위대한 기업’ 관련 저서들이 모두 이에 대한 실증연구입니다.

잘 알려진 내용이어서 결론만 다시 한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위대한 기업도 몰락한다.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었어도 쇠퇴한다. 가장 강한 것이 끝까지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법은 없다. 누구든 몰락할 수 있으며 대개는 그렇게 된다. 모토로라가 그랬고 제니스도 그랬다. 위대한 기업의 자리에 오르면 자만심이 생기고,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고, 위험과 위기 가능성마저 부인함으로써 생명은 끝나고 만다.”

맹자가 국가도 개인도 망하는 이유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다고 했듯이 짐 콜린스도 실증연구를 통해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외부 환경이 아니고 내부 사람이라고 강조합니다. 

노자에서 도를 터득한 선비는 마치 겨울에 얼어붙은 강을 건너는 것처럼 모든 일에 신중하다고 했는데 짐 콜린스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훌륭한 리더는 더 많이 위험을 무릅쓰려 하지 않았고, 더 대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절제하고 피해망상을 보이기까지 하는 사람들이었다. 최고의 기업이 추락한 원인은 혁신을 거부하고 현실에 안주해서가 아니라 과도한 욕심을 부려 화를 자초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짐 콜린스의 책을 읽을 때마다 그가 동양고전을 많이 읽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기술과 사람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국민 메신저 기업 카카오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기업’입니다. 2006년 창업 이래 채 20년도 안 돼 재계 서열 15위에 자산총액만 35조원에 이르러 경쟁자인 네이버를 크게 앞섭니다. 계열사 수는 최근 많이 줄였는데도 124개나 됩니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모델로 삼아 수평적 기업문화와 자율성을 중시하고 '기업'이기보다 ‘공동체’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카카오그룹 시가총액은 2021년 120조원에 육박해 시총 기준으로는 재계 서열 5위까지 올라갔습니다. 카카오뱅크 시가총액은 상장 초기 국내 금융그룹 대표주식인 KB금융을 앞질렀습니다. 

카카오 창업주 김범수 의장은 위대한 기업인입니다. 네이버 이해진 창업주와 고인이 된 김정주 넥슨 창업주 등과 함께 대한민국 인터넷 업계를 이끈 1세대입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말할 정도로 큰 꿈을 꾸었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이 단칸방에서 살 정도로 어려웠지만 한때 대한민국 최고 부자 반열에 오른 자수성가의 아이콘이면서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입니다.

이런 위대한 기업 카카오와 위대한 기업인 김범수 의장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김범수 의장이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시세를 조정한 혐의로 구속되고 말았습니다. 카카오나 김범수 의장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근본적으로 ICT와 AI에 매진해야 할 기업이 무리하게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확장을 도모한 결과이고 업보입니다.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는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조작과 총수 구속에 그치지 않습니다. 알고리즘을 조작해 ‘카카오T블루’에 승객을 몰아줬다는 의혹, 드라마 제작사 고가 인수와 관련된 의혹 등 여러 건의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습니다.

카카오의 근원적 위기는 총수 구속 등 사법 리스크가 아닙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물론 네이버 SK 삼성 KT 등 국내 기업들도 생성형 AI 기술 고도화에 생사를 거는 데 카카오는 제대로 준비된 게 없습니다. 이용자 수 1위를 지켜왔던 카카오톡은 그 자리를 유튜브에 내준 지 오래입니다. 카카오를 비롯한 계열사들의 실적도 시장 기대에 크게 못 미칩니다. 여러 건의 사법 리스크가 재판을 통해 확정되면 카카오는 카카오뱅크의 대주주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습니다.

‘채근담’에서는 “일이 막히고 세력이 줄어든 사람은 마땅히 그 첫 마음을 돌아봐야 하고, 공을 이루고 일이 잘 풀리는 사람은 마땅히 그 마지막 길을 미리 살펴야 한다”고 했습니다. 

최신 건물에 독방이긴 하지만 체감온도가 40도를 넘는 폭염에 에어컨도 없이 남부구치소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내는 일은 엄청난 고통일 것입니다. 감옥살이가 오래 가지는 않겠지만 김범수 의장은 두고두고 지금의 고통과 치욕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남을 탓하지 말고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되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꿈은 절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공자는 스승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옳다며 따르는 제자 회에 대해 “회는 나를 돕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화를 냅니다. 사람은 지위가 높아지면 잘못해도 지적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옛날 임금들이 스스로를 ‘과인’(寡人), 외로운 사람이라고 했겠습니까.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그 자리는 무덤으로 변합니다. 측근 위주로 사람을 쓴다고 지적받는 김범수 의장이 되새겨 볼 만합니다.

화와 복은 상호의존적입니다. 손해를 보는 게 사실은 실속을 차리는 길일 때도 있습니다. 내가 곤경에 처하면 남들은 더 이상 나를 욕하지 않습니다. 또 곤경은 나를 단련시켜줍니다. 카카오 김범수 의장의 구속과 구치소 생활이 본인은 물론 카카오그룹 전체에도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