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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톡] 커지는 오너리스크...틈새 파고드는 사모펀드 '적대적 M&A'

Numbers_ 2024. 10. 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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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톡] 커지는 오너리스크...틈새 파고드는 사모펀드 '적대적 M&A'

최근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행동주의 펀드를 넘나드는 운용 전략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내 최대 PEF 운용사로 꼽히는 MBK파트너스가 대표적이죠. MBK는 지난해 한국앤컴퍼니(옛 한국타이어)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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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 =블로터DB


최근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행동주의 펀드를 넘나드는 운용 전략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내 최대 PEF 운용사로 꼽히는 MBK파트너스가 대표적이죠. MBK는 지난해 한국앤컴퍼니(옛 한국타이어) 그룹의 경영권을 공격한 데 이어 올해에는 고려아연의 경영권 강화를 공격적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명분도 내세웠습니다. 앞서 MBK는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를 시도할 당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오너리스크 해소 등을 통한 기업가치(밸류에이션) 상승을 명분으로 제시했습니다. 전문 경영인 체제를 도입해 경영 효율화를 이끌고 그간 투자 경험으로 축적된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업을 세계로 확장한다는 청사진도 있었죠. MBK가 공개매수 가격을 높이는 초강수를 뒀지만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는 결국 실패로 끝이 났습니다.

지난 13일부터 추진하고 있는 고려아연 공개매수 건에서는 한층 더 전면에서 대기업 대주주에 대한 여론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MBK와 영풍 측은 △원아시아파트너스 펀드 투자 △하바나 1호 투자 △이그니오홀딩스 투자 사례를 근거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 성과를 공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펀드들의 행동주의 전략은 그간 주로 단기간의 고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의 전유물로 여겨졌습니다. 한국의 PEF 운용사는 소수 지분으로 경영권을 위협해 단기간에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전략과는 달랐습니다. 주로 기업의 공개경쟁입찰을 참여하거나 자체적인 딜 발굴(소싱)으로 경영권을 인수(바이아웃)한 뒤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이었죠. 그러나 2021년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통해 사모펀드 운용 규제가 일원화되면서 PEF의 운용 전략도 다양해졌습니다. 의결권 주식 10% 이상 취득, 취득 후 6개월 이상 보유 등의 규제가 폐지되면서 PEF들이 바이아웃 투자를 넘어 다양한 운용 전략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겁니다.

무엇보다 MBK의 펀드 출자자(LP)는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 캐나다 등 세계 연기금과 금융기관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습니다. 각국의 투자자와 오랜 파트너십을 토대로 다양한 LP를 보유하고 있다 보니 국내 기업 경영권 공격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렇다면 MBK는 분쟁을 일으키면서까지 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걸까요. MBK의 6호 블라인드 펀드 규모가 8조인 점을 감안하면 웬만한 기업의 경영권은 자금력을 앞세워 충분히 가져올 수 있을 텐데 말이죠. PEF 업계에서도 MBK 의중을 두고 궁금해하면서도 분분한 시각을 보입니다. 무엇보다 의문인 건 천정부지로 치솟는 공개매수 가격으로 투자금 회수(엑시트)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PEF 업계 고위관계자들은 국내 기업 가운데 대주주 리스크로 기업가치가 훼손된 기업들이 많은 점을 지목했습니다. 현재 딜 소싱이 쉽지 않은 시장 환경에서 대주주 리스크가 있는 기업을 공격해 성공하게 된다면 쉽게 기업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데다 LP로부터 출자금을 따낼 명분도 있다는 설명입니다. PEF 운용사 A 관계자는 “장기간 지속된 오너의 경영과 오너리스크 등으로 제대로 경영되지 않는 회사들이 많다”며 “이러한 회사들 모두 기업가치 상승(밸류업)이 쉬운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딜 소싱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PEF 운용사 입장에서는 충분히 적대적 M&A 시도를 해볼 만한 유인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PEF 운용사 B 관계자는 “국내에 지배구조(거버넌스)를 개선해야 할 회사가 상당히 많다”면서도 “해외 LP로부터 출자를 따낼 때 펀드의 색채가 있으면 마케팅 차원에서 각인이 된다. 펀드 포지셔닝(위치 설정) 차원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PEF 입장에서는 드라이파우더(미소진약정액)이 빠르게 소진되지 않으면 투자에 대한 압박도 있다”며 “실제로 LP도 투자 재촉을 한다. 이러한 점들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간 국내 PEF 운용사는 기업의 파트너로서 자본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져왔는데요. 국내에서는 MBK가 선도적으로 오너가의 경영권을 공격하는 투자 사례를 연속 시도해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는 분위기입니다. MBK의 시도에 대해 새로운 도전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지만 비판도 나오는 상황입니다. 국내 경제 및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것이 국내 정서와 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외 사모펀드가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을 공격해서 경영권을 압박하는 사례는 빈번합니다. 국내에서 삼성과 현대차를 공격했던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은 지난 2019년 약 1%의 지분으로 세계 최대 통신기업 AT&T에 자산매각을 요구하고 인수합병에도 제동을 걸며 경영에 간섭한 적 있습니다. AT&T의 주요 주주가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 스트리트 등의 기관 투자자로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외에도 △케르베로스 캐피탈의 제너럴모터스(GM) 투자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스타트업 투자 △해리스 어소시에이츠의 제너럴 일레트릭 투자 등이 대표적으로 꼽힙니다. 이들 투자사는 당초 기업의 비효율적인 운영과 지배구조 등을 비판하며 지분을 인수한 뒤 경영진을 압박해 기업의 경영 방침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시장에서는 지배구조 문제로 기업가치가 훼손된 기업에 투자 기회를 노리는 공격적인 딜이 더 빈번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MBK의 고려아연 공개매수 딜이 성공한다면 중국계 PE를 포함한 외국계 PE 위주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지배구조 공격 딜을 하지 않았던 외국계 PE도 언제든지 딜을 시도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는 분석입니다.

PEF 운용사 C 관계자는 “현재 국내 기업의 지배주주가 ‘오너 3~4세’로 내려오면서 창립자 대비 지분율이 많이 취약해진 상황”이라며 “경영권이 취약한 지배주주 지분율에 대해 호스타일(hostile·적대적)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 국내 불문율(Unwritten Laws)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MBK가 이 딜을 성공하면 이런 불문율을 깨게 되는 것”이라며 “이 경우 국내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지 않았던 중국계 PE를 비롯해 국내 투자를 한동안 접었던 외국계 PE가 국내에서 이런 딜을 시도하는 게 가능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PEF 운용사 B 관계자는 “현재 2세·3세·4세 경영인이 출현하면서 그룹사 계열분리가 지속되고 있다”며 “경영권이 아름답게 합의되지 않는 상황이 많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런 가운데 기업의 경영권 분쟁이 지속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며 “PE들도 기회를 엿보다 혹은 제안을 받아 경영권 분쟁 딜에 들어가는 경우가 자연스럽게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국내 기관 LP를 다수 보유한 데다 국내에서 주로 투자활동을 하는 토종 PEF의 경우 이러한 시도가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한앤컴퍼니, IMM PE 등 토종 PE 중에서도 해외 기관투자가들을 여럿 보유한 하우스라면 예외가 될 수 있겠죠. 이에 반해 펀드 출자자 비중에서 국내 기관 LP가 대부분이라면 국내 기관들로부터 대부분의 돈을 받는 만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의견입니다.

PEF 운용사 C 관계자는 “국내 운용사(GP) 중에서는 이런 딜을 진행할 수 있는 성격의 하우스가 많이 없다”며 “투자 및 운용 철학, 국내 정서 등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국내 펀딩을 메인으로 하는 PE 하우스가 이런 딜에 나설 유인은 없다”며 “투자금 회수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쉽사리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남지연 기자 njy@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