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원문 바로가기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사장)의 커리어는 삼성 전체를 통틀어 화려하다. 삼성 미래전략실과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에 이어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까지 거치며 이른바 '출세 로열로드'를 착실히 밟아왔다.
재무에 밝은 인재를 선호하는 삼성전자의 스타일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경영진으로 평가받는다. 삼성전자 사업 시너지 제고에 기여해온 그는 배터리 부문 계열사인 삼성SDI를 3년 가까이 성공적으로 이끌며 최고경영자(CEO)로서의 가치도 증명해 보였다.
'미전실-사업지원 TF-삼성전자 CFO' 거치며 역량 발휘
최 사장은 덕수상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지난 1987년 12월 삼성전자 가전사업부에 입사했다. 삼성SDI CEO에 오르기 직전까지 대부분의 경력을 삼성전자에서 쌓았다. 37년에 가까운 회사생활 중 삼성전자를 떠나 있던 시기는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1팀 담당 임원으로 재직하던 4년이 전부다. 그는 이 회장의 '복심'으로 불릴 만큼 총수와 가까운 인사기도 하다. 임원 약력으로는 △2004년 경영관리그룹 담당임원 △2007년 구주총괄 경영지원팀장 △2010년 사업지원팀 담당임원 등을 거치며 두각을 드러냈다.
최 사장이 본격적인 승진 코스를 밟은 것은 2010년 말부터다. 이때부터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와병 직전인 2014년까지 미전실 전략1팀 담당임원으로 일했다. 삼성 미전실은 각 계열사에서 파견된 200여명의 임원과 고참급 직원이 근무하는 조직이다. 삼성의 두뇌 역할을 하는 컨트롤타워인 만큼 그룹 안팎에서는 '삼성에서 출세하려면 미전실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 정설처럼 통했다. 최 사장은 삼성전자 등 전자 계열 중심의 미래 중장기 성장전략을 짜는 팀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깔끔한 일처리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7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미전실이 해체되자 최 사장은 그해 11월 미전실의 후신인 사업지원TF 담당임원(부사장)에 올라 재무적 기량을 발휘했다. 이 시기 현재 삼성의 '실세'로 불리는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부회장)와 호흡을 맞춘 경험도 있다. 두 사람은 덕수상고 선후배 사이다.
최 사장은 2020년 삼성전자의 안살림을 책임지는 CFO(경영지원실장)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의 임무는 회사자금 관리에 그치지 않는다. 특정 사업 부서에 속하지 않고 경영 전략·재무·기획·인사 등을 총괄하며 총수의 의중에도 주파수를 맞춰야 한다. 이 때문에 CFO지만 CEO에 뒤지지 않는 위상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2021년 1월 최 사장은 전년 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을 주재하며 "삼성전자는 지난 수년간 인수합병(M&A) 대상을 매우 신중하게 검토해왔고 많은 준비가 진행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실행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준비해온 것을 토대로 향후 3년 내 의미 있는 규모의 M&A 실현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이는 이 회장이 구속수감된 지 열흘 남짓 지난 시기에 나온 발언이었다. 총수가 구속되며 2017년 하만 인수를 마지막으로 삼성전자 M&A의 맥이 끊긴 게 아니냐는 시장의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최 사장이 직접 사업추진 방향을 공개한 것이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업 방향에 대해 회사 임원이 직접 발언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M&A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삼성전자 내 최 사장의 입지와 이 회장의 두터운 신뢰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핸디캡에도 빛 발한 경영역량…이재용 회장 신임 더했다
최 사장은 2021년 12월 임원인사에서 삼성SDI 대표로 내정됐다. 그러나 이 인사에는 여러 해석이 뒤따랐다. 당시 삼성SDI의 그룹 내 입지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최대 흑역사로 꼽히는 2016년 갤럭시 노트7 배터리 화재 사건 이후 삼성은 이 사업에 줄곧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신규 투자보다는 기존 사업의 수익성만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2020년대 들어 공격적으로 투자금을 조달하고 공장을 증설하며 몸집을 불린 LG에너지솔루션, SK온과 비교하면 삼성SDI의 행보는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최 사장 취임 직전인 2021년까지도 삼성 수뇌부에서는 배터리 사업이 과연 미래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사업은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데 비해 초기 마진율은 높지 않은 산업군에 속해 있기도 했다.
최 사장에게는 이 같은 '핸디캡'을 극복하고 배터리 사업의 내실 있는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는 특명이 주어졌다. CEO로서의 경영능력이 처음으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재무감각과 풍부한 글로벌 사업운영 경험을 갖춘 최 사장을 통해 배터리 사업에 대한 이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시 경쟁사인 LG(권영수 전 부회장)와 SK(최재원 수석부회장)의 경우 배터리 사업을 이끌 경영진이 상당히 무게감 있는 인물로 채워졌기 때문에 이 같은 해석은 한층 더 힘을 얻었다.
삼성 내 최고 자금전문가인 최 사장은 재무안정성 유지에 공을 들이며 삼성SDI의 내실경영과 질적 성장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이 덕분에 삼성SDI는 해마다 1조∼2조원가량의 투자를 집행하면서도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갖출 수 있었다.
최 사장의 신중한 투자기조는 2023년 전기자동차 시장의 캐즘(일시적 수요정체)과 맞닥뜨리며 빛을 발했다. 미국·유럽의 전기차 전환 정책이 지연되자 LG엔솔과 SK온은 투자 규모를 줄이거나 투자계획을 늦추는 방식으로 속도조절에 들어갔다. 대규모 시설투자에 따른 재무 부담을 안은 상황에서 실적 하락의 직격탄까지 맞게 된 것이다. 반면 삼성SDI 는 안정적인 재무체력을 바탕으로 오히려 투자액을 늘리기까지 했다.
이처럼 최 사장은 자신의 경영능력을 입증하며 '삼성은 배터리 사업에 큰 뜻이 없다'는 과거의 의구심을 말끔히 털어냈다. 이 회장이 2022년 헝가리 사업장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해마다 빠짐없이 삼성SDI 사업장을 방문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특히 올해는 첫 해외출장 경영으로 말레이시아 스름반 사업장을 찾아 "어렵다고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게 투자해야 한다"며 최 사장과 삼성SDI에 힘을 실어줬다.
최지원 기자 frog@bloter.net
'어바웃 C > CEO' 카테고리의 다른 글
[C레벨 탐구] 'OB의 귀환' 전중선 포스코이앤씨 대표, 불황 속 '고군분투' (0) | 2024.09.30 |
---|---|
[C레벨 탐구] '40년 철강맨' 이시우 포스코 대표, 수익성 회복 시험대 (0) | 2024.09.26 |
[C레벨 탐구] 장동현 SK에코플랜트 부회장, '리밸런싱’ 2026년 증시 입성할까 (1) | 2024.09.25 |
[C레벨 탐구] 노진율 HD현대중공업 대표, 중대재해 '리스크 관리' 중책 (0) | 2024.09.25 |
[C레벨 탐구] ‘EV3 돌풍’ 송호성 기아 사장, 전기차 캐즘 벽 깰까 (0) | 2024.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