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CFO 리포트] ‘나 혼자 산다’와 생명보험의 구원자들

Numbers 2023. 12. 20. 07:31

허정수 전 KB금융지주 CFO

국내 생명보험 고객들은 소멸성인 정기보험보다 원금을 생각하는 저축성 기능을 먼저 생각한다. 종신보험 가입고객의 가장 큰 불만이 20년 이상 걸리는 원금회복 기간과 기대보다 낮은 중도해지 환급액이다. 종신보험 3년 계약유지율이 50%~60% 수준이면 양호하다고 평가한다. 보험료 비싼 종신보험 가입자의 절반은 3년 내에 해지환급금이 원금에 훨씬 못 미치는 허탈함을 맛본다는 뜻이다. 그동안 위험보장 받은 것으로 위안을 삼지만 보험에 대한 인식이 좋을 리 없다. 판매시 설명이 부족했다는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감독원 민원건수 최상위를 항상 오르내린다. ‘나 혼자 산다’가 대세인 세상, 1인가구 750만 시대(전체 34.5%)에 일반종신보험이 잘 팔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요즘 유행하는 저해지환급형 단기납종신보험(이하 ‘단기납종신’)이 출현한 배경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의 인식과 반응을 무시하고 비지니스를 할 수는 없다. 고객의식 변화에 대응하여 회사는 장기수익성을 훼손하지 않고 대량해지 등 보험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가격을 결정해야 한다. 대량해지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해지환급율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 특정구간에서 해지환급율 차이를 지나치게 크게 설정하면 대량해지 유인이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0% 넘어가는 판매수수료를 선지급하는 종신보험시장에서 원금회복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는 방법은 수수료를 줄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물론 판매인들을 설득해야 가능한 일이다.

2023년 11월 생명보험사들이 GA채널를 통해 판매한 상품 중 보장성은 대략 88%, 종신보험은 57%, ‘단기납종신’은 50% 정도이다. 주요 회사별 단기납종신 비중은 동양생명 62%, ABL생명 59%, 한화생명 58%, DB생명 52%, 교보생명 49% 등 대부분 상당히 높다. 그런데, 생보사들이 단기납종신 확대의 지렛대로 ‘수수료와 해약환급율’을 과도하게 사용한다는 우려가 크다. 수수료와 환급율을 높이면 판매와 성장은 수월한 반면 보험사 수익성이 약화된다.

현재 판매중인 단기납종신 해약환급율은 납입기간 중에는 낮지만 납입기간 종료 후 급하게 높아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납입기간 중에 중도해약 하면 거의 돌려 받지 못한다. 반면, 납입완료 후 일정기간 지나서 해약하면 이제는 보험사가 큰 부담을 지는 구조이다. 2023년 11월 현재 5년납, 7년납의 완납시점 환급율은 대부분 90%대 중후반 수준지만 10년 시점이 되면 120~130% 수준으로 대폭 높아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사실상 10년만기 상품으로 운용되고 10년 시점에 대량해지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대량해지가 현실화되면 미회수 잔여사업비가 일시에 손실로 잡히고 적립 준비금이 부족해지는 등 손익 및 리스크 관리가 어려워진다. 최근 시장금리가 과거 저금리 추세에서 벗어나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다. 만일 금리가 하락국면으로 반전되면 최근에 판매한 단기납종신의 수익성이 크게 낮아지고 심지어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IFRS17에서 최초 판매시점의 손실계약은 계약단위로 평가하지만 판매 이후 보유계약을 평가할 때는 GOC(보험계약집합, Group of Insurance Contract) 단위로 해야 한다. 따라서 쌓여 있는 CSM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GOC 전체의 손실액이 당기에 모두 비용 처리된다. 금리하락 위험에 회사가 크게 노출되는 것이다. 감독당국이 우려하고 보험사들에게 대응을 요구하는 부분이다. 금감원이 지난 7월 납입기간 5년, 7년의 해지환급율을 100% 넘지 못하도록 하고 납입종료 후 장기유지보너스 운용도 금지한 바 있다.

한편, 단기납종신 판매수수료와 시책비가 과거 종신보험 판매경쟁 과열시기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시책을 포함한 총수수료는 납입기간 5년의 경우 한화생명 1043%, 하나생명 1020% 까지 지급하고 있다. 납입기간 7년은 교보생명 1508%, 미래에셋생명 1423%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단기납종신의 해지 Shock을 어느 정도 반영할 것인지는 각 회사의 내부 수익성 목표와 리스크관리 정책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납입원금 도달 시점이 앞당겨진 상황에서 해지환급율이 130% 이상까지 운용되는 상품이 과거 일반종신보험 경험유지율 추세를 따를 것이라는 가정은 현실적이지 않다. 완납 후 해지율을 낮게 잡고 해지 Shock 반영도 없다면 상품 수익성은 부풀려진다. 게다가 높은 판매수수료와 시책으로 위험한 상품을 과다하게 판매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회사와 생명보험산업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종신보험의 원금 도달기간 단축은 전속판매채널이 없는 중소형사가 과도한 수수료 경쟁을 지양하고 보험소비자의 가치증대에 집중하기 위해 선택한 상품개발전략이었다. 생명보험의 새로운 시장 발굴과 회사 성장을 목표로 감축한 판매수수료를 고객 몫으로 돌려서 고객 선택을 잘 받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런데, 막강한 전속채널과 자금력을 갖춘 대형사들이 상품구조를 공격적으로 바꿔서 이 틈새시장에 대거 가세했다.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경쟁심화로 시장이 혼탁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거의 시차 없이 유사상품이 쏟아지는 금융시장 특성상 상품의 차별성 유지가 매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품 다양성이 제한되고 쏠림 현상이 심해진 원인으로 감독당국의 규제와 경직적인 제도운영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보험 비지니스는 어느 업종 보다 감독당국의 태도와 규제정책 영향이 크다. 다면적인 보험상품구조를 고정된 틀로 옥죄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작금의 생명보험업 어려운 국면을 타개하고 고객들에게도 실질적 도움이 되는 상품개발은 보험사 혼자 노력만으로 부족하다.

예를 들면, IFRS17에서 CSM 산출시 보험계약 ‘해지’는 ‘보험사고’로 간주한다. 또한, K-ICS에서도 ‘대량해지 리스크’를 반영하여 자본관리를 하도록 하고 있다. 해약율 가정에 따라 손익과 리스크관리 전략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보험업감독규정(제7-66조)에서 ‘해지’는 계약 ‘소멸’로 간주하여 해약환급금은 책임준비금에서 해약공제액을 차감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해약환급금이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고정되는 것이다. 다양한 해지율 시나라오에 따라 상품개발을 할 수 없다. 다만, 보험료 인하를 목적으로 순수보장성 종신에 한해 해약환급금을 표준형보다 낮출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환급율 조정을 보험료 인하 뿐만 아니라 판매확대와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환급율을 높이는 것은 고객 입장에서 나쁠 것도 없다. 감독당국도 회사 건전성 확보만 되면 불편하지 않다. 다만, 규정상 순수보장성인 종신을 저축성 기능을 부각시켜 판매한 후 낮은 해지환급액 때문에 고객 불만이 발생하고 감독당국을 귀찮게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순수보장성 뿐만 아니라 생존급부형 보험료 산출시에도 명확한 규정을 만들어서 해지율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보험해지를 ‘보험사고’로 정의하여 ‘예상해지율’을 보험료(가격) 산정에 반영하면 해지율에 따라 가격이 바뀌게 된다. 다양한 예상해지율 시나리오를 가격에 반영할 수 있어서 상품개발 유연성이 높아지고 새로운 시장창출이 가능해진다. 신규시장 발굴과 고객니즈 충족을 위한 경쟁력 있는 상품개발과 운용이 가능하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보험사들과 판매인들도 종신보험의 해약환급금이 원금에 미달 또는 초과하는 기간과 수준을 고객들이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판매프로세스를 만들고 설명의무를 다해야 한다. 특히, 보험사 내부정보 공개부담은 있지만 보험에 대한 고객 신뢰회복을 위해 고객이 부담하는 판매수수료 정보를 공개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보험사들 스스로도 생명보험업 발전에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내년도 경영계획에서 삼성생명을 비롯한 대부분의 회사들이 ‘장기보험시장’에서 손해보험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먹을 거리가 많은 장기보험시장에서 절대적 우위에 있는 손해보험사들과 경쟁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과 상품개발은 생명보험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전략과제이다. 이에 못지 않게 생명보험업의 ‘고유 영역’인 ‘종신, 연금, 변액’ 상품 시장에서 고객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고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상품과 서비스 개발 노력이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한 시점이다. 고사 직전에 처한 생명보험업 소생과 재도약을 위해 보험사 뿐만 아니라 금융당국의 전향적 제도 개선과 지원을 기대한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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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나 혼자 산다’와 생명보험의 구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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