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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승은 이렇게 승소했다...박정림·정영채 '징계 취소' 소송전 전망하기

Numbers 2023. 12. 22. 21:30
자본시장 사건파일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금융감독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문책경고 등 취소청구의 소' 1심 판결문 부(사진=박선우 기자, 우리금융그룹)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금융당국을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박정림 KB증권 대표와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의 이야기다.

이들은 대규모 투자 손실을 일으킨 라임·옵티머스 펀드 불완전 판매 사태와 관련해 지난달 금융위원회(금융위)로부터 각각 직무정지 3개월 등의 중징계를 받았다. 징계 사유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이다. 박 대표와 정 사장은 이에 반발해 "징계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향방에 관심이 모이면서,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참고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손 전 회장은 우리은행 DLF(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 불완전 판매 사태에 대한 책임자로 지목돼 지난 2020년 금융위의 징계를 받았다. 이후 그는 징계를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진행했고, 지난 2022년 12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에 따라 손 전 회장 사례를 참고로 하여 박 대표 등의 소송 과정을 예상해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손 전 회장 소송의 쟁점과 그에 대한 재판부 판단은 어땠을까. 판결문을 통해 알아봤다.


금감원, 손 전 회장에 문책 경고 처분..."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우리은행은 지난 2017년부터 독일 국채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한 DLF 상품을 일반투자자들에게 판매했다. 이 상품은 해당 금리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 수익을 얻지만, 그 이하로 떨어지면 손실을 보는 구조다.

그런데 지난 2019년 하반기에 독일 국채 금리가 하락하면서, 대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같은 해 9월 26일 만기를 맞은 DLF 상품의 손실률은 98.1%에 달했다고 알려졌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금융감독원(금감원)이 해당 상품에 대한 판매 적정성 등을 검사했고, 우리은행이 금융사지배구조법상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이 법은 '금융회사는 법령을 준수하고, 경영을 건전하게 하며, 주주 및 이해관계자 등을 보호하기 위하여 금융회사의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하여야 할 기준 및 절차(내부 통제 기준)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4조 제1항).

금융감독원. (사진=금융감독원 홈페이지)

 


금감원은 당시 우리은행장이었던 손 전 회장에게 사태의 책임을 물어 '문책 경고' 처분을 통보했다. 문책 경고가 확정되면 연임뿐 아니라 3년간 금융기관에 취업할 수 없다.

징계에 불복한 손 전 회장은 지난 2020년 3월 서울행정법원에 '문책경고 등 취소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손 전 회장은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징계 처분의 효력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 신청도 했다.

법원이 무효로 인정한 쟁점 4가지

손 전 회장의 승소로 끝난 '문책경고 등 취소청구의 소'에서는 5가지 쟁점이 주로 논의됐다. 해당 쟁점들은 금감원이 징계 사유로 들었던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과 관련된 사안이다.

서울행정법원은 금감원이 제시한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사실 중 4가지 쟁점을 무효로 봤다. (사진=박선우 기자, '문책경고 등 취소청구의 소' 1심 판결문 일부)


1심 재판부인 서울행정법원 제11부(강우찬 부장판사)는 위 쟁점 가운데 4가지(①·②·④·⑤)를 무효로 봤고, 1가지(③)만 인정했다.

우선 쟁점①은 우리은행이 판매한 DLF 상품 선정 절차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우리은행은 내부 지침을 통해 '기존 상품과 동일한 자산을 기초로 한 유사한 구조의 상품에 대해 상품 선정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원 9명으로 구성된 상품선정위원회의 상품 선정 절차를 건너뛸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생략 요건을 더 좁게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지만, 재판부는 달리 봤다. 재판부는 "(내부 지침)이 상품 선정 절차를 생략할 수 있는 '예외적 요건'을 더 엄격하게 규정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우리은행의 내부통제기준이 새로운 금융상품 선정 과정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및 시장질서 유지 등을 위해 준수해야 할 업무절차의 중핵이 되는 핵심적 주요부분을 결여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생략 절차로 인해 시장환경 변화에 따른 위험 등을 상품선정 과정에서 반영하지 못했고, 소비자의 손실이 커졌다고 하더라도 "내부통제기준으로서 상품 선정 절차가 실질적으로 흠결됐다고 볼 수 없다"는 의미였다. 

원금 100% 손실이 가능한 DLF 상품을 판매한 뒤, 위험 관리와 소비자보호업무 등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쟁점②도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우리은행은 내부지침을 통해 금융상품 판매를 1~6단계로 나누어 단계별로 준수해야 할 업무절차를 규정하고 있다"며 "외견상 형식적으로는 내부통제기준에 (관련 법에서 규정한) 사항을 포함시킨 것에 해당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해당 쟁점은 사실상 은행 내부통제기준의 '운영'상 문제점에 대한 것이지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에 해당하는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내부통제기준의 운영상 문제라는 판단은 쟁점④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해당 쟁점은 펀드 판매 과정에서 작성하는 적합성보고 전산시스템이 고객의 투자성향을 제대로 반영해 투자 권유 사유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판결문에 판시된 쟁점⑤와 관련된 부분. (사진='문책경고 등 취소청구의 소' 1심 판결문 일부)


쟁점⑤의 경우, 우리은행 임직원이 내부통제기준을 준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와 방법, 이 기준을 위반한 임직원의 처리를 내부통제기준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우리은행의 내부통제규정에 준수 여부 점검이나 시정조치 등이 마련돼 있는 점, 금감원이 제시한 위반 사례는 내부통제기준 위반에 해당한다는 점을 들어 무효로 판단했다.

 

투표 결과 조작·평가표 위조...재판부 "상품선정위원회 운영 기준 미비" 인정

 

다만 재판부는 상품선정위원회 운영 기준이 미비하다는 점(쟁점③)은 인정했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우리은행이 지난 2017년 8월 17일 이후 신규 출시한 해외금리연계 DLF 상품 360개 중 357개(99.2%)가 상품선정위원회 등의 심의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우리은행에서 DLF에 대한 선정 절차를 서면으로 진행할 때였다. 위원회 위원 1명이 반대 평가표를 내자 상품출시 담당 직원이 임의로 해당 위원을 자신과 친분 있는 직원으로 바꿔 찬성 평가표를 내게 하는 식으로 투표 결과를 조작했다.

위원 2명이 평가표를 제출하지 않았는데, 상품출시 담당 직원이 이를 찬성 처리하는 일도 있었다. 그 결과 이 사건 DLF는 '상품선정위원회 9명 중 9명 참석, 찬성 100%'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이와 관련해 판결문에는 "내부 지침상 정족수인 '위원회 위원 중 8/9 이상의 출석과 출석인원 70% 이상의 찬성'을 충족한 것으로 처리되어 상품선정위원회를 통과함으로써 출시되었다"고 기재돼 있다.

판결문에 판시된 쟁점③와 관련된 부분. (사진='문책경고 등 취소청구의 소' 1심 판결문 일부)


고객에게 판매할 수 없는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DLF 상품선정위원회 절차에서 상품선정 거부권을 가진 금융소비자보호센터 소속 위원이 반대 의결을 하여 상품이 출시될 수 없었는데도 그대로 상품이 출시된 것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우리은행의 상품선정위원회가 내부통제시스템으로서 전혀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은행 내부 지침에 상품선정위원회 위원 구성, 소집 절차 등 운용에 관해 규정하고 있지만 위원회 의사결정 절차의 핵심인 심의 및 의결에 대해서는 정족수 외에 아무런 절차를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위원들에게 다른 위원의 의견이나 최종 의결 결과를 통지하는 절차도 없어 상품 선정 절차에 대한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위와 같은 상황은) 분화된 조직 내부의 최종적 의사결정이 무엇인지조차도 확인할 길이 없게 함으로써 내부통제절차의 기본이 되는 정보전달 및 정보유통의 전제조건 자체를 완전히 형해화(形骸化·형식만 있고 가치나 의미가 없음) 시켰다"며 "전달될 정보 자체가 무엇인지조차 특정할 수 없게 만든 것이므로 이는 결국 실질적으로 정보유통에 관한 최소한의 핵심적 사항마저 흠결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위 판단을 종합한 1심 재판부는 지난 2021년 8월 "손 전 회장에 대한 징계를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박선우 기자 closely@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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