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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비즈니스 양극화 추세 급진전
디지털경제의 ‘금산분리’ 원칙 재인식
플랫폼 시장실패 정부관여 나쁜 선례
이커머스 1세대를 대표하는 구영배 대표가 이끄는 ‘큐텐(Qoo10)’의 자회사 티몬과 위메프 유동성 위기가 전자상거래시장 전반에 큰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오픈마켓 플랫폼인 두 회사 소비자 환불금과 공급자(Seller) 미정산대금이 수천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6만여개 이상 중소 입점업체 줄도산으로 플랫폼 생태계 붕괴도 우려된다. 플랫폼비즈니스의 근간인 ‘신뢰’가 무너져 다른 플랫폼기업으로 전이되고 있다.
오픈마켓 플랫폼비즈니스는 가성비 높은 입점 셀러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경쟁력이다. 매출 90% 이상을 ‘직매입방식’으로 운영하는 쿠팡 조차도 ‘오픈마켓’ 거래는 익일정산 등으로 우량 셀러 확보를 위해 노력한다. 빛의 속도로 정보가 유통되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우량 셀러의 풍부한 상품공급은 고객을 빠르게 불러모은다. 플랫폼에 불신이 생기면 경쟁 플랫폼으로 급속히 이탈하고 대금회수 걱정으로 셀러의 상품공급이 중단되며 플랫폼사업자는 순식간에 유동성 위기에 빠진다.
30일 국회 정무위에 출석한 구영배 대표는 현재 가용자금은 800억원 정도이며 당장 활용도 어렵다고 했다. 또 올해 2월 미국 이커머스 플랫폼 ‘위시’ 인수자금 2300억원 조달에 티몬·위메프의 고객 돈을 동원했다고 시인했다. 자금 유용과정에서 회사 대표이사 승인 등 내부통제는 전혀 작동되지도 않았다.
티몬·위메프 사태는 머지포인트 등 다른 유사 사기성 거래와 많이 닮아 있지만 파장은 훨씬 더 광범위하다. 오픈마켓에서 두 회사의 시장지배력은 하위권이다. 그럼에도 플랫폼의 붕괴는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s)만큼 폐해도 급속히 확대된다.
국내 오픈마켓 플랫폼업계에서 티몬과 위메프는 점유율이 거래규모 3~5%, 활동고객 기준으로 6% 이내로 높지 않다. 시장지배력이 낮아도 플랫폼이 부실화되면 상상 이상으로 큰 파장을 가져온다. 소비자와 셀러들은 대형 플랫폼으로 더 집중될 것이다. 플랫폼 양극화로 결국 1등만 살아남게 되고 독점적 시장환경에서 플랫폼 경제의 공공성과 사회적가치 훼손 논란도 확대 재생산될 전망이다.
오픈마켓 플랫폼 사업자는 소비자와 셀러의 상품거래를 연결해주고 소비자 ‘구매대금’을 셀러에게 대신 ‘전달’하며 수수료를 받는다. '소비자-카드사-PG사-플랫폼사업자-공급자'로 이어지는 전자상거래 가치네트워크(Value Network)와 자금흐름 정점에 플랫폼이 서 있다. 플랫폼이 불신을 받고 흔들리면 가치네트워크 전체가 순식간에 무너진다. 플랫폼사업자가 돈 버는 모델은 수수료뿐 아니라 광고 등 다양하다. 그럼에도 ‘지급결제 안정성’ 확보라는 ‘금융’의 역할은 플랫폼 비즈니스를 유지하는 키워드(Keyword)다.
플랫폼 사업자가 고객 돈을 활용하는 것은 산업자본이 금융업을 영위하며 고객 돈을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유사하다. 은행원에게는 익숙한 직업윤리 ‘금언’이 있다. ‘창구직원 눈에 고객 돈이 돈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사고가 난다’. 은행 증권 등 금융사는 ‘고객 돈’과 ‘회사 돈’을 명확히 구분해 관리하도록 법과 제도로 규제한다. 또 직원에 대한 내부통제와 정신교육을 수없이 강조하고 엄격한 관행을 만들고자 하지만 일탈을 막기에는 항상 역부족이다.
티몬·위메프 사태의 핵심은 ‘고객 돈’과 ‘회사 돈’을 구분하지 않은 것이다. 소비자가 구매 후 결제완료까지 3~5일이 소요되고 셀러가 대금을 지급받기까지 40~80일이 걸린다. 상품거래는 온라인기반 실시간이지만 지급결제 금융거래는 아날로그 오프라인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오픈마켓이든 직매입방식이든 금융거래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주문 취소 환불 대금정산 효율성 등 온라인 유통업의 특성을 이유로 파급력이 막강한 플랫폼의 금융거래를 회사의 선한 의지에만 맡기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 ICT기술을 활용한 스타트업 활성화를 통해 신산업 창출과 유통혁신을 기대하며 보류해온 플랫폼 금융시스템을 정비할 때가 됐다. 플랫폼 사업자가 고객 돈에 마음대로 손을 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셀러에 대한 결제기간을 플랫폼이 자의적으로 정하거나 지나치게 미루지 못하게 제도와 관행도 개선해야 한다.
2021년 4월 개정된 ‘대규모유통업 거래 공정화법’(제8조)은 쿠팡과 같은 대규모 직매입 유통업자의 대금결제를 60일 이내로 한정했다. 소비자 ‘선결제대금’ 수십조원을 대형 플랫폼업자는 60일동안 합법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수많은 셀러들은 ‘선매출대출’ 등 유동성 확보를 위한 생존게임을 하는 기간이다. 티몬·위메프처럼 대규모 유통업자가 아닌 경우 더 열악하다.
오는 9월15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전자금융거래법’의 소비자 ‘선불충전금’ 보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에스크로(Escrow) 운영, 정산주기 단축 등 ‘셀러’ 측면의 금융거래 프로세스 개선도 필요하다. 지급결제시스템의 투명성과 안정성은 플랫폼비즈니스의 신뢰회복과 지속성장을 위한 조건이다. 온라인플랫폼의 금융거래제도와 관행을 개선하고 재고관리 등 유통혁신을 통해 ‘건강한 비즈니스 생태계’가 유지돼야 플랫폼비즈니스의 지속성장이 가능하다.
지급결제에 블록체인 등 ICT기술의 현실 활용은 아직 요원하다. 플랫폼사업자의 ‘고유계정’과 ‘고객계정’을 물리적으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사업자가 수수료수익에 만족하지 못하고 고객자금 활용에 주목하기 시작하면 사고발생 가능성이 커진다.
사업자가 자금이 필요하면 금융기관 차입이나 자본시장에서 직접 조달하는 것이 정상이다.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이나 주주가 사업을 잘하고 있는지 수시로 감시하고 모니터링해야 플랫폼의 사업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
비즈니스 확장에 자금이 부족한 사업자가 ‘고객 돈’에 손 대지 못하게 시스템적으로 분리해 놓은 원칙이 ‘금산분리’다. 금산분리는 공정거래법 은행법 보험업법 금융지주회사법 등 다수의 법적 장치를 통해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지되고 있다.
큐텐 사태의 핵심은 소비자가 지불한 대금이 최초 상품 공급자에게 제때에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비단 티몬·위메프에 해당되는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쿠팡 알리 테무 네이버 카카오 등 거대 플랫폼사업자도 사업자금과 고객자금을 ‘합리적인 기준’으로 구분해야 한다. 어떤 기업도 위기 없이 영원할 수 없다.
큐텐이 티몬 위메프 위시 등을 인수할 때 주로 사용한 방법이 LBO(Leverage Buy Out, 차입매수)와 주식 스왑(Swap)이었다. <블로터> 기사(2023년 4월 16일)에 따르면 큐텐의 주주지분 분포에 티몬과 위메프 기존 주주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무자본으로 기업을 인수해 국내 오픈마켓 플랫폼 공급망을 해외 소비시장과 연결하는 ‘글로벌 오픈마켓 플랫폼’ 구축이 구영배 대표의 구상이었던 것 같다. 큐텐의 전략이 성공했다면 국민경제에도 큰 도움이 됐을 법하다. 하지만 오픈마켓 플랫폼사업 경쟁심화로 투자자 모집이 어려워지자 부족 자금을 계열사의 고객 돈으로 충당한 것이 화근이 됐다.
29일 티몬·위메프가 기업회생을 신청한 가운데 30일 정부가 5600억원의 긴급자금을 수혈하기로 했다. 민간 경제주체간 상거래에 정부가 상시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법과 제도 미흡, 관리감독 부실로 발생한 ‘시장실패’는 정부도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국민 세금으로 우선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1등만 살아남는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쿠팡 알리 테무 등 거대 외국자본이나 카카오 네이버 등 대형 플랫폼기업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더 큰 시장실패가 발생하기 전에 플랫폼 금융거래 보완이 시급하다. 또 다른 플랫폼 시장실패시 정부는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나.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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