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박종면칼럼] 삼성의 기초체력과 경영 집중력

Numbers_ 2023. 12. 19. 09:09

한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날 깨닫습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강인한 기초체력이 뒷받침 돼야 하고, 체력이 떨어지면 그에 따라 사고능력도 쇠퇴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날 이후 하루키는 매일 10킬로미터 이상 달리기 시작했고 수시로 풀 코스 마라톤을 했습니다. 100킬로미터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과 철인 삼종 경기에도 도전했습니다. 덕분에 하루키는 70세가 넘은 지금도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합니다. “정신과 두뇌도 결국 우리 신체의 일부다. 당신이 슈베르트나 모차르트 고흐 같은 시대의 천재가 아닌데 조금이라도 높은 것을 성취하고 싶다면 의지를 강고하게 하되, 그 의지의 본거지인 신체를 최대한 건강하고 튼튼하게 유지해야 한다”

하루키의 지적은 비단 개인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 경영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기업도 오너나 CEO 등 주요 구성원들의 기초체력이 떨어지거나 조직력에 이상이 생기면 경영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며, 이런 것이 하나둘 늘어나면 기업 전체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빠집니다. 

최근 삼성그룹에도 경영의 집중력이 떨어진 듯한 일들이 하나둘씩 생깁니다. ‘인재 제일’을 외쳐왔던 삼성이 최근 사장이나 부사장급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운영해왔던 상근고문제를 사실상 폐지했습니다. 삼성의 상근고문제 폐지는 요즘 재계 임원들 사이에서는 가장 뜨거운 이슈입니다.

삼성은 지금까지 사장이나 부사장직을 수행하다 퇴직하면 대개 2~3년 정도 상근고문으로 임명해 재임 시절 급여의 70~90%를 지급하는 것은 물론 사무실 차량 운전기사 비서까지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사장이나 부사장에서 퇴직해도 재임시 급여의 30%정도 또는 정액으로 얼마를 지급할 뿐 사무실이나 차량 지원 등은 없앴습니다. 

삼성의 이 같은 조치는 반도체 부문의 거액 적자와 같은 경영 불확실성에 대비한 비용 절감을 위해서입니다. 실제로 이번 조치로 수백억원의 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어느 기업이든 경영 상황이 어려워지면 고위직 인건비부터 줄이는 게 상식입니다. 더욱이 구글이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기업 중 퇴직자를 위해 우리처럼 상근고문제를 운영하는 곳은 없습니다.

문제는 퇴직 고위 임원들에 대한 예우 축소가 아닙니다. 이 과정이 정교하지 못하고 경영의 집중력이 떨어진 것처럼 진행됐다는 것입니다.

삼성은 이번 조치를 시행하면서 사전 예고 같은 게 없었습니다. 급작스럽게 시행됐고 뒤늦게 알았다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말 퇴직해 1년을 상근고문으로 예우받았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남은 1~2년의 고문제 예우를 없애버렸습니다. 제도를 폐지하더도 기존 약속한 것은 보장해주는 게 상식인데 그렇지 않다 보니 이런저런 말들이 나옵니다. 

정교하지 못하고 경영의 집중력이 떨어진 듯한 일은 또 있습니다. 프로축구 수원삼성축구단의 2부리그 강등입니다. 수원삼성은 1995년 창단이래 국내 리그 우승은 물론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한 명문 구단입니다. 

 



이재용 회장의 지적처럼 구글이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초일류 글로벌기업 중 스포츠단을 운영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실제로 2016년 삼성은 제일기획과 스포츠단을 묶어 프랑스 회사에 매각을 시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축구단의 2부 강등이 아닙니다. 팔 땐 팔고 정리하더라도 스포츠단을 유지하는 한 그룹 수뇌부가 무관심하게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삼성 축구단이 2부리그로 강등되자 삼성맨들 사이에서는 명문 축구단도 2부로 강등된다면 삼성전자도 어느 날 하루아침에 2류 기업이 되는 건 아닌지 불안감이 확산됐다고 합니다. 

삼성 축구단의 2부리그 강등은 지난해부터 이미 예고된 사실인데도 그동안 제대로 된 조치가 없었고, 드디어 올해 강등됐다는 점이 아픈 대목입니다. 

삼성의 경영 집중력이 떨어진 듯한 몇몇 사례들은 내부 상황을 놓고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시작해 8년째 이재용 회장을 옥죄고 있는 사법 리스크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전처럼 그룹을 총괄하고 세밀하게 관리했던 미래전략실 같은 조직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리의 삼성’은 이제 옛말이 된 지 오래입니다.

이재용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565일 옥살이를 했고, 3년 넘게 진행 중인 삼성물산 합병사건으로 96번 재판에 출석했습니다. 현재 이 회장은 1심에서 검찰로부터 5년의 징역형을 구형받고 내년 1월 말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삼성 내부의 예상이나 정치 상황 등을 감안하면 1심 선고에서 이 회장은 법정구속의 실형보다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선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되더라도 앞으로 2심 3심이 끝나려면 최소 2~3년이 더 걸린다는 것입니다. 베스트 시나리오로 가더라도 삼성은 오너의 사법 리스크가 몇 년 더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은 암담하지만 상황 탓만 할 수 없는 게 삼성을 둘러싼 냉엄한 현실입니다. 지금처럼 경영의 집중력이 떨어진 사례들이 반복된다면 오너의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기도 전에 노키아 소니 야후 모토로라처럼 2류 기업으로 추락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루키의 조언을 빌리자면 삼성그룹과 삼성전자는 모차르트나 고흐 같은 시대의 천재 기업이 아닙니다. 이재용 회장이나 정현호 부회장도 천재 경영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높은 것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오너인 이재용 회장과 2인자인 정현호 부회장을 포함한 그룹 수뇌부가 의지를 더 강고하게 하고, 그 의지의 본거지인 신체와 조직력을 최대한 건강하고 튼튼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힘들더라도 하다못해 매일 5킬로미터라도 달려 작은 실수들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집중력을 키워야 합니다. 조직 전반에 대한 점검과 재정비도 필수입니다. 삼성 같은 항공모함급 기업은 1~2개 작은 구멍이 난다고 침몰하지는 않지만 구멍이 많아지면 장담할 수 없습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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